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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7장

비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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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20:50 조회5,1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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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

2013년 01월 20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7:1~5

 

저와 여러분은 예수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죄가 많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일수록 사랑이 많아져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허물이 많이 있어도 허물을 덮어주려는 마음이 있고, 허물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허물이 밉게 보이지 않습니다. 내 눈에는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허물을 가려줍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에 왜 미움이 생길까요? 미움을 가지면, 왜 다투게 될까요? 마음에 사랑이 없고, 미움이 있는 사람의 눈에는 허물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보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죄가 많아도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허물이 있고, 죄가 있습니다. 허물과 죄가 없는,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허물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허물이 많은 데도 그 허물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허물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고, 허물이 보이는 것이 싫고, 눈에 거슬리고,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지적하기 시작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의 기분도 좋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은 화가 납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이 없어집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서로 미워하게 되면, 상대방의 허물만 보여서 허물을 말하다 보면, 서로 다투게 되고, 마음에는 지옥이 이루어져서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본문 마태복음 7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상대방에게 허물이 있어도 그것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남을 비판하면, 반드시 나 자신도 비판 받기 때문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7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의미입니다. 자꾸 비판하고 다니면, 결국 비판 받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대개 똑똑한 사람들이 비판하기를 잘합니다. 머리가 좋고, 판단을 잘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허물과 죄를 속속들이 파헤치며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게 되고, 이런 사람은 인기가 아주 높습니다.

그런데 비판하기를 잘하는 사람이 비판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비판하기를 잘하는 사람의 주변에는 비판하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들은 모이면 비판하느라고 정신없습니다.

이들은 자기들 사이에서도 허물과 죄를 잘 찾아내기 때문에 서로서로 비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몇 배의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에 세워놓고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요 8:4~5).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시며 시간을 끄셨습니다. 그랬더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계속해서 질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7).

 

이때 기세등등하던 무리들은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물러갔습니다. 이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돌로 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죄 없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행함으로 범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마음으로 간음죄를 범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그들은 물러갔습니다.

 

지금은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자기에게는 더 큰 허물이 있는데도 자기의 허물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7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티는 눈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들보가 눈 속에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그러니 눈 속에 들보가 있다는 것은 지나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랍비들의 교훈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은혜 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은혜를 받을수록 영안이 밝아집니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을 잘 보지만, 자신의 속은 잘 보지 못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영안이 밝아져서 자신의 속을 봅니다. 영안이 밝아지니 자신의 속에 죄와 허물이 얼마나 많은지 보입니다. 그리고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일수록 “아버지, 저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저는 정말 죄인입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죄를 많이 범했기 때문에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은혜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죄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죄가 가장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쉽게 비판하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용을 베풉니다.

은혜 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너그럽습니다. 자신이 가장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의 허물과 죄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비판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우리는 다른 사람을 똑바로 알고 올바르게 비판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사람을 정확하게 보시고,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안다고 해도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지, 전체를 알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한 부분만 보고,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비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노릇을 하겠다는, 건방진 짓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판단하고,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비판하는 것은 분수에 지나친, 아주 건방진 행동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우리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함부로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아니고, 세리도 아니고, 죄인도 아니고, 강도도 아니고,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눅 18:9).

누가복음 18장 10~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했습니다. 이들은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했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책망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꿈에라도 바리새인들의 나쁜 습성을 조금도 닮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남을 판단하는 대로 자신을 정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장 1절에 보면,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만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자신은 더 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정죄하는 것은 곧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됩니다. 자신도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그대로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됩니다.

 

여섯째, 남을 판단함으로 죄를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비판하는 것은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비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실 일인데, 비판하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 행세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죄가 됩니다.

 

바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가 사람을 안다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해 100%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한두 가지 문제를 놓고 비판한다면, 문제에 가려진 좋은 점이 그 사람에게 많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올바르게 비판하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판할 때마다 실수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비판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우리가 가져야 할 여섯 가지 덕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좋은 점과 좋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 좋은 점을 보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덕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고, 좋은 점을 얘기하고, 좋은 점을 칭찬해주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덕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나쁜 점만 생각하고, 나쁜 점을 비판해서 상대방이 나쁜 점을 고치면 좋은데, 상대방의 나쁜 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면, 상대방은 진짜 나쁜 사람이 되고, 점점 더 나빠집니다.

반대로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고, 좋은 점을 생각하고, 좋은 점을 지적해주면, 그 사람은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이 원리는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부부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한 주간 좋지 않은 점은 지적하지 말고, 좋은 점만 찾아보라. 좋은 점만 말하라’는 테스트를 했습니다.

부부는 서로에게서 좋은 점만 찾으려고 하고, 좋은 점만 말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이렇게 좋은 사람과 같이 살면서 그것을 몰랐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테스트 후에 부부 사이가 더 좋아지고,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보세요. 좋은 점을 지적해주고, 좋은 점을 칭찬하고, 축복해보세요. 그러면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비판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상대방의 나쁜 점을 보고, 나쁜 점을 이야기하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점점 더 나빠집니다.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봐야 합니다. 좋은 점을 말하고, 좋은 점을 칭찬해주고, 좋은 점을 축복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나도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하고, 세상도 좋아집니다. 이 말씀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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