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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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7 22:21 조회5,520회 댓글0건본문
긍휼히 여기라
긍휼히 여기라
2006년 12월 15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5:7
에베소서 2장 1~5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인생들입니다. 과거에는 세상 풍습을 따라가고 악한 영, 즉 공중 권세 잡은 마귀의 종노릇하고 우리 육체의 정욕에 사로잡혀 종노릇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짓을 하여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인생인데,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받아야 할 인간들을 미워하거나 증오하여 죽이시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은혜를 받으면, 긍휼이 풍성한 사람이 됩니다.
열심만 보고 믿음이 성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단 교파 사람들, 공산당원도 열심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닮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성품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습니다.
로마서 9장 15절에 보면,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십니까?
첫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혜를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느헤미야 9장 30~31절에 보면,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또 주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의 영으로 그들을 경계하시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도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경계하셔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보내 북쪽 유다를 망하게 하시고, 바벨론을 통해 남쪽 유다를 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진노하실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멸하시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속상해서 때리시지만, 그들을 완전히 멸하시거나 버리시지는 않으십니다.
우리는 저주스럽게 생을 마쳐야 마땅한데, 긍휼이 크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절대 버리시지 않으시고 멸하시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54장 7~8절에 보면,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70년 만에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잘못해서 어려움을 당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고,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자비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에 보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것을 기록할 때에는 이스라엘이 다 망해서 포로로 가 있는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가 너무 커서 우리가 진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19~26절에 보면,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1~33절에 보면,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항상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가 망할 길로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잠시 진노하시지만, 긍휼이 크셔서 다 회복시켜주십니다.
고난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잠시 뿐입니다. 저는 학생 시절, 청년 시절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더 많이 고생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고난을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교만한 인간이 덜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누르시고 저를 달달 볶으셨습니다.
대학 4년 동안 제 시간은 전혀 없었고, 그저 교회에 가고 학교에 가고 입시생을 가르쳤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 12시까지 학생을 가르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아침 먹고 학교에 가기 바빴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완전히 누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저를 좀 더 세게 누르셨다면 더 큰 목사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지난 후에 돌이켜보니 힘든 순간은 잠시였습니다.
젊었을 때에 어려움 당하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지금 고난 받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것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으면, 더 감사하십시오.
어려움으로 인해 더 기도하고 은혜 받고 거룩해지면 하나님께서 더 크게 쓰시고 더 크게 축복하시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가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하시느냐보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달의 수입이 얼마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수입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멋지게 쓰는가입니다. 쌓아놓고 있다가 자기만을 위해 쓰고 죽으면 그것은 죄밖에 되지 않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많은 사람을 바른 길, 구원의 길로 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 103편 8~14절에 보면,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체질적으로 약하고 실수하기 쉽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의 죄에 따라 처치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에 따라 죗값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 짓는 대로 우리에게 진노하신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믿으십시오.
둘째,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보면,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용서하십니다.
탕자를 생각해보십시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그런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아버지의 명예를 떨어뜨린 아들이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마자 달려가서 입을 맞추고 기뻐했습니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처럼 돌아오면 살 길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었을 때, 자살을 생각하거나 세상으로 가지 마세요. 마귀에게 속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마귀는 ‘너 같은 사람은 죽어야 한다’라고 자꾸 속삭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삽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생각에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용서,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며 사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쁜 죄를 범했습니다. 충신의 아내를 빼앗고, 그 충신을 죽였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더 높이시고 더 잘 되게 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에 존경받은 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다윗은 원수를 죽일 수 있었는데,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기고 용서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의 조각난 시체를 다 모아 장례식을 잘 치러주고, 재산을 자손에게 다 주어 잘 살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보였습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많이 베풀며 사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로 중생의 축복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디도서 3장 3~7절에 보면,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긍휼을 베풀어야 할 줄 믿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8절에 보면,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고 용서해줄 때 즐거운 마음으로 하십시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에 상당히 어렵게 살았지만, 저보다 더 어려운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아였는데, 폐병에 걸렸습니다. 그 친구가 매일 제게 와서 용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주니까 제게 계속 왔습니다. 나중에는 그 친구가 나타날 때마다 화가 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를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즐거움으로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야고보서 2장 10~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서 1장 20~2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고 의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의를 주장하면서 사랑을 버리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생각하여 상대를 판단, 정죄, 비난하고 피가 터지게 싸웁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긍휼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이 항상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성도들은 긍휼이 많으신 주님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큰 기쁨과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긍휼을 베푸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을 베풀 때, 화평하고 행복해집니다. 부부사이에도 자꾸 따지지 마십시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부부사이에도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성도들끼리 사랑으로 허물을 덮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안아주면,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과 교회가 파괴되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 판단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이요,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비판, 정죄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이 식었습니다.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으면 화평하고 거룩하게 되어 긍휼을 베풀며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안아주며 살게 됩니다.
주변에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또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 이웃 중에 죄 가운데 빠진 사람이 있다면, 욕하거나 악담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십시오. 중보기도 해주십시오.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십시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을 긍휼히 여기십시오.
우리 이웃 중 가난하거나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부산 시민 중 90%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을 미워하거나 책망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에게는 긍휼의 눈이 필요합니다. 긍휼히 볼 수 있는 눈, 긍휼의 귀, 긍휼의 입을 가지셔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원받게 하고 복을 나눠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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