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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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7:57 조회5,737회 댓글0건본문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
2012년 03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1~3
마태복음 5~7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해주신 ‘산상설교’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평평한 바위위에 앉으시고, 제자들도 편안하게 둘러앉으신 상태에서 예수님은 설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산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에 계실 때에는 예수님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져서 사람들이 각종 병든 사람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팔복을 말씀하셨더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예수님이 그들을 피해서 산으로 올라가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계실 때에도 수만 명의 군중이 몰려왔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몇 명이 모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중에 그들 중 대다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 또 이들 중 대부분은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병 고침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또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이 그들에게는 큰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만한 구경거리에 그 당시에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식사도 못하고 며칠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마태복음 15장 32~33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 굶고 있는데, 예수님이 잡수시겠습니까. 사흘이나 되었다고 하니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왔더라도 다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배고프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만히 보니 이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냈다가는 가다가 쓰러질 것 같은 사람도 있으니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군중들에게 떡을 먹여서 보내셨습니다.
또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64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사람들의 속을 다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주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주님은 다 아십니다.
누가 믿는 자인지, 누가 믿지 않는 자인지, 누가 예수님을 팔아먹을 자인지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몰려와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66~69절에 보면,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지만 다 떠났습니다. 열두 명을 제외하고 다 떠났습니다. 한때는 몇 만 명이 예수님을 좇아왔지만, 다 떠나고 열두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은혜를 사모하거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35~36절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그들을 보시고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병들고, 마귀에게 시달리고, 고생하는 그들을 보실 때 그들을 얼마나 불쌍히 여기셨겠습니까.
지금도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이 무리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을 고쳐서 건강의 복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예수 믿으면 사업이 잘 되어 돈을 많이 벌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물질의 복을 받고 싶어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교회에는 사람이 많으니까 혹시 내 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혼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면 좋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새 사람이 되는 것이 더 귀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더 귀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복만 받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 내용을 보면, 어떤 사람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가난하다’라는 말을 헬라어로 살펴보면, 두 가지의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페네스’로 비교적 가난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이웃집에는 있는 것이 우리 집에는 없고, 이웃집은 큰데 우리 집은 작은 경우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또 하나는 ‘푸토코스’로, 아주 가난한 것을 의미합니다.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너무나도 가난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고 할 때, ‘가난하다’라는 것은 한 끼 먹을 양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지극히 가난한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본 적이 있습니까?
6ㆍ25사변이 일어나고 1ㆍ4후퇴 때, 제 나이가 11세였는데, 쌀 한 말을 짊어지고 충남 온양까지 걸어서 피난 갔습니다. 온양에서 10리 떨어진 을티면에 수용소가 있었습니다.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수용소에서 처음에는 하루에 한 끼 먹을 것을 배급해줬는데, 나중에는 그것마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배고파서 산에 가서 소나무 껍데기를 벗겨서 속을 긁어먹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 풀을 뜯어서 삶아먹고, 칡뿌리도 캐먹고, 개구리도 잡아먹고, 메뚜기도 잡아먹었습니다. 배가 고팠으니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건강한 것은 그때 보약을 많이 먹은 덕분인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뭐든지 좋으니 하루 종일 먹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니, 할머니께서 누런 콩을 볶아 주셔서 먹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가리켜 복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지, 돈이 없는 가난한 자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부요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축복 받아서 나누어주면서 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난한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주님은 가난하게 사실 분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 왜 가난하게 사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가난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세상에 사시는 동안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우리가 부요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던지, 물질을 바르게 쓰지 못하던지,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보세요.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조상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을 보세요.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거부(巨富)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은혜도 충만히 받을 뿐 아니라 물질의 복도 받아서 어려운 나라에 원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아야 전도도 마음대로 하고, 선교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가난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복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가난하여 굶고 있는 사람이라면, 먹을 것을 얼마나 사모하겠습니까. 너무나도 배고프니까 먹을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맛이 없다고, 반찬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북한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진흙탕에 떨어진 작은 것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주워서 먹는 것을 TV로 보셨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이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방진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먹든지 배가 고플수록 맛있습니다. 그러나 배부른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배부른 사람은 진수성찬을 차려놔도 먹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불평이 많습니다. 작은 것은 무시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교만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과 심령이 배부른 사람은 이렇게 다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합니다. 그래서 은혜 받기 쉽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고, 천국 백성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져서 행복한 마음으로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배부른 사람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말씀에 무관심합니다.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리고, 예배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은혜 받기가 어렵습니다. 교회 나온 지 수십 년이 되어도 은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배부른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예수님을 믿기가 힘들고, 구원 받기가 힘들어집니다. 심령이 배부른 사람은 불만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옥 같은 마음으로 불행하게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복이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심령이 배부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가장 보기 싫은 사람은 가난한데도 건방지고 교만한 사람, 무식한데도 교만한 사람, 병들었으면서도 교만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잘 될수록 심령이 가난해지는 사람, 축복 받을수록 심령이 더 가난해지는 사람은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딤전 1:15).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엡 3:8).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고전 15:8).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가진 것도 없고,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는 것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지 못하니까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는 살지 못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순종을 잘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고난이 와도 환난이 와도 잘 참습니다. 웬만한 어려움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충성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을 축복으로 받게 되고, 세상에 사는 동안 마음에 천국을 이루고 살게 됩니다.
아무쪼록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셔서 천국을 소유하고,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천국을 이루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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