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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8장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각오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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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20 07:11 조회1,3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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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각오와 자세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각오와 자세

2013년 04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8:18~22

 

여러분은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공적인 삶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아마 생각하기에 따라 사람마다 여러 가지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답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세상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박수를 받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모두 구원해서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해서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다 예수를 믿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구원 받으려면, 예수 믿으므로 구원 받게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믿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고,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하는 일을 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 믿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시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성령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믿도록 증언하고, 예수 믿게 만드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시작부터 끝까지 다 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을 때,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느냐”라고 하며 야단법석을 떨며 비방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17).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일한다고 말씀하시며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일’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가리킵니다. 이 일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안식일에도 쉴 수 없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면 안 된다고 해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가만히 두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짐승이 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는데, 안식일이라고 해서 내버려둘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물며 안식일이라고 해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쉴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쉴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도 그 일은 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영혼 구원하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려함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역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만들기 위해 주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4:19). 바다에서 물고기를 건져내듯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제자 몇 명이 물고기를 잡고 있는 디베랴 호숫가에 찾아오셔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반복해서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은 특별한 축복인 줄 믿습니다.

 

본문에 보면,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서기관은 성경을 기록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지만, 서기관은 대단한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서기관을 제자로 받아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서기관이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인기가 대단하니까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말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서기관을 받아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 서기관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의도가 잘못되어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사나 선교사가 된 사람들은 대개 사명감에 불타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니고, ‘주님의 제자가 되면 좋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여 목사나 선교사가 된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명감도 부족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데, 자신을 부인하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십자가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광만 받으려고 하고, 편하게 일하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는 것은 단순히 배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같이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해 모든 재산을 팔아 밭을 산 사람처럼, 모든 것을 희생하고, 주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은 그런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각오도 없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사는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자기의 집이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대단한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주 편안하게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교국가 같은 곳에서는 예수 믿으려면, 가정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죽을 각오도 해야 합니다. 이런 곳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언제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르고, 언제 테러를 당할지 모릅니다. 저는 그분들을 보통 사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편안하게 살 수도 없습니다. 핍박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죽을 각오 없이는 그곳에 가서 선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나라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는 분들입니다. 날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사를 만나보면, 회교권 나라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은 삶의 자세가 다르고, 신앙자세가 다릅니다. 선교하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쁨으로 감당하고, 죽는다고 해도 기쁨으로 순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선교합니다.

어려운 지역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대개 사소한 일에 한눈팔지 않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선교하시는 분들은 정신 상태가 다르고, 신앙의 자세가 다릅니다.

저는 어려운 지역에서 선교하는 분들을 순교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순교자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8장 21~22절에 보면,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가서 장사(葬事)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연히 허락하실 것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자녀로서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난 후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부모를 섬기고, 부모의 남은 생애를 돌보고,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난 후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은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5~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6절에 보면,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큰 원수는 자기 집안 식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불효자식, 예수 믿으려면 집에서 나가라.”라고 하며 반대하는 부모는 어느 사람이 반대하는 것보다 자식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 권사님들 가운데에도 아들이 목사 되겠다고 하고, 회교권 나라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하니까 반대하는 분이 계십니다. 선교사가 되려면 복음 전하기 편한 나라로 가지, 왜 힘든 나라로 가냐고 하시며 반대하는 분이 계십니다. 자식이 힘든 나라에 가서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고, 복음 전하는 것을 반대하니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때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그러니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순종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 부모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를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수는 나 자신입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 내 생각, 고집, 정욕, 죄악 된 속성 등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수이고,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가족들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부친을 장사지내고 오겠다고 하니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돌아가신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면, 천국에서 아버지가 세상에 있는 자식을 내려다보며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까? 주님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의 영광이 얼마나 큰가를 천국에서 알게 된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까? ‘나를 장사 지내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 너는 주님을 따라라’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가 장례를 잘 지내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것보다 부모를 더 기쁘게 하는 효도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돈 들여서 장례식 잘 치르려고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 부모님께 용돈 잘 드리세요. 평소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잘 해드리세요. 돌아가신 후 장례식 잘 해드리면 무엇합니까. 돌아가신 분은 모릅니다. 음식을 아무리 많이 차려놔도 잡수시지 못하십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심각한 병에 걸려 앓고 있을 때, 걱정하면서 아이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경배한 후 음식을 먹고 왕좌에 앉아서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에는 금식하며 기도하던 왕이 아이가 죽으니까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삼하 12:21~23).

아들이 죽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 뜻대로 된 것인데,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평생 울면서 지내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평생 울면서 살면, 천국에 가신 부모님이 좋아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부모님을 데려가셨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천국에서 보시기에도 기쁨이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영적으로 죽은 자가 육체적으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권을 가지는 종교적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최대 의무임을 말씀하시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중요한 일은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환경이 달라지기를 기다려도 안 됩니다. 지체해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해서 구원 받게 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충성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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