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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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0:56 조회3,724회 댓글0건본문
금식 논쟁
금식논쟁
2013년 09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9:14~17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볼 때, 주로 외모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중심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사람의 중심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외모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중심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외모만 보기 때문에 사람들의 판단은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외모만 보면 아주 훌륭해 보이는데, 마음은 시커먼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물은 아주 잘 생겼는데, 마음은 아주 고약하고, 비뚤어져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람의 외모만 보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때가 많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아주 좋고, 매우 잘 해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사람들을 얼마나 실망시키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의 판단이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외모를 보든지 중심을 보든지 똑같이 좋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인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은 함께 지내보니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인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성도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는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된 줄 믿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는 마태가 나쁜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를 그렇게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마태를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세관에 앉아있던 마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의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마태는 후에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훌륭한 제자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마태는 예수님과 자신의 친구들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잔치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잔치였습니다. 마태가 세리의 생활을 청산하면서 옛날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송별잔치임과 동시에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과 제자들의 환영을 받는, 뜻 깊은 환영잔치였습니다.
특히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듯이 마태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신랑 되신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이는, 아주 복된 잔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잔치는 참으로 기쁨이 넘치는 잔치였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기록보다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있는 누가복음에 보면,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눅 5:30).
누가복음 5장 33절에 보면, 이번에는 그들이 예수님께“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금식해보셨습니까? 금식기도 해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 저는 금식기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에는 먹는 것도 귀찮았습니다.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빨리 응답 받아야 하니까, 일이 급하니까 물만 마실 뿐,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적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시온관을 구입할 때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얼마나 생기는가 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돈을 하나님이 다 주신 것 같고, 마치 내 손에 그 돈이 들려있는 것처럼 믿어집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믿음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장로님들께 돈 걱정하지 말고, 계약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장로님들은 누군가가 제게 돈을 준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계약한 후 15일 안에 땅값의 절반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헌금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땅값을 지불해야 하는 날짜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헌금을 작정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응답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기도하는데, 헌금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주신다고 해놓고 왜 주시지 않습니까?”라고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월요일에 땅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약금을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주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주님은 제게 이사야 45장 2~3절 말씀이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응답을 받았지만, 주일에도 계속해서 금식하며 다섯 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기도하다가 응답 받은 것을 설교 중에 이야기했더니 다들 “아멘”하며 좋아하는데, 여전히 아무도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 작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오직 기도만 할 뿐입니다.
다음 날에도 계속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낮 12시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은행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 은행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주보에 기록된 은행계좌로 헌금하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많은 헌금이 들어오는지, 땅값의 절반을 지불하고도 1억 8천만 원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분이 좋으시면 넘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자라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아주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금식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저는 금식기도를 하다가 복을 많이 받은 목사입니다.
여러분 중에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분은 기도하다가 중단하지 마시고,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고, 금식기도 하다가 죽을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 하나님이 정말 응답하시는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금식기도와 바리새인의 금식기도는 전혀 다릅니다. 바리새인들은 한 주에 두 번씩 무조건 금식했습니다. 특별히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금식기도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은 금식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기도 많이 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든지 기도하든지 헌금하든지 구제하거나 봉사하든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기쁨으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전 건축을 위해 헌금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기쁨으로 헌금해야 합니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헌금하려면 자원해서 헌금하세요. 기쁨으로 헌금하세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세요.
체면을 차리고, 눈치를 보고, 마지못해 헌금하지 마세요. 형식적으로 헌금하지 마세요. 그런 것은 하나님이 열납하시지 않으십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빚을 내서 헌금하지 마세요. 억지로 헌금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주시면 헌금하세요. 헌금으로 인해 절대 부담 갖지 마세요.
저는 48년간 목회했는데, 성도들에게 헌금 작정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헌금은 저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까지 하며 성전을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전을 지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자원하여 헌금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기쁨으로, 자원하여 헌금한 성도들의 헌금이 언제나 차고 넘쳤습니다. 모자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이것을 간증합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억지로 헌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헌금하는 사람들은 다 자원하여 헌금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모자라지 않고, 언제나 넘치게 들어옵니다. 세상에 이런 교회가 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헌금한다거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헌금한다거나 마지못해 헌금한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5장 33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불평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5:34~35).
혼인 집에 많은 손님들이 왔는데, 신부가 금식기도 시간이라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손님에게도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신랑과 손님에게 잘 대접하고, 그들을 기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그리고 ‘신부’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금식에는 때가 있습니다. 반드시 금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날’은 금식해야 할 때를 의미합니다.
원수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할 때, 이때야말로 금식을 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들에게 붙잡혀 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보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가시는 때, 이때야말로 금식해야 하는 때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만 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2:46).
찬바람이 부는 것과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험 당하는 것과 시험에 드는 것은 전혀 관계없습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시험이 시험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시험 당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시험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듯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나 시험 당할 수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시험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에 드는 사람은 시험이 시험으로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찬 바람이 분다고 해서 누구나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찬 바람이 불 때, 건강한 사람은 “야, 시원해서 좋다.”라고 하며 오히려 좋아합니다.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시험은 옵니다. 마귀는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그리고 시험을 잘 이깁니다.
시험이 오는 것은 기도하라는 사인(sign)인 줄 알고, 특별히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승리합니다. 어떤 때에는 금식기도 하면서 어려운 시험을 잘 이겨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믿음이 더욱 강해지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험 당하는 것은 괴롭지만, 시험을 잘 참고 견디므로 이기면, 그것이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큰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시험 중에도 하나님과 늘 동행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셉은 총리가 되어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까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큰 시험을 당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잘 참고 이기면, 하나님 앞에 인정받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됩니다. 큰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큰 일꾼이 됩니다.
큰 시험이 왔을 때, 죽을 각오로 금식하며 기도해보세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종 노릇할 때,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아놓고, 하루 종일 회개하고 금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셔서 블레셋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완전히 물리쳐서 멸하고, 잃어버린 땅까지 다 회복했습니다.
합심해서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에스더를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한 날에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사흘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래섯 결국 원수를 멸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은 멸망해야 할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사람은 물론이요,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어려움이 있고, 여러분의 사업과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문제와 어려움을 끝장내는 방법은 죽을 각오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기도 하다가 죽을 각오를 하세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위기가 왔을 때 금식기도 하면, 큰 기적을 체험하게 되고,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큰 일꾼이 될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9장 16~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술은 계속 숙성되면서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새 부대에 넣어야만 부대가 견딥니다.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져버립니다.
여기서 ‘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그렇게 살지 못했고,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는 위선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100% 다 지키므로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자기 행위로 구원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줄 아십니까? 왜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아이신 줄 아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다 청산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해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4~6절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7백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계시를 받아 이렇게 생생하게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진리요, 이것이 새 옷이요, 이것이 새 부대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하듯이,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진리를 믿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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