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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5장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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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8:06 조회5,8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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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2012년 04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6

 

신명기 32장 3~4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 자기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생각도 공의로우시고, 말씀도 공의로우시고, 행하시는 모든 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허물과 실수가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지혜도 완전하시고, 지식도 완전하시고, 능력도 완전하십니다. 인격도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입니다. 말씀도 완전하시고, 계획도 완전하십니다. 행하심도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완전한 의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도 의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롭게 사는 자를 아주 기뻐하시고, 의롭게 사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공의롭게 산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공의롭게 사는 사람만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그 도시가 살고, 그 나라가 삽니다. 소돔, 고모라 백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롭게 사는 의인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귀하게 여기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의’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는 기준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민족에 따라 의의 기준이 다릅니다.

남한과 북한의 의가 다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말하는 의와 북한에서 말하는 의가 다릅니다. 북한에서는 공산당의 결정에 따라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공산당 간부들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그 결정에 따라 충성하는 것이 북한에서 말하는 의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볼 때에는 악하고 불의한 짓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의를 성경 말씀과 비교해보면, 아주 잘못된 경우일 때가 많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모든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롭지 못한 인간이 주장하는 ‘의’가 언제나 똑같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의가 달라집니다.

가치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상 사람들, 타락한 사람들의 가치관은 다릅니다.

모든 인간이 타락함으로 의의 기준도 타락했고, 타락한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의에 대해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봐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참으로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모두 타락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롭게 살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의롭게 살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 타락의 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멸망하지 않고,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8~9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셨고,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를 믿기만 하면, 믿음으로 의인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의인’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5편 12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34편 15절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고, 시편 34편 19절에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37편 39절에는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라고 기록되어있고, 시편 92편 12절에는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8편 15절에 보면,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라고 기록되어있고, 시편 146편 8절에는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3장 33절에는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고, 야고보서 5장 16절에는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8절에는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의인’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이 구절들을 통해 의인이 얼마나 복되고, 의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죄 없는 의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 없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은 의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라고 사도 바울이 아주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대로 잘 지켜서 의인 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율법대로 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게 되면 우리는 죄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의인이 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지만, 우리 안에는 타락의 속성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의인은 없다고 했습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 보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의롭게 살 수 없지만, 의롭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고파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먹으려고 찾는 것처럼, 의롭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자신이 의롭지 못한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의롭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타까워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바르게 살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영안이 밝아지고, 예전에는 죄를 짓고도 자신이 죄를 지은 줄 몰랐는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영안이 밝아져서 작은 죄까지도 깨닫고, 밤새도록 울부짖으며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칩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큰 죄를 범하고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많은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작은 죄 때문에 몸부림치고 눈물 흘리며 회개한다면, 하나님이 이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큰 은혜를 받고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죄와 싸워 이기게 되고, 마귀와 싸워 이기게 되어서 거룩하게 사는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사랑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배부를 것이요’라는 말은 아주 맛있는 음식을 잘 먹고 배불러서 만족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만족한 삶을 살게 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07편 9절에 보면,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하고, 의롭게 살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만족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고픈 사람의 마음으로 은혜를 더 받으려고 사모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의를 주장하거나 내세우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조금 나은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흠 없는 의로운 자가 아닙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 보면,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깨끗하게 빨아서 아주 깨끗한 옷이라 생각하고 입고 하나님 앞에 섰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 같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바르게 산다고 해도,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조금 나은 것일 뿐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를 주장하고 내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살펴보세요. 세리는 자신들의 죄가 아주 많으니까 얼굴을 들지 못하고, 구석에 머리를 박고 회개했지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고 내세우면서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위선자들이고,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들이 의로운 척하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러니 죄인들은 구원받았지만, 바리새인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다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의 형을 보세요.

탕자가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까. 그런데 탕자의 형은 자신의 자랑을 내세우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것을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둘 다 죄인입니다. 다 불효자식입니다. 탕자의 형은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마세요. 생각하지도 마세요. 그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둘째, 우리의 힘으로는 의롭게 살 수 없지만, 의롭게 살기 위해 간절히 소원하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기를 원하는 마음만 가져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뿐만 아니라, 넘치는 복을 주셔서 마음의 천국을 누리면서 살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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