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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5장

맹세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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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20:11 조회5,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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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2012년 10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33~37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자세히 교훈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고, 우리는 우리가 받은 복을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며 사는,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사는 삶,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삶입니까.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1).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속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이미 살인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인자가 살인하기까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미워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결국 살인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 자체가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인이 아우 아벨을 미워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커졌는지, 들판에 아벨과 단 둘이 있을 때,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최초의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에서도 야곱을 미워하여 야곱을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었습니다. 살인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만일 야곱이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미운 마음이 쌓여서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평소 미워하던 마음에서 죽일 마음으로 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살인자의 마음입니다.

 

내가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미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회하다 보면,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제 경우에는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보이면, 그 사람을 위해 특별기도를 합니다. 그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미운 짓을 하는 것을 보면, 미워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지만, 미워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그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 예수님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고 마음속에 음욕을 품기만 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음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막 10:9)

여러분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가장 좋은 사람을 택하셔서 짝지어주셨다고 믿어야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자신이 좋아해야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싫어하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많은 가정이 이혼하고,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이 싫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제 경우에는 결혼할 때 제가 좋으냐 싫으냐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짝지어주신 사람이 누군지를 알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제 아내는 제가 싫어하는 유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제 아내가 싫어하는 유형이었습니다. 살다 보니 나에게는 아내 같은 유형이 가장 적당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제가 싫어하던 부분들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게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결정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한 사람도 잘못이지만, 간음하도록 내버려둔 사람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했습니다(고전 7:8~9). 그리고 “서로 분방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고전 7:5).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분방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아프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든 분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잠시 분방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합의해서 분방하고, 다시 합하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맹세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33~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사람들이 맹세하지만, 그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이 아주 많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꼭 지킬 것처럼 맹세하며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맹세까지 하며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짓말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맹세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전도의 문이 막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맹세해서는 안 됩니다.

 

맹세는 자신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쉽게 맹세하며 말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의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게 됩니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예수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신명기 23장 21~23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맹세한 것을 지키라는 이 말씀은 레위기 19장 12절, 민수기 30장 2절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요약하면,

첫째, 쉽게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깊이 생각해보고 말해야지,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둘째, 운명을 거는 약속, ‘죽어도 좋사오니’와 같은 말을 하며 맹세할 때에는 신중히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셋째, 맹세했으면, 상황이 변하든지, 혹시 해가 될지라도 마음이 변하지 말고, 성실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시편 15편 4절에 보면,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약속했는데, 알고 보니 엄청나게 손해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맹세하며 서원하고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21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변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들을 때에는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처럼 결심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가면서 마음이 변합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교회에서는 결심했는데, 집에 가면 생각이 달라지고, 설교를 들을 때에는 결심했는데, 예배 마치고 교회에서 나가면서 마음이 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주 쉽게 변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까닭은 우리는 맹세한 대로 지키려고 하지만, 불가불 맹세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맹세한 것을 본의 아니게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맹세하며 말했습니다(마 26:35, 막 14:31).

저는 베드로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베드로에게 ‘나는 죽어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니, 목숨 걸고 맹세했던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병들거나 사고가 나거나 예기치 못한 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맹세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이름만 빼놓고 맹세하고 지키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라는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약삭빠르게 맹세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6~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34~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결혼 서약하는 것도 일종의 맹세에 속합니다. 임직식 할 때 직분을 받는 자들이 서약하는 것도 충성하기로 맹세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해서는 안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맹세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맹세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이 나쁜 것이고, 맹세한 것을 지키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맹세한 것을 지킬 힘도 없으면서 마치 꼭 지킬 것처럼 헛맹세를 하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맹세한 것을 지키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 짓는 것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배신감을 갖게 합니다.

 

결혼서약과 임직서약을 하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지키지 않으려고 마음먹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키지 못할지언정 이런 좋은 맹세와 서약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결혼서약을 하고, 임직서약을 한 사람은 서약한 대로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서약한 것을 어겼을 경우에는 돌이킬 수 있습니다. 서약한 것을 어기고 죄를 범했을 경우에는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창세기 28장 20절에 보면,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서원기도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서원한 대로 지킬 힘이 없어도 “아버지, 나와 함께해주시고 축복해주세요. 앞으로는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습니다.”라고 결심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에게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야곱의 서원대로 야곱과 함께해주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은 서원한 것을 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킨 것도 있고, 지키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킬 수 없었고, 지킬 수 있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살고 싶어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서원기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시고, 야곱과 함께해주셨습니다. 야곱이 가는 길을 하나님이 인도해주셨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갔을 때에는 형편없었는데, 나중에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거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결단하고 나아가니까 하나님은 야곱을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서원한 성전은 다윗 때에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7장 46~47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조상 야곱의 집을 위해 성전을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네 아들 대에 가서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온 정성을 다해 성전을 지을 준비를 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윗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서원한 것을 지키지 못했는데, 자손에 의해 서원한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통해 저는 놀라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서 큰 꿈을 가지고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 자체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서원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못하면 자손에 의해서라도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원할 때에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우리의 무지함과 무능함을 알고 겸손하게 서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아버지, 주시면 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하는 것은 지혜로운 서원입니다. 날마다 이런 서원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큰 꿈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하는 것은 겸손한 서원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서원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0~21절에 보면,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못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3~16절에 보면,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1년을 더 산다는 보장이 없는데, 1년 동안 장사해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약속은 아예 약속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 전도의 문을 막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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