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 마태복음9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마태복음9장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0:53 조회3,722회 댓글0건

본문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2013년 09월 0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9:9~13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땅에는 세금을 거둬들이는 세리들이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종류는 ‘갑바이(gabbai)’라는 세리인데, 재산세와 같은 일반세를 징수하는 세리입니다. 또 한 종류는 ‘모케즈(mokhes)’라는 세리인데, 이는 수입세, 통행세, 면허세 등을 거둬들이는 세리입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세금징수의 임무를 띄고, 자신의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로마 제국 정부에 바쳤습니다. 로마 제국의 강력한 권력을 등에 업고 백성들에게서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고, 그 중의 일부는 착복하여 자신의 재산을 늘리며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은 세리라고 하면, 살인강도범과 똑같은 수준의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세리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세관에 앉아있는 세리라고 했으므로 우리는 마태가 모케즈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를 가장 싫어하고, 증오하고, 세리라는 말만 들어도 이를 갈았습니다. 세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리인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아주 충격적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리라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세리 중에도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나쁜 짓을 하는 한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세리들은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면, 세리들은 도매금으로 욕을 먹게 됩니다.

여러분은 세리장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리들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욕을 먹으며 살았겠습니까. 그러나 삭개오에게는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서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오시니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눅 19:8).

 

만일 자신이 나쁜 짓을 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들은 자기에게 욕하지만,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마음이 삭개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리가 가장 비천하고 가장 못된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사도 바울처럼 그 시대의 최고 학문을 통달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주 부족한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천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귀하게 쓰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의 수가 성 사람들을 구원 받게 하실 때, 수가 성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 받는 사람을 택하셔서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과거에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닌 여인을 사용하셨습니다.

과거에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던 여자이니 너무나 부끄러워서 사람들이 우물가에 모여 있을 때에는 밖에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점심 먹은 후 다들 낮잠 자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 그 여인은 우물가에 와서 물을 길어 갔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천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주님은 미리 우물가에 가셔서 그 여인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이 메시아를 만난 것을 알게 된 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수가 성에 들어가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후, 이틀을 더 머물게 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충분히 말씀을 듣고,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잘난 사람만 부르시거나 잘난 사람만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 없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자신에 대해 자랑하지 못하도록 약한 자, 세상에서 멸시 받는 자, 천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들과 의논하지도 않고, 무조건 순종하여 모든 것을 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사람들로부터 욕을 듣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직장에 계속해서 있으면, 얼마나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월급도 많을 것이고, 수입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다 버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는 가난한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무조건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비천한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택함 받을 수 있었던 비밀이 있습니다. 이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이 부르셨을 때에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도 없고, 사람과 의논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택함 받고, 쓰임 받은 비밀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나를 따라오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라고 대답하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귀하게 쓰실까요? 하나님은 뛰어난 사람, 잘 난 사람, 똑똑한 사람, 출세한 사람을 들어 쓰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믿음의 증거가 나타납니다. 정말 믿음의 사람이라면,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믿음이 있다면,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에게 모든 것을 나타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축복도 아까워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성읍에 가도 복 받게 하시고, 들에 가도 복 받게 하시고, 들어와도 복 받게 하시고, 나가도 복 받게 하십니다. 자손들이 복 받고, 떡 반죽 그릇까지 복 받고, 그 사람이 사는 하늘이 복을 받아 기후가 좋아집니다. 그 사람이 사는 땅이 복을 받아 농사가 잘 됩니다. 모든 복이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순종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 주시는 것을 아까워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모든 복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랑하실 뿐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께서 이 사람과 함께해주십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함께 계시고, 그가 가는 곳에 함께 가십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세요.

 

그런데 우리가 왜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까?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까? 순종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지 못합니까? 순종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의 노력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면, 세상에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흥하고 망하는 것,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야 우리가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지 못합니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고, 제멋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기분에 따라 헌금하고, 기분에 따라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 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도 마태와 같이 순종한다면, 분명히 축복 받을 줄 믿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8~30절에 보면,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부모 형제도 잘 모시지 못하고, 자식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등 얼마나 희생이 많습니까.

이 말씀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람을 주님이 책임져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백 배로 축복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세요.

우리는 천국에 가서 상급 받을 뿐 아니라,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도 주님이 다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복 받은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십니까? 자기 마음대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라야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여러분을 예수 믿게 하고, 믿어지게 하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보통 복을 받은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복, 이것이 얼마나 귀한 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처럼 출세하고, 왕이 되고, 부자가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처럼 사는 것, 부자처럼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뜻을 이루는 데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마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 노릇을 하다가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성도들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순교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 받는 것은 잠시 동안입니다. 그러나 장차 천국에서 받는 영광은 영원합니다.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장차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어떤 사람이 가장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가장 큰 영광을 받게 될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하는 일을 하다가 주님 앞에 간 사람이 가장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고, 복을 받으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순교할 날을 기다리면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항상 기뻐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리 마태는 자신을 제자로 불러주신 주님께 기쁨으로 순종했을 뿐 아니라, 자신과 같은 죄인을 제자로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해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래서 마태의 친구인 세리들도 초청받아 마태의 집에서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죄는 영적인 병입니다. 지옥에서 멸망하게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영적으로 병든 사람입니다.

죄인들이 구원 받으려면, 신령한 의사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마태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이 있고, 바리새인처럼 의인인 척하는 죄인이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죄인 중에 누구의 죄가 더 많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죄인이면서도 의인인 척 외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죄는 보통 사람의 죄보다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한 자가 지혜롭고, 복 있는 자입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긍휼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긍휼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사람입니다.

둘째,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줄 아는 사람입니다.

셋째,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긍휼을 베풀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긍휼히 여깁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죄하지 않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살리기 위해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출 32:32).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죄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자신이 범한 죄인 것처럼 생각하고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죄 짓고, 나쁜 짓 하는 것을 비판하거나 욕하지 마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북한 동포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바리새인이 되지 마시고,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줄 수 있는, 주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접속자집계

오늘
1,069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3,985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