물고기를 모는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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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3:34 조회5,540회 댓글0건본문
물고기를 모는 그물
물고기를 모는 그물
2014년 05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3:47~50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낚싯대를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 있고, 그물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물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방법 중에는 투망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그물은 원추형으로, 그물 밑에 추가 달려있습니다. 그물을 바다에 던지면, 그물이 둥글게 퍼지면서 그물 밑에 달린 추의 무게로 인해 가라앉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물고기들이 그물에 갇혀서 잡힙니다.
그리고 그물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방법 중에 ‘후리질’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다에 그물을 넓게 둘러쳐서 배나 여러 사람이 그물의 양쪽 끝을 끌어당깁니다. 그렇게 하면, 그물이 마치 활의 모양처럼 되는데, 그것을 뭍에까지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방법입니다.
이때 큰 물고기도 잡히고, 작은 물고기도 잡히고, 별별 종류의 물고기가 잡힙니다. 좋은 물고기는 따로 옮기고, 쓸모없는 것들은 다 내버려서 좋은 물고기만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고기들이 바다에 있을 때에는 자유롭게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만, 일단 그물 안에 들어오면, 활동범위가 좁아집니다.
그리고 그물을 잡아당겨 뭍으로 끌어올리면,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그물에 갇혀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물속에 있을 때에는 몰랐는데, 뭍으로 올려놓고 보면, 물고기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물고기와 쓸모없는 물고기를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마치 그물을 뭍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악한 사람은 점점 더 악해지고,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지기 때문에,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누가 마귀의 자녀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가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평생 교회 다녔어도 예수님을 믿지 않아 구원 받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 사람의 성품이나 행동으로 그것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불의한 짓을 한다면, 자신이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형제에게 불의한 짓을 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한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만,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교인처럼 보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니까 겉으로 보면, 교인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한 부류는 성령으로 거듭난, 참된 성도가 있습니다. 참된 성도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어서 사랑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점점 악해지고 사나워져서 자신이 마귀의 자녀요, 육에 속한 자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서 17~19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속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요한삼서 9~11절에 보면,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골치 아픈 한 사람으로 인해 교회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교회에서 주인 노릇 하고, 왕 노릇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이 교회에서 큰 소리 치고, 모든 것을 자기가 주장하려 하고,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으뜸 되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맞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한 말로 비방했습니다.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않고, 형제를 영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에서 내쫓아버렸습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입니까.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요삼 11).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그물 안에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있듯이 지상에 있는 교회 안에도 별별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훌륭한 성도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엉터리 신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는 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 기뻐서 잔치를 벌여서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마태가 예전에 세리였으니 세리인 친구들이 마태의 초대를 받고 그곳에 많이 왔습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식사하고 계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따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말을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9:12~13).
이와 같은 내용이 누가복음 5장에는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하면서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5:31~32).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죄가 많고, 큰 죄를 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회개하면, 죄를 사함 받고, 믿음으로 구원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입니다.
교회 안에는 불신자와 신자가 함께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교회 다녀도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그들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성도에게는 회개가 있습니다. 회개하므로 용서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주님은 마치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은 것처럼, 죄를 다 씻어주실 뿐 아니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비유를 또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2~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회에는 문턱이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사람을 차별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내치는 곳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혼인집이 손님으로 가득한 것처럼, 교회가 가득차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혼인집에는 누구나 올 수 있지만, 혼인집에 오면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11~14).
예복을 입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복을 입은 사람은 죄를 회개하므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반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교회 다니지만,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러운 옷을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 받으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지 않지만,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고, 우리에게 흰옷을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회개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했어도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회개하면 죄 사함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죄인 중에는 의인인 척 하는 죄인과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죄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인 척 하지 마세요. 잘난 척 하지 마세요. 우리가 보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죄가 많아도 죄인이고, 죄가 적어도 죄인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교회 안에 죄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직분자가 되고, 목회자가 되었을 경우, 그 교회는 편안할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개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딜레마에 빠진 이유가 이것입니다. 교회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직분자가 되고, 목회자가 되어서 못된 짓을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비난받게 되고, 선량한 성도들과 목회자들까지 욕을 먹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공동책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이 나라와 이 백성의 죄를 회개합니다.
미스바집회 때는 아이들까지 모여서 금식하고 울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셔서 블레셋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땅을 다시 찾게 되고, 나라가 평안해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두세 사람이라도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 모여서 기도하는데, 어찌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면, 이 나라의 근심이 사라지고, 문제가 사라지고, 악의 세력이 묶음을 당하고, 이 나라가 복된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저와 여러분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변화됩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목표와 목적이 달라지고, 성품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7~2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좋은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는 영광 돌리게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빛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둘째,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에는 마지막 심판과 현재적 심판이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은 장차 모든 사람이 하나님 보좌 앞에 서서 받게 되는 심판입니다.
그때는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으로 나누십니다. 지옥에 갈 사람은 영벌을 당하게 되고, 천국에 갈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15절에 보면, 마지막 심판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은 사람들까지 다 부활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인데, 이것은 첫 번째 부활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부활하는 것은 두 번째 부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두 번 태어나고, 한 번 죽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죽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나 사람이 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 두 번 태어납니다. 이것을 거듭남, 중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죽음은 육신의 죽음 한 번 밖에 없습니다. 지옥에 가는 두 번째 죽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한 번밖에 태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두 번째 죽음이 있습니다. 육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심판 받고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심판을 면하고,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는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평소에는 저와 여러분이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는 다 드러납니다.
또 한 가지 심판으로, 현재적 심판이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좋은 믿음인지 엉터리 믿음인지, 믿음이 강한지 약한지 드러납니다. 이것이 현재적 심판입니다.
환난과 핍박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납니다. 이것도 일종의 현재적 심판입니다.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에 이런 현재적 심판이 있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세 번째 교훈은 의인 중에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죄를 회개하므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악인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회개하지 않으므로 죄가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본문 마태복음 13장 49~5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후회하는 눈물이 없습니다. 회개하는 눈물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울면서 이를 간다고 했습니다. 원망합니다. 한이 맺혀서, 증오심이 가득차서 자신을 지옥에 보낸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워하여 이를 갈게 됩니다.
지금은 환난의 날입니다. 환난이 점점 심해집니다. 곳곳에 사고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날이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철저히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 받아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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