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저주로 바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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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6 14:55 조회8,018회 댓글0건본문
축복을 저주로 바꾼 사람
축복을 저주로 바꾼 사람
2006년 08월 25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6:31~34
마태복음 6장 30~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라면 몰라도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라면,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 책임지십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들, 즉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뭐가 있어야 하는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 주시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일평생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매일 끼니 걱정을 하고 산다면, 이보다 더 불쌍한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신자와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먹고사는 문제로 시달리셨다면,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에 병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끼니 걱정을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적으면 적을수록 세상 걱정이 많아집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세상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만 바라보며 삽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바라볼수록 마음은 불안해지고 희망은 없고 앞날은 캄캄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십시오. 희망이 없고 걱정이 그칠 새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만 바라보며 살면, 우리의 믿음은 더 약해집니다. 후에는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보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보며 사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 믿음을 잃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지전능하십니다. 지혜와 능력이 완전하십니다. 인격, 말씀, 생각, 뜻 등 모든 것이 완전하십니다.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이 없으십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스리시고, 지혜가 완전하셔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완벽히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공중의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죽는 것, 흥망성쇠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보며 원망불평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묻고 매달리십시오. 그러면 불을 받고 음성을 듣고 믿음이 생깁니다.
야곱이 복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세상 걱정을 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언제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적으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그에게 엄청난 재산과 왕권을 물려주었습니다. 다윗은 많은 아들들 중 나이 어린 솔로몬에게 왕권을 물려주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기브온 산당에서 1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솔로몬은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9)”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 3:11~14)”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 4장 7절에 보면,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되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엄청난 좋은 것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4장 20~25절에 보면,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 솔로몬의 하루의 음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 고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 고르요 살진 소가 열 마리요 초장의 소가 스무 마리요 양이 백 마리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라가 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전 세계를 다스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원수가 없이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다 조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열욍기상 4장 29~34절에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솔로몬같이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엄격히 따지면, 왕이 될 자격도 없고 이렇게 큰 축복을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솔로몬은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1장 6절에 보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남의 아내에게서 낳은 자식입니다. 다윗이 충신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큰 죄입니다.
우리야가 전쟁 중에 있을 때, 아내 밧세바가 대낮에 목욕하는 것을 다윗이 보고 음욕이 생겨 불러 임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우리야 장군을 불러들여 집에서 자라고 했지만, 우리야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할 수 없이 우리야를 최전방으로 보내 죽게 했습니다. 사무엘하 11장 27절에 보면,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셔서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고 하며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죄 가운데 생긴 아들을 하나님께서 치시니 아들이 심하게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이가 아파 죽을 때까지 일주일 동안 금식하며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는 이유입니다.
사무엘하 12장 24~25절에 보면,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는 의미의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철저히 회개한 후 얻은 아들이고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신 아들입니다.
이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끝까지 기다렸어야 했는데, 애굽 여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 자손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인이고 아랍인들입니다. 인류 역사의 비극입니다.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저절로 마지막 대환난이 일어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믿음이 약해서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 우리와 같습니다.
이삭 역시 별미를 가져다주는 아들을 좋아합니다. 야곱은 꾀가 많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습니다. 급하면 거짓말도 했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아들로, 자신의 며느리인 다말을 통해 쌍둥이를 낳고 대를 이어갑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별 일이 많습니다.
요셉은 마마보이였습니다. 매일 고자질하고 꿈 이야기를 해서 형들이 얼마나 죽이고 싶었겠습니까!
다윗 역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라 하지만, 충신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자식을 낳았습니다.
솔로몬 역시 말할 것이 없습니다. 여자를 천 명이나 두고 밤낮 술을 마셨습니다.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믿음의 조상들도 다 죄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첫째,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하십니다. 과거에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명으로 인해 기뻐하시는 것보다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축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도 그렇게 축복하시고 싶어 하셨는데, 저와 여러분을 어찌 축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저주를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복을 이어받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저주로 바꾸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세상 향락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썩어질 육신의 쾌락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쾌락을 위한 일이라면 별별 것을 다했습니다. 솔로몬은 죄를 많이 범해서 오히려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짓는 사람은 술 먹고 방탕하면서 기쁜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죄 지은 후에 더 큰 후회가 뒤따릅니다. 솔로몬은 죽고 싶어 할 정도로 괴로워했습니다.
둘째, 이방 여자들과 함께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1장 1~3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천 명 이상의 여자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했던 원인은
첫째,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최우선순위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잘 섬기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모든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마지막 때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입니다.
잠언 9장 10~12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학생 시절에 기도하고 교회에서 사는 시간이 많아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첫째로 여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중에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게 하시고,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로 늘 준비하셨고, 가장 좋은 길로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학교로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만 잘 섬기면 세상에 이것보다 더 지혜로운 것은 없습니다.
솔로몬은 정치는 잘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향락에 빠져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등한히 했습니다. 그래서 타락했습니다.
살림, 공부 모두 잘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바뀌면 안 됩니다.
둘째,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세 끼 밥 먹고 호흡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며, 호흡 같은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길을 걸으면서도 기도해야 하고, 운전하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면 손도 얼굴도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잠자기 전에 반드시 씻고 자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보면, 우리의 심령 역시 더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더러운 것을 보고 말을 실수합니다.
더러워진 심령을 씻어야 하는데, 그것이 거룩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쉬면 안 됩니다.
기찻길에 선로가 둘 있습니다. 기차가 이 선로 위에 있으면, 신나게 달립니다. 그러나 선로를 벗어나면 꼼짝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항상 무장되어야 성공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날마다 찾아오는 외국의 왕과 손님들로 환영하는 등의 바쁜 스케줄로 말씀보고 기도할 시간이 없어서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이방 여자와 연애해서 그를 아내로 삼습니다. 이것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 드리기 전이고,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인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방 여자를 데려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했다는 것은 즉 성경을 보지 않은 증거입니다.
열왕기상 11장 1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애굽 왕의 딸 외에도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 등 많은 이방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일생을 망쳤습니다.
솔로몬이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듯이 날마다 산당에서 번제를 드리고 새벽예배를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금으로 만든 성전에서 율법책을 펴서 지혜로운 머리로 읽고 묵상하고 기도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이 헌당식한 이후 성전에서 기도했다는 말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아무리 성전을 잘 지으면 뭐합니까. 날마다 번제는 드리지 못해도, 한 마리의 양이라도 번제를 드리며 새벽예배에 나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면, 찾아오는 외국 왕들에게 전도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짓고 각종 우상을 넣고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책망하셨지만, 솔로몬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망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을 저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셔도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저주가 됩니다.
잠언 30징 7~9절에 보면,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축복이 됩니다.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돈이 생기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돈이 생기면 여행하고 놀러 다니고 세상의 감투 쓰고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교회모임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 모임에 다녀오면 술 한 잔씩 하면서 점점 타락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세상의 복이 오히려 저주입니다. 그것을 알고 구하십시오. 덮어놓고 사업의 번창과 물질을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인색하셔서 주시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감당하지 못할 자에게는 주시지 않으시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준비해놓으신 것이 너무 많고 크고 넓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감당할 만큼 달라고 기도하면, 감당하는 대로 주실 것입니다.
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돈이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옷을 계속 입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감당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이 주셔도 그것 때문에 타락하지 않고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날마다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거나 세상의 축복만 구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의롭다 함을 얻기를 구하며 살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신실하시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므로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솔로몬같이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셔도 하나님을 더 섬겨서 세상적으로 믿음도 더 잘 되어 백 명, 천 명의 몫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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