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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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26 조회3,696회 댓글0건본문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
2013년 12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0:34~39
사람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마음으로는 상대방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혼자 짝사랑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궁전을 지을 수도 있고, 마음으로는 결혼하여 아들을 열두 명이나 낳을 수도 있고, 마음으로는 별별 생각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저 마음에서 끝난 것이라면, 그것은 공상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마음으로 생각했을 뿐이지, 실제 그의 삶에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지지 않고, 생각으로만 끝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말로 고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는 것을 입으로도 표현해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입으로 고백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몇 배로 커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할수록 마음속에 사랑이 커집니다.
그런데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게 되면, 우리의 믿음이 몇 배로 커집니다.
우리가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을 간증할 때마다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믿음이 생기고, 그 사람의 믿음도 더 좋아집니다.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의 고백을 할 때마다 나 자신도 믿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서나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에까지 이르려면, 반드시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에 그치면 안 됩니다.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우리에게 구원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구원자가 이 세상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고, 다른 종교를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도 핍박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에게서도 핍박 받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환영 받으려면, 종교다원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은 모든 종교에 있다. 모든 종교는 하나다.”라고 주장하면 됩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도 그리스도가 있고, 회교에도 있고, 모든 종교에 그리스도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믿을 필요는 없다. 무슨 종교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어떤 종교를 가져도 좋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선교할 필요도 없고, 전도할 필요도 없고, 각자 원하는 대로 신앙생활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사탄의 거짓말입니까.
어느 군부대장은 군대에서 기독교 행사가 있으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불교 행사가 있으면 절에 가서 절하고, 천주교 행사가 있으면 성당에 가서 참석하고, 고사도 지내고, 모든 종교 행사에 참석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부대장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고 다 받아주고 다 수용하니까 제일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 부대장이 참 훌륭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평화주의자이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믿으므로 구원 받게 됩니다.
아무 종교나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영광을 받을지 모르지만, 지옥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왕들과 백성들이 타락하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바알을 섬기고,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도 제사를 지내고, 우상숭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요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산다면, 핍박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가 절에 가기도 하고, 성당에 가기도 하고, 점쟁이에게 가기도 하고, 무당에게 가기도 한다면, 그 사람을 핍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지막에는 멸망이 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런 사람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습니다. 그런 핍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며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킬 수 있을까요?
성령으로 거듭난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만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합니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고난을 잘 감당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왜 기뻐했을까요? 구원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보다 장차 받을 영광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에게는 고난이 고난으로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기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며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다 양보할 수 있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고백 하나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 가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순간부터 화평이 깨어지고, 다투는 날이 많아지게 됩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한밤중에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와서 메시아가 오셨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양했습니다(눅 2:14).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군 천사들은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양했습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검, 즉 칼은 전쟁할 때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적을 무찌르고, 적을 죽일 때 사용하는 것이 검인데,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2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믿음으로 무장하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전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싸우는 전쟁을 위해 검을 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 전쟁, 즉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믿음으로 무장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누구든지 그 순간부터 영적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마귀의 종 노릇을 했기 때문에 영적 전쟁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우리는 마귀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와 영적 전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검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이기면, 우리에게 영광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에서 패하면, 수치를 당하게 되고, 마귀의 종 노릇을 하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해야 하고, 성령 충만함으로 믿음의 무장을 잘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영적 전쟁이 가장 먼저 일어나는 곳이 가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가정에 불화가 생깁니다. 화평이 깨어지고, 영적 전쟁이 시작됩니다.
본문 마태복음 10장 34~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끔찍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원수’는 서로 사랑하지만, 신앙의 문제로 인해 원수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가족들 중에 가장 큰 핍박자가 있는 가정이 참 많습니다. 다른 사람은 관심도 가지지 않는데, 가장 사랑한다는 가족이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인해 나를 괴롭힙니다.
가족 중에 가장 큰 핍박자가 있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영적 전쟁이 가정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본문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 자녀는 물론, 자기 목숨까지도 포기하려는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권사님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모릅니다. 남편이 때리면, 이 권사님은 무조건 맞았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권사님은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변함없이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죽을 각오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자신을 아무리 때린다 해도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자녀들을 믿음으로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의 남편이 중병에 걸리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의 남편도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의 남편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양과 같이 착해져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지금 권사님을 보면,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핍박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을 평생 괴롭혔지만, 권사님은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승리하셨습니다.
국민일보에 보면, 성도들의 간증문이 실리는 <역경의 열매>라는 면이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 주립대의 이정한 교수의 간증이 실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불교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부부가 종교문제로 싸웠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좋은 선물을 사와서 아내에게 주며 아내를 굴복시켜 불교를 믿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선물을 보고 고마워하더니 “미안하지만, 나는 이혼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남편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기에 저렇게 강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남편도 예수님을 믿게 되어 변화되었습니다.
아내가 큰 소리로 남편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속에는 자신은 이혼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멋지게 승리하여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가정에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열심히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이런 저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저를 이기지 못하시니, 어느 날 친척 어른들을 불러서 제게 협박하며 야단치셨습니다. 친척 어른이 어린 제게 “너 정말 예수 믿을 거냐?”라고 말씀하시며 다듬잇돌을 들어 제게 던지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듬잇돌을 제게 던지지 않으실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죽더라도 예수님을 믿을 각오가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굴복할 사람이 아니니까 두려움도 없었고,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전도하려고 주일에 학생예배가 끝난 후에 친구들과 집으로 달려와서 어머니께 교회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제게 욕을 하며 야단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장 집에서 나가라.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한다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자주 만나는 무당이 어머니께 집에 종교가 두 개가 있어서 집안이 망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이 예수 믿기 때문에 집안이 망할 것이라고 말했나봅니다.
친구들이 옆에서 보고 있는데도 얼마나 야단치시는지….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눈물 흘리며 “어머니, 죽은 자식의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저 같은 효자의 말을 왜 들어주시지 않으십니까. 제가 어머니의 속을 썩인 적이 있습니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가면 되잖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로 갔습니다.
핍박이 있고 고난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신앙을 지키다 보니 결국 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게 되어서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불교신자인 어머니로부터 교회 다니는 것 때문에 핍박 받는 한 성도가 제게 상담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얼마나 심한 핍박을 받았던지, 그분은 제게 “목사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교회에 갈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어머니를 지옥에 보낸 후에 자신은 교회에 나오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어머니와 싸우더라도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것을 어머니께 전해드려야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교회에 가겠다는 것은 어머니를 지옥에 보낸 후에 교회에 나오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옥에 가신 어머니가 한 맺힌 마음으로 얼마나 원망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는 남편 몰래 교회에 나오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남편이 집에 없으면 교회에 오고, 남편이 집에 있으면 교회에 오지 않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약한 증거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당당하게 나아가 싸워서 이겼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는 다 도망갔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숨어있었습니다. 모두 믿음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후에는 이들에게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4장 19~20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얼마나 담대해졌는지, 대제사장과 그의 무리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29절에 보면,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했지만,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령 충만한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숨까지 포기하는 순교를 각오한 사람이 아니면,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4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지 못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해서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모두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신 것 때문에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8~30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포기했다고 해서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백 배의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사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자녀교육의 문제입니다. 선교사가 자녀를 선교지로 데려갔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교육시설과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 자녀들을 키우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선교사자녀학교에 보내려면, 자녀를 또 다시 외국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래서 부부가 합의하여 자녀를 낳지 않고, 선교지에 가서 선교지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기르며 그 나라의 훌륭한 지도자로 키우는 선교사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순교할 각오가 되어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줄 믿습니다. 백 배의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이 클 줄 믿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만 영광이 있고,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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