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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5장

약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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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20:14 조회5,6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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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2012년 11월 04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38~42

 

본문 마태복음 5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율법에 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라고 기록되어있지만,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 악한 자를 대적하다 보면, 우리도 악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지, 악으로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악해져서 결국 둘 다 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한 자’는 마음이 악한 사람, 마음에 악을 품고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악한 마음은 사탄의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악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악한 마음 자체가 사탄의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가 악한 마음을 품으면 사탄과 통하게 됩니다. 우리가 악한 마음을 가지면, 사탄이 우리를 사로잡아서 우리를 악령으로 충만하게 만들고, 악령에게 이끌려서 악한 말을 하게 되고,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한 마음을 갖게 되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사람들이 모두 악해지면, 그곳은 지옥이 됩니다.

그러므로 악한 마음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멸망하게 됩니다.

 

노아 홍수 심판 때를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이 얼마나 악해지는지,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은 밤낮 악한 마음을 품고, 악한 생각만 하고, 악한 계획만 가졌습니다. 그래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소돔 고모라를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이 매우 악하고 음란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로 쓸어버리셨습니다.

 

요즘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너무나 악해지고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통해 우리에게 사인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보면,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 것이며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출 21:23~27). 이것을 ‘보상법’이라고 합니다.

레위기 24장 19~20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19장 19~21절에 보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상대방의 눈을 때렸는데, 그 사람이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누구나 복수심을 갖게 됩니다.

이때 내가 눈을 맞아 시력을 잃었다면, 내가 맞은 만큼 상대방에게 보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내가 맞은 것의 몇 배로 보복하여 상대방을 못살게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실제로 상대방을 몇 배로 때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두 눈을 다치게 했다면, 상대방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점점 더 큰 싸움이 되어 나중에는 전쟁이 되어버립니다.

 

오늘날 모슬렘은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라는 이 말씀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복수심에 불타서 테러를 일으키다 보니 전 세계가 불안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라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짓을 행한 사람을 내버려두면, 더 많은 사람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다들 내버려두면, 그 사람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서 살 수 없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이 복수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했습니다. 법으로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남의 눈을 다치게 하면, 자신의 눈도 다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상대방을 함부로 때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법은 백성들을 악한 자로부터 보호하고, 악한 자들이 악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 보복하지 않아도 국가나 사회에서 공평하게 처벌해주니까 사람들은 안심하고 평안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른편 뺨을 맞았을 때, 왼편 뺨까지 맞더라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에 대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24절에 보면,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셨습니다.

 

스데반도 우리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얼마나 억울합니까,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러나 스데반은 악한 사람들에게 욕하거나 그들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본문 마태복음 5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발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겉옷을 평상시에도 입지만, 잘 때에는 이불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겉옷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속옷을 빼앗기 위해 나를 고발한 사람이 있을 때, 겉옷까지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잘 지내던 사람도 돈 문제가 생기면 돌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돈 문제로 소송하며 싸우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돈 문제로 부자지간에도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잠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일 뿐이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도들은 다 함께 통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유가 많은 사람은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속옷을 가지려고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겉옷까지 주어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5리를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별 문제가 없으면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기가 싫은데 같이 가자고 하거나 바쁘거나 몸이 아프거나 피곤할 때는 참으로 난처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희생정신이 없이는 이렇게 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많은 사람을 구원받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42절에 보면,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돈을 꾸어달라고 합니다. 다들 돈 냄새를 맡고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참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나 꾸러 다니는 자가 되지 않고, 꾸어줄 것이 있는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말세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마지막 때에 살면서도 많은 재산을 쌓아놓고,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호의호식하고 사치와 향락을 누리며 살아도 되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살아도 될까요?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아놓고, 나눌 줄 모르면, 집 안에서 다 녹슬어버립니다.

야고보서 5장 5절에 보면,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쌓아놓은 재물을 가지고, 그저 먹고 마시고, 향락을 누리고, 사치하고 방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세요.

부자는 돈이 많으니까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았습니다. 부자의 집 대문에 거지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부자가 그 한 사람에게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데, 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이 부자처럼 사치와 향락만을 즐기며 살다 보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가난했지만,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지옥에 가서 얼마나 뜨겁고 목이 마른지,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자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재물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재물은 사치와 향락을 누리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고, 돈을 열심히 모아 사치와 향락을 누린다면, 솔로몬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너무나 부요하니까 그가 쓰는 그릇은 다 순금으로 만든 그릇이었습니다. 그가 앉는 자리도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얼마나 잘 먹고, 사치하고, 날마다 술로 방탕하며 연락하며 지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우상숭배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자원해서 기쁨으로 나누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이 말씀대로 됩니다.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좀 있으면, 자발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쌓아놓지 마세요. 쌓아놓으면 냄새나기 시작하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주변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여러분을 찾아오기 전에 먼저 도와야 합니다. 나눠줘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아보세요. 하나님께서 흔들어 넘치도록 채우셔서 안겨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돈이 급해서 꾸러 왔다면, 거절하지 말고 꾸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5장 7~10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남의 돈을 빌려서 꾸어줘서는 안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으면 없다고 말하면 됩니다.

둘째, 돈을 꾸어가는 사람은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갚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이 못 갚으면 받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꾸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돌려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는 꾸어줘서는 안 됩니다. 꾸어줬다가 본인이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셋째, 꾸어달라는 액수만큼 꾸어줄 형편이 되지 않을 때에는 조금이라도 도와줘서 위로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돈을 꾸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으로 인해 여러 성도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교회에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인도 아니고, 예수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책망할 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2~13절에 보면,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적으로는 용서하고 참지만, 교회를 어지럽히고,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에서 불러서 책망해도 듣지 않는 사람은 교회를 파괴하는 사탄의 종입니다. 이런 악한 사람은 아예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공적으로는 엄하게 다루어서 교회를 지켜야 하고, 성도들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들이 재산을 모으려고 하는 목적이 중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목적은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사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을 위해 쌓아두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않고, 사치와 향락을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아름다운 열매가 많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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