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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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06 조회3,581회 댓글0건본문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
2013년 09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9:35~38
본문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주로 세 가지 일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셨는데, 어디를 가든지 그 동네에 회당이 있으면, 예수님께서는 그 회당에 들어가서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마가복음 1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전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39절에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전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시며 새벽부터 전도하러 나아가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20절에 보면,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집에 들어가셨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얼마나 많이 몰려왔는지, 그 사람들을 세워놓고 예수님이 식사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식사하실 겨를도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31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도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얼마나 바빴는지,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큰 능력을 행하고, 표적과 기사를 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성경의 기록을 볼 때, 제 마음속에 ‘나도 이 사도들처럼 능력 있게 말씀을 전하고,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암이 떨어지고, 병이 없어지고, 귀신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한국을 금방 복음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상상해봤습니다. 저에 대한 소문이 나서 일본에 있는 환자들과 중국에 있는 환자들이 다 오고,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정필도 목사 앞에 가면 병이 낫는다.”라고 생각하고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의 아픈 사람들이 다 왔습니다. 교회 마당과 예배당에 암 환자를 비롯하여 각종 환자들로 바글바글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하니 정말 그렇게 되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을 테고, 잠 잘 시간도 없을 것 같고, 설교 준비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게 그런 능력을 주시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집회를 인도했을 때의 일입니다. 마지막 설교를 한 후 저는 ‘이제 집회가 끝났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교인들이 모두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제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안수기도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죄송합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안수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한꺼번에 기도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 교인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보며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능력을 주셔서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기도하기만 하면, 환자가 낫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말하지 못하던 사람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고, 말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은 쉴 새 없이, 식사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수고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6절에 보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4~5절에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면,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들이 범한 죄를 생각하면, 심판 받고 멸망하여 다 지옥에 가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범한 죄를 생각하면, 다 망해야 하고, 다 저주 받을 수밖에 없고, 다 병들어야 하고, 다 고생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모든 저주를 속량해주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보였습니다.
목자가 많은 양들을 돌보다가 죽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병들어서 죽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쁜 사람들을 만나 그들로 인하여 죽을 수도 있습니다.
목자가 죽으면, 양들은 목자가 없으니 다 흩어지게 되고, 갈 바를 몰라 여기저기에서 헤매게 됩니다. 양은 혼자서, 자기 힘으로 살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목자가 없는 양은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좋은 풀을 찾아 먹지 못하게 되어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하고, 병들어 죽기도 하고,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기도 합니다.
집 없이 돌아다니는 개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러 어느 가난한 나라에 가서 길을 다니다가 깡마른 개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먹지 못했는지,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지만,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개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싹 마른 개들이 길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가 잘 먹어야 개의 털에서 윤기가 나고, 보기가 좋을 텐데,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가는 개들이니 털이 많이 빠졌고, 흉한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불쌍한지, 마음 같아서는 개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그 당시의 유대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기진한 상태에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 나라에는 백성들을 이끌어가는 좋은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종교 지도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은 영과 육이 모두 병들어 있었고, 헐벗고 굶주린 상태였습니다. 그야말로 목자 없는 양, 주인 없는 개, 버려진 개, 병든 개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전해주시고, 천국 복음을 전해주실 뿐 아니라,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아마 이들에게 예수님은 구세주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천 명, 수만 명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어떤 때에는 며칠씩 굶어가면서도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마가복음 8장에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1~3절에 보면,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누가 굶고 있는가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누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배가 고파서 집에 가다가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들을 굶겨 보낼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4천 명을 먹이고도 많이 남을 정도로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좋은 말씀만 전해주시는 것이 아니고, 병만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고, 먹을 것까지 주셨으니 이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이들 중에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되겠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일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본문 3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볼 때, 지금 복음을 전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전도하기 가장 좋은 때는 언제입니까? 헐벗고 굶주릴 때, 병으로 고생할 때, 환난과 재난으로 인해 고통당할 때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주 겸손해집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말라빠진 빵 조각 하나도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심정입니다. 마치 곡식이 무르익으면 추수해야 하는 것처럼, 이런 때가 전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나라들을 기독교 국가라고 말합니다. 옛날에 영국에는 국민의 97%가 크리스천이었는데, 그들은 말로만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일이 되면, 거리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모두 교회에 가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잘 살게 되고, 부요해지고, 배부르게 되니 국민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인이 국민의 3%에 불과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창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성전을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았는데, 지금은 교회가 텅텅 비어있습니다. 건물유지비도 없어서 그것을 팔아버립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한국도 못 살고 어려울 때에는 기도를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여 교회가 많이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잘 살게 되고, 생활이 편리해지고, 살 만해지니 기독교인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24). 부자가 예수님을 믿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은 기독교인들은 교만해지고, 교회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잘 믿어서 부자가 되고, 복을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우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부자 성도들을 보면, 자녀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고, 결혼해도 쉽게 이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된 후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자가 된 후에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자가 되게 해주시지, 왜 부자가 되게 해주시지 않나.’라고 속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세요. 부자가 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는 부자가 되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는 비결을 가르쳐드릴 테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으세요. 제가 가르쳐드리는 대로 하면 됩니다.
첫째, 믿음의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재벌 같은 부자였습니다. 이삭과 야곱도 거부(巨富)였습니다. 요셉 또한 말할 수 없이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의 조상으로서 끝까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면, 놀러 다니고, 골프 치러 다니고, 밤낮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타락하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고, 복음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선한 청지기 같이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재산, 자기의 집이나 모든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타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에 가지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습니다.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갑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부자가 되었어도 자기가 가진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고, 남에게 베풀 때에도 내 것으로 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을 나눌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타락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면, 100배의 복을 받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지고, 때로는 얘기하기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저는 날마다 그것을 경험하며 삽니다. 그래서 저는 물질을 구하지 않습니다. 물질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저를 위해 준비해놓은 것이 크고 많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본문 3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추수기가 지나면, 바로 우기(雨期)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가 오기 전에 늦지 않게 때를 맞추어서 추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포도원의 일꾼 비유를 보면, 오후 5시에도 사람을 포도원에 들여보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1시간 밖에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추수하는 일이 매우 다급하기 때문에 빨리 추수하지 않으면 비가 와서 포도를 다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그런 때라고 생각됩니다. 전 세계에 전도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프리카에 분쟁이 일어나서 자신의 나라를 떠나 헤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난민촌에 가면, 수천, 수만 명의 난민이 있습니다. 그러니 전도하기 얼마나 좋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깊은 산속에 살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숙사를 지어주고, 아이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재워주며 날마다 예배드리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공부할 수 있게 해주니 부모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산지족 마을마다 교회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마음먹기만 하면, 산지족을 복음화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추수할 것이 매우 많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하는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일꾼을 모집하라. 교육하라. 훈련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추수할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초신자입니다.
둘째, 양육된 온전한 성도입니다.
셋째, 성령 충만함을 받은, 헌신된 일꾼입니다. 헌신된 일꾼들은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하며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헌신된 일꾼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수할 일꾼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수영로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청년들이 기도운동을 일으키고, 전도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청년들이 은혜를 받아 얼마나 열심인지, 이들 중에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 부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만히 보니 이런 일꾼들은 100명 몫을 감당했습니다. 교회에 이런 일꾼들이 많을수록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대부분은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 가운데 살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기만 하면 예수님을 믿을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보다 더 잘 믿을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들이 알지 못하고 멸망하게 됩니다. 왜 전도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막 16:15). 이것은 우리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지만,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에 가는 것이 괜찮습니까? 그것을 생각할 때, 마음 아파하고, 부모님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부모님께 전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와 친구들, 사랑하는 이웃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어떻게 전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전도하세요. 1주일에 하루라도 전도하는 날을 정하시고 전도하세요.
먼저, 전도할 대상자의 이름을 적어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세요. “아버지, 이 사람을 전도하고 싶습니다. 이 사람을 전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기도만 시작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축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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