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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0장

복음 전하는 자가 받는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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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18 조회3,5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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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하는 자가 받는 고난

 

복음 전하는 자가 받는 고난

2013년 11월 24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0:16~23

 

마태복음 10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 이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의롭게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거룩하게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학벌이 좋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대부분이 평생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평범하게 살았던 서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것을 하나하나 다 지켜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5~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며,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에 비유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양은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어할 힘도 없습니다. 양은 날카로운 뿔이나 날카로운 이빨,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짐승이 공격해올 때, 빨리 뛰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양은 빨리 달릴 줄도 모릅니다. 양은 방어할 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양에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양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염소가 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리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여우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양이 되어야 합니다. 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염소 같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리는 매우 사납고, 아주 잔인한 동물입니다. 양이 이리에게 붙잡히면, 처참하게 찢기고, 이리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이리들만 남아있게 되고, 양은 없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양은 사랑받는 동물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계속 번식하여 점점 더 많아집니다.

이와 반대로 이리는 거의 멸종 위기에 있어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리뿐만 아니라, 사나운 짐승들은 거의 다 멸종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오히려 보호해주지 않으면, 없어질 위기에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납다고 오래 살고, 순하다고 빨리 죽는 것이 아닙니다.

맹수들은 아주 사나운 동물이기 때문에 서로 잘 싸웁니다. 서로 싸우다가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가장 강한 맹수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맹수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숫자가 줄어들어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너무 악하면, 적이 많아집니다. 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에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너무 악하게 살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자멸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이리 같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총독이나 임금들에게 끌려가기도 하겠지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가 하면, 성령이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자를 절대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20).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혼자서 전도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죽고 사는 것은 세상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신실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리와 같은 인간이 세상에 가득 차있다 해도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총독에게, 높은 사람들에게 끌려갔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총독이나 임금에게 끌려갔을 때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거기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우리가 만난 주님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를 통해 복음이 증거되고, 우리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피할 곳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세상 끝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피할 곳을 하나님이 반드시 준비해놓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아무리 박해한다 해도 피할 곳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피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28~30절에 보면,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피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5~7절에 보면,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로 쳐서 죽이려는 곳에서 도망쳐서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박해하는 곳에서 피하여 박해하지 않는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23~25절에 보면,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닙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교는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6ㆍ25 사변 당시 공산군이 내려오니 모두 피난 갔습니다. 목사님도 피난 가고, 성도들도 피난 가는데, 장로님 한 분은 사람들을 모두 피난 보내고 혼자 남아서 예배당을 지키며 혼자 예배드리고, 혼자 기도하다가 결국 붙잡혀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런 순교자가 참 많습니다. 참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았다면, 그렇게 순교하는 것도 좋겠지만, 만일 은혜 받고 믿음이 좋은 분이 남쪽으로 피난 오셔서 복음을 전했다면, 그분으로 인해 수천 명이 구원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박해하는 자를 왜 피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 아직 많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은 어디에나 많이 있습니다. 박해 받는 그곳에만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곳에 가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예수님은 고향에서 그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거기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고향에 머물러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곳에 가면, 더 많은 사람을 예수님을 믿게 하고, 그들이 구원 받고, 천국에 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뱀은 가장 간교한 동물이라고 소개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뱀은 사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어떤 지혜를 말하는 것일까요? 뱀에게는 팔과 다리가 없습니다. 날개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일 불행한 동물입니다. 뱀은 몸으로 기어 다니는 동물입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뱀은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숨어있습니다. 그런데 가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몸을 움직여서 땅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숲 속에 들어가 숨기도 하고, 물속에서 헤엄치기도 합니다. 뱀이 가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뱀의 이런 지혜를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이리와 같은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잘 났다고 나서지 말고, 은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야 합니다. 북한에라도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무 위에도 올라가고, 땅 속에도 들어가고, 못 가는 곳이 없이 어디든지 가서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무서운 해적 바이킹에게 끌려간 여자들은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험악한 사람들이 여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뒀겠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여자에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행한 여인이 되었고, 노예 같은 생활을 했지만, 아이를 기도와 말씀으로 키웠습니다. 이 아이들이 청교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비록 불행하게 태어났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믿음으로 자녀들을 키운 여인들로 인하여 이들이 청교도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군인들에게 끌려간 여인들이 군인들에게 농락당하고, 강간당한 후에 낳은 아이들은 비록 불행하게 태어났지만, 믿음의 여인들은 기도와 말씀으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신성로마제국이 되었습니다.

믿음 좋은 여성들의 지혜로 말미암아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복음이 계속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결은 기독교 신앙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다른 것과 타협하거나 혼합되어서는 안 됩니다.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롬 12:21). 로마서 12장 18절에 보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슬람 교도들이나 불교도나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라도 우리가 원수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영혼이 구원 받도록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악을 행할지라도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타협하거나 혼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들과 동업한다거나 술자리를 함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이 있었습니다. 홍수가 끝난 후, 방주에서 가장 먼저 내보낸 것이 까마귀였습니다.

까마귀는 썩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물 위에 떠있는 시체들 위에 앉아 열심히 먹느라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를 내보냈을 때, 비둘기는 다시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비둘기는 썩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까마귀와 비둘기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려고 하는 것은 좋지만, 타협하거나 그들과 동행하거나 혼합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 심판을 받고 멸망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소돔 고모라 사람들이 모두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동성연애가 얼마나 부끄러운 짓입니까. 인간으로서 할 도리가 아닙니다. 짐승보다 못한 짓입니다. 짐승도 동성연애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동성연애를 합니다.

그러나 소돔 고모라 사람들은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공개적으로 함께 부끄러운 짓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그들을 더 이상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의인 롯과 그의 가족들을 그곳에서 강제로 끌어내신 후에 유황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이 사회가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회가 되면, 하나님이 절대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끝내버리십니다. 악이 꽉 찼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북한에서 중국으로 간 사람의 이야기에 의하면, 북한은 뇌물 사회라고 합니다. 외국에 나올 때에도 많은 뇌물을 주어야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나라 전체가 뇌물 사회라고 합니다. 사회 전체가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북한은 마지막이 된 것 같습니다. 북한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믿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성도님이 직장에서 버스 운전을 하시는데, 버스 운전하는 기사들이 기름을 빼어서 그것으로 자신의 수입을 삼는다고 합니다. 회사가 망하든 말든 항상 기름을 빼돌려 용돈으로 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그 성도님만 그 일에 동참하지 않으면, 회사에 들통 나게 됩니다. 이분이 믿음이 약할 때에는 그 일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기름을 빼서 버렸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성도들은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신 것은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전도하는 것, 영혼을 구원 받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일 가운데 가장 선한 일입니다.

그 사람에게 집을 사준들 지옥 갈 사람에게 그것이 복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은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16~18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당할 때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장차 받을 영광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 성경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도하는 것을 힘들게 생각하고, 전도하지 않습니다. 전도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만둬버립니다. 그 사람들은 몰라서 그렇게 행동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면, 장차 큰 영광을 얻게 됩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있어도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이 상급이 되고, 축복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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