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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9장

긍휼을 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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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12 17:12 조회2,1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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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을 원하시는 하나님

 

긍휼을 원하시는 하나님

2009년 09월 27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9:9~13

 

미국의 신학자 아이언 사이드 박사가 어느 날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 회중 가운데 젊은 청년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큰소리로 “회장! 법대로 합시다!”라고 외쳤습니다. 회중 가운데 이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찬물을 끼얹은 듯 회의 분위기가 차가워집니다.

이때 아이언 사이드 박사는 그 청년에게 “여보게 젊은이, 자네는 법대로 하기 원하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자네를 법대로 다루셨다면 자네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아마 자네는 지옥에 가야 마땅할 것일세.”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은 허물이 조금도 없는 것처럼 큰소리치며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도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죄 없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법대로 하시면, 전부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지옥에 가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의 집에 가셔서 많은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분개하며 “너희 선생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을 위해 강제로 세금을 징수했기 때문에 반민족주의자요, 반도덕주의자요, 반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거지들도 손을 내밀었다가 돈을 주는 사람이 세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받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세리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세리와 창녀는 당시에 최고로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리나 창기를 차별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시고, 그들과 식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제사가 필요 없어서 원하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없는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이 빠지면 안 됩니다.

 

긍휼은 성경에서 ‘자비’라는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에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타락하여 멸망했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절망 속에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라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9장 18~19절에 보면, 다니엘은 자기 민족을 위해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만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33장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69편 20절에 보면,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찾지만, 찾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에 긍휼히 여길 자가 없으면 안타까워 하십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죄를 얼마나 많이 범합니까. 그러므로 죄가 없어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보시고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시편 103편 8~14절에 보면,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이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도 연약하기 때문에 알면서도 죄 짓고 탄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둘째,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보면,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겨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탕자가 허랑방탕하여 못된 짓만 하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처럼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겨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셋째, 긍휼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복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자비한 자가 되어 자비를 베풀면서 살기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구에게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1. 궁핍한 자입니다.

시편 72편 12~14절에 보면,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잠언 19장 1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 저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 배, 천 배, 만 배로 갚아주십니다.

 

2.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스가랴 7장 10절에 보면,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경건한 사람입니다.

 

3. 의심하는 자입니다.

유다서 1장 22절에 보면,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의심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의심하는 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도와주려고 하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4. 예수님을 믿다가 타락한 자입니다.

유다서 1장 23절에 보면,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도 언제 넘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두려운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5. 강도를 만난 자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보면,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에서 강도를 만나 재산을 잃고 맞아 죽어가는 사람, 고난 당하는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비를 베푸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 빚진 자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큰 빚을 지고 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죄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도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돈을 빌려갈 때에는 금방 갚을 것처럼 빌려가지만, 몇 년이 지나도 갚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 실망합니다.

그런데 남에게 돈을 빌려 줄 때에는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빌려줘야 합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빌렸는데,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빌려 줄 여유가 있어 빌려 줄 때에는 받지 않을 각오로 빌려줘야 합니다. 빌려줘 놓고 갚지 않는다고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갚을 돈이 있어도 갚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없어서 갚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히 여기고 탕감해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에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이 많이 있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면, 내가 심판받을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고, 잘했다 칭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죄인이 있습니다. 드러난 죄인과 드러나지 않은 죄인이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죄인은 겉으로 보면 훌륭한 것 같으나, 그 뒤에는 크고 많은 죄가 숨어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7~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죄가 세리들과 창녀들의 죄보다 더 큽니다. 사람들이 모두 죄를 범하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더 범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외식하는 것, 위선입니다. 그들은 죄가 없는 척 행동합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가 더 큽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어떤 복이 있을까요?

 

첫째,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프랑스 혁명 때 어느 무더운 날, 여학생 셋이 길을 가고 있는데 다리에 상처를 입은 젊은이들이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 두 여학생은 못 들은 체하며 지나쳤으나, 한 학생은 구급약을 구해 와서 정성껏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들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아가씨는 어디 사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나는 영국에서 온 학생인데, 대학 기숙사 3호실에 있어요. 이름은 메리예요!”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두 달이 지난 후 한밤중에 한 젊은이가 기숙사에 달려와 그녀의 이름을 불러 찾은 후, 데리고 어딘가로 갔는데, 그날 밤에 기숙사에 폭동이 일어나 모든 학생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심은 대로 거둘 줄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복을 받습니다.

한 하버드대 학생이 아프리카에 있던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환영은커녕 박사를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몹시 실망해 귀국을 준비하고 있을 때, 큰 비가 와 마을이 온통 물에 잠겼습니다.

그때 하버드대 학생은 한센병을 앓는 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뛰어들어 구했습니다. 그제야 박사가 그를 불러 “아이를 구해주는 것을 보고 자네에게 긍휼의 마음이 있는 것을 보았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의사나 약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일세. 자네에게 긍휼의 마음이 있는 것을 보니 내 곁에 있어도 되겠네!”하고 학생을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시는 일에 귀하게 써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을 받습니다.

영국의 웰링턴 제독이 자기의 병사 가운데서 구제불능인 병사 하나를 사형시키게 되었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려 했지만 너는 그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다시 너를 징계하여 고치려 했지만 그 징계도 너희 삶을 돌이키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지만 너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너를 사형하는 길이므로 사형을 집행한다.”

이때 그 병사의 친구가 갑자기 뛰어 들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웰링턴 제독님, 제독님이 저 병사에게 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저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말에 제독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사형을 취소하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이 병사는 죽을 자를 살려준 자비와 긍휼을 체험하여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긍휼을 베풀 때, 많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8절에 보면,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긍휼을 베풀면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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