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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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1 11:29 조회5,470회 댓글0건본문
천국에서 큰 자
천국에서 큰 자
2006년 10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17~20
시편 19편 7~11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율법을 주셨음을 다윗이 확신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따라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율법대로 살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참 만족이 없는 불행하게 삽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많이 오해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지며, 그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7~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보다 차원 높은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려면, 마음으로라도 간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고 있습니까!
본문 마태복음 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똑바로 알고 바르게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먼저 율법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의 박사로서 항상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본인은 율법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아주 많은 것 같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하라’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롬 13:10).
사랑은 주는 것이요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즐거워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섬기고 베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강도였습니다(눅 12:40).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고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축복을 많이 받고 어디를 가든지 머리가 되고 존경 받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도 귀하고 복된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의 영광보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 더 귀하고 복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영광은 잠시뿐이요 천국에서의 영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고 성공할까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서로 다투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큰 자인지 서로 다투었던 제자들도 오순절에 이르러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에는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첫째,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행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행하며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행함 있는 믿음은 산 믿음이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율법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4절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5~28)”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과연 이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둘째,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43~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하나 하나 씻어주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스코틀랜드 가정의 표어 가운데 ‘봉사하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라는 말이 있습니다.
섬김을 모르는 삶은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는 섬기기 위해 구원 받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병에서 고침 받고, 물질적으로 어려웠다가 다시 일어났다면, 이는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만족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고, 불평불만이 심합니다. 그래서 따라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섬기려는 사람은 항상 즐겁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은 섬김의 자리에 있는 분들입니다.
전주대학교 이남식 총장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총장이 되셨습니다. 바쁜 일과 중에도 시간을 쪼개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교회 순장으로 돌아가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찬양하며 한 주간의 삶을 간증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년이 넘도록 매 교회 주차요원으로 봉사하며 섬김의 본을 보이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차량 봉사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밀려드는 차는 많고 공간은 적고, 때로는 지시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으면서도 묵묵히 봉사하시는 이분들이야말로 우리가 존경하고 대접해야 할 분들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구석구석에서 말없이 기쁨으로 봉사하며 섬기는 분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매주일 쾌적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간증하기를, 예배실 바닥이나 계단, 복도 등에 껌 딱지가 시커멓게 붙어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실 바닥에서 껌 딱지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정성껏 그것을 떼어버렸구나!’라고 생각하고 예배실을 나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주름진 손으로 작은 면도칼을 잡고 껌 딱지를 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순간 이 목사님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그분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도리어 “목사님, 이 교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직도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서 하는 것인데, 이 기쁨을 빼앗으시렵니까”라고 말씀하시며 그 일을 계속하셨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헨리 나우웬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항상 정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나우웬이 쓴 저서는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나우웬이 많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지체아보호시설에 직원으로 취업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정신지체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대학자인 당신이 왜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이런 일을 합니까?”하고 물으면,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나는 그 동안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달려왔습니다. 한 장애인을 만난 후 내리막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나’만 보일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진실한 고백입니다.
신학대학장을 지낸 목사님께서 앞으로 석 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의사가 석 달만 산다고 했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죽을 때까지 목사로서, 신앙인으로서 할 일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절대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주고, 그들을 위로하고, 죽은 환자의 장례도 치러주며, 설교도 하고 찬송도 부르며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 후 목사님은 30년을 더 사셨습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도 천국에 가는 날까지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어린 아이같이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과 함께하시고, 겸손한 사람을 높여주십니다. 사실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남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은혜 받은 성도가 많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의 특징은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성격이 사나웠던 사람도 은혜를 받은 후에 어린 아이와 같이 온순하고 착하고 겸손하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수하고 진실합니다. 매사에 단순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믿고 행합니다. 기쁨으로 순종하고 섬깁니다.
우리 교회가 나날이 부흥 발전하는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매주 수만 명이 모이지만, 교회가 은혜롭고 평안한 이유는 은혜 받은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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