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0-07 10:06 조회2,171회 댓글0건본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2021년 11월 07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7:13~14
본문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두 가지의 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는가에 따라 생명을 얻을 수도 있고,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좁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으로 가는 사람이 적습니다.
반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큽니다. 그리고 그 길이 넓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적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곡식은 하나님의 자녀요, 가라지는 마귀의 자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교회에 모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 알곡 신자는 적고, 가라지 신자가 많습니다. 마귀가 마귀의 자녀를 교회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영생을 얻은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아 멸망할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속에 생령을 불어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 중에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준비하신 것을 사람에게 주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껏 정복하고 다스리고 취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계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에 따르는 책임은 매우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을 것이고, 먹지 않으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어 아담도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은 저주를 받아 늙고 병들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죽어 지옥에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불행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이요 계명입니다. 신명기 30장 15~18절에 보면,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하면 생명을 얻고 번성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 번성하느냐 멸망하느냐가 결정됩니다.
신명기 30장 19~20절에 보면,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복 받는 길과 저주 받는 길을 우리 앞에 두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켰을 때에 받는 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여 복 받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신명기 28장 15~6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 받는 저주가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 받는 저주가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되는 일이 없습니다. 결국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 복을 받느냐 저주를 받느냐가 결정됩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요셉은 노예가 되어 애굽으로 갔습니다.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요셉을 샀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요셉은 거절했습니다. 하루는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으며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이때 요셉은 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요셉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시려고 요셉을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길을 택한 요셉을 축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 26).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산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행위를 보면,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큰가 작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행위로 드러납니다. 행동을 보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행위로 구원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행위로 드러납니다. 행위를 통해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자원하여 섬길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자녀, 천국 시민,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억지로 섬기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알 수 있습니다. 형제에게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요, 마귀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3장 11~12절에 보면,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벨이 잘못한 것이 있어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악한 짓을 하는데, 아우는 악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아우를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3장 13~15절에 보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살인은 미움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보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입으로만 사랑을 표현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사랑을 진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오늘날 분쟁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시끄러운 교회가 많습니다. 서로 미워합니다. 서로 싸웁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가라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마귀의 자식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갈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서로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싸워서는 안 됩니다. 분열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서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 받으려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7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짐을 지고서는 갈 수 없습니다. 죄짐을 벗은 사람만 갈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회개는 사는 길입니다. 죄를 많이 범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돌아오면 삽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옷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게 했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5~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맏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맏아들에게는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동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동생의 잘못을 용서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맏아들은 전형적인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하게 살았지만 돌아왔습니다. 반면 맏아들은 성실하게 살았지만, 그의 마음에 사랑이 없었습니다. 용서할 줄 몰랐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자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죄를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무조건 받아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마귀에게 속지 않습니다.
왜 자살합니까? 마귀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어도,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용서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가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가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진리로 믿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2~13절에 보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진리로 믿는 사람은 생명을 얻습니다.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진리로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시고, 생명이시고, 구원의 길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은 구원 받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갑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받습니다.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도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 무오합니다. 틀린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영원합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주십니다.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에 진을 쳤을 때, 정탐꾼 열두 명을 그곳으로 들여보내서 40일 동안 그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40일 후에 정탐꾼들이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힘으로 홍해를 건넜습니까. 하나님께서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습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날마나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싸웠을 때에도 자기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에는 이스라엘이 이겼지만,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모세를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완전하게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싸워 주십니다.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지 않으시면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백성을 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2~3)”고 말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밤새 통곡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통곡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속상하셨겠습니까.
민수기 14장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셨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께서 싸워 주시면 쉽게 사라져버립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말한 대로 광야에서 죽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행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원망 불평하다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추종자들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화론을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습니다.
왜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까? 그들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습니다.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예수님의 행적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기록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예수님의 행적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도 믿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기 때문에 죄를 마음껏 짓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상을 마음껏 숭배합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0~21절에 보면,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방인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단입니다. 엉터리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천주교를 중심으로 하여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합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의 기도에는 예수님이 빠져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는 같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멸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길로 가고 있는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향해 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향해 가지 않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향해 가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