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것을 개 에게 주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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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20:53 조회5,445회 댓글0건본문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2013년 02월 03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7:6
본문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다른 것과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이나 성품이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같지 않고,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도록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별되게 사는 것이 곧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세속화된 삶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과 같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믿지 않은 사람인지 알 수 없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속화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구별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거룩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날이 같지만, 안식일은 구별된 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날입니다. 엿새 동안에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하루는 자신을 위한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날입니다. 그래서 ‘성일(聖日)’이라고 합니다.
교회 건물은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지은 건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위해 쓰려고 구별한 건물입니다. 그래서 ‘성전(聖殿)’이라고 합니다.
목사, 전도사, 장로 등의 직분은 세상의 직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성직(聖職)’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있는 의자나 강대상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것이기 때문에 ‘성구(聖具)’라고 합니다. 찬송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성가(聖歌)’라고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주는 보배 중의 하나로, 아주 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5~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주가 얼마나 귀하기에,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 진주를 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주는 정말 가치 있고, 귀한 보배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룩한 것’과 ‘진주’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복음을 의미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복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재벌이라도 구원 받지 못했다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했어도 잠시 동안 영광을 얻을지 모르지만, 복음을 듣지 못했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지옥에 가는 저주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은 아주 귀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믿으므로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복 중의 최고의 복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받게 되는 복입니다.
그런데 귀한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개와 돼지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개는 주인 없이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아무거나 먹는 더러운 개를 가리킵니다. 이런 개는 아주 음란합니다.
성경에서 돼지는 하나님께서 부정한 동물로 구별한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개나 돼지 같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4:2).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셔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지 않은 그들 가운데 머물러있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곳으로 가셔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5~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시면서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 11~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영접하지도 않고, 복음을 듣지도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택하시지 않은 백성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을 들고 와서 전해주는 것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그 집에서 나와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 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믿기로 작정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처음에는 믿음이 작지만,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지옥에 가기로 이미 정해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믿어진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예수님이 믿어진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믿어지지 않고,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옥에 가기로 작정된 사람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을 듣고 순종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는데, 믿지 않는 사람은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해놓으신 사람,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영생복락을 누릴 사람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듣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방인 중에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사람이 있지만, 유대인 중에도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6~47절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기를 포기하고, 이방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시민들을 향해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7~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붙잡고 세월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도하는 사람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빨리 피해서 다른 동네로 가야 합니다. 전도해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직 온 땅을 다니지 못했는데도 예수님이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지 않는 자도 문제이지만, 복음 전하는 자를 핍박하는 자는 더욱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개나 돼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개나 돼지는 진주가 귀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개나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주보다 귀한 복음을 전해주는데, 고마워할 줄 모르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배척하기만 해도 나쁜 짓인데, 복음 전하는 사람을 괴롭히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네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기도 하고, 때로는 순교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죽게 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다 끝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할 수 있다면, 우리가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한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 23~25절에 보면,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자, 제자들은 사울을 도망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울은 전 세계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영혼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복음을 들어야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을 수 있는데,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으니 그 사람은 예수 믿을 기회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한 번도 얻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게 된 것만으로도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이 귀합니다. 복음을 듣게 해주고,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듣기는 해도 믿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구원 받을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고, 반대하고, 대적하고, 핍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개와 돼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해보면, 예수님을 믿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교회에 나오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가 평소 어떻게 전도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까요? 전도의 열매가 없는데도 계속해서 그곳에서 전도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까요? 그것은 허송세월하는 것입니다. 빨리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평생 선교한다고 하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곳에서 20여 년 동안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운 이때에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는 것보다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나라를 다 복음화하려고 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와 돼지 같은 사람들에게 진주보다 더 귀한 복음을 전한다면, 오히려 핍박하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위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으로 인해 ‘내가 이 사람들도 전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전도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예수님을 잘 믿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핍박하는 것을 피해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임을 아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전도하여 여러분을 통해 구원 받게 되는 자가 많이 생기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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