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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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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8:00 조회5,6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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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의 복

 

애통하는 자의 복

2012년 04월 0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4

 

우리가 장차 살게 될 천국에는 애통하는 일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한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아플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애통하고 곡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천국에는 아프거나 애통하거나 곡하는 것이 다시는 없다고 했습니다. 죽는 일도 없고, 아픈 일도 없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애통한 일이 참 많습니다.

창세기 37장에 보면,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고, 요셉이 입었던 채색옷에 피를 묻혀서 아버지에게 돌려주니, 아버지 야곱은 옷을 보고 “이것은 요셉의 옷이구나”라고 확인하고, 요셉이 정말 죽은 줄 알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창 37:34~35). 야곱이 애통해한 것처럼 이 세상에는 애통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애통하는 일은 슬픈 일이고, 불행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세상적인 슬픔을 말하는 애통이 아닙니다. 은혜 받은 자의 복 있는 애통을 말합니다. 이것은 애통하면서 회개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자신의 죄가 얼마나 많은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생각하면서 울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죄 때문에 밤새도록 울면서 회개기도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내가 바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 내 죄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니까 내가 바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울며 애통해하며 기도한 체험이 있는 사람은 거듭난 성도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입니다. 그런 체험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8~9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우리가 애통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 자신이 주를 위해 살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지만, 육신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자꾸 죄악으로 빠지는 것을 볼 때,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애통해하며 부르짖는 부르짖음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오는데,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리는 자신의 죄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시고, 세리는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26장 75절에 보면,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도 하나님 앞에 애통한 마음으로 통곡하며 회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6~38절에 보면, 베드로가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라고 하니 그들은 자신들이 메시야를 죽였다는 것을 깨닫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고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죄를 회개하면서 애통해하는 눈물이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자인 줄 믿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위해 선교했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는 1740년 10월 18일자 그의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아침 기도시간에 내 영혼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내 속에 있는 사악함과 타락의 속성을 목격하고, 나는 깊이 울었다.”

선교사이지만 자기 안에 사악함과 악독한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타락의 근성이 있는 것을 보고, 깊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애통해하면서 기도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눈물의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시편 6편 6절에 보면,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밤마다 얼마나 울면서 기도했는지, 침상을 눈물로 적셨다고 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타락함으로 멸망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울면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예레미야 9장 1절에 보면,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애통해하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느헤미야 1장 3~4절에 보면,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조국을 생각하고, 고생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며칠 동안 울며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도 심히 통곡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며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1~42절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 가까이에 오셨을 때, 장차 멸망할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예수님은 우시면서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멸망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타락한 아들을 위해서 10년 이상 울부짖으며 기도했지만,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 낙심했습니다. 그때 암부로스 감독이 모니카에게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는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는 자식은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다는 말대로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해서도 눈물의 기도를 해야 하고, 가족을 위해, 자녀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3장 27~28절에 보면,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은 장차 멸망할 나라를 위해서, 불쌍하게 죽어갈 자녀들을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애통의 기도가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7장 36절에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5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많은 이 여인이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고, 예수님 때문에 새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며 향유를 갖다 붓는데,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아드렸고, 발에 입 맞췄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도 이런 감사의 눈물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선교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짧은 편지 하나만 보내도 고생하며 힘들어하는 선교사들이 얼마나 위로를 받는지 모릅니다. 성탄절이 되어 우리 교회에서 선물상자를 만들어서 보내면, 그것을 통해 선교사는 위로를 받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특히 환난과 시험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분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받아서 고통당하는 분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업에 실패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위로는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위로는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위로받는 사람들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애통해하며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주님이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8:14).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죄를 도말해주시고, 과거의 모든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스겔 18장 21~22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켜서 의를 행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에 범한 죄를 하나도 기억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웃기만 하는 자는 지옥에 가서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25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웃기만 하는 사람, 애통함이 없는 사람은 장차 애통해하며 울 날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애통해하는 자는 천국에 가서 웃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6장 21절에 보면,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 우는 사람에게는 장차 웃을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애통함이 있는 사람은 천국에 가서 웃을 일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애통해할 일이 없습니다. 애통해하며 회개하는 것이 그만큼 복이 있습니다.

 

주님의 위로는 완전하기 때문에 주님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자로 바뀐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은 환난당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장차 천국에 가면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눈물을 다 씻어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보면,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4절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가면, 너무나 감격해서 울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데, 다시는 울 일이 없는, 애통해할 일이 없는 천국에서 우리가 기쁨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통해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축복하십니다.

창세기 21장 14~19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갈과 같은 천한 여자도 통곡하며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통해하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제가 45년 동안 목회를 해오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응답받은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만, 가장 빨리 응답받은 때가 언제인가 하면, 애통해하며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빨리 응답하시는지, 어떤 때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응답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제가 전도사였을 때, 개척교회에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기도 많이 하시는 집사님이 제게 “전도사님, 이 예배당에 교인들이 꽉 차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눈물이 차야 교인이 찹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평생 운다고 해도 여기를 어떻게 눈물로 채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의 말씀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설교하는 강단에는 눈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직 신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었는데, 학교에 다녀오면 밤마다 울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아버지, 이 예배당을 채워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밤새도록 강단 위에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개척한 지 3개월이 지난 첫 주일에 107명이 출석했습니다. 그 후에 계속 부흥되어서 예배당이 꽉 차서 1년 동안 세 번 옮겼습니다. 이렇게 눈물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빠릅니다.

 

우리 교회가 수영로터리에 있을 때, 주차장이 없어서 성도들이 길가에 주차했는데, 예배 후에 나가보니 다 견인되어버렸습니다. 다음 날 새벽, 아이처럼 울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차장을 주세요. 주차장을 주세요.”라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날 밤 꿈을 꿨습니다. 하나님이 시온관이 된 삼도물산의 땅을 주시는 꿈을 꿨습니다. 꿈만 꿨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서울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서도 계속해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과 식사하며 얘기하다가 “우리 교회 옆에 삼도물산의 땅이 있는데, 그 땅을 사려고 합니다.”라고 얘기했더니 삼도물산 사장의 딸 부부가 그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첫 날 제게 식사대접을 한 사람이 그 부부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땅에 백화점이 지어지기를 원합니까, 예배당이 지어지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배당이 지어지는 것을 원한다고 대답하기에, 그 땅을 우리 교회에 싸게 팔 수 있도록 책임져달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연락이 왔는데, 그 땅을 당장 쓰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부터 그 땅을 주차장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그 해 그 땅을 샀습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통곡하며 우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빨리 응답해주시는지….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음에 드는 일꾼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펑펑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실패자입니다. 왜 우리 교회에는 쓸 만한 일꾼이 한 사람도 없습니까.”라고 통곡하며 기도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저절로 사람이 되는 줄 아느냐? 사람으로 만들어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느니라. 장로가 저절로 장로다워지는 줄 아느냐? 장로답게 만들어야 훌륭한 장로가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교육과 훈련을 계속해서 시키라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연초부터 5월말이나 6월초까지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교육방법까지 제게 생각나게 하셔서 강사들을 초청해서 평생 기억에 남는 훌륭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의 얘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계속해서 듣게 되니까 저절로 교육이 되니 얼마나 모범적인 일꾼들이 많이 생겨났는지 모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고민이 있습니까? 고민만 하지 마시고, 사람을 찾아다니지 마시고, 오늘 밤에라도 통곡하고 울며 기도해보세요. 애통해하며 기도해보세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끌고 가지 마세요. 통곡하며 기도하세요. 주님의 위로가 얼마나 넘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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