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20:06 조회5,588회 댓글0건본문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
2012년 10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5:27~32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간음과 이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27~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중에 7계명에 보면, “간음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계명에 대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육체적인 간음만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실제 우리의 몸으로 간음을 행한 죄만 강조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간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간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간음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여자를 보고 마음속에 음욕을 품고 있다면,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들이 우리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새들이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막을 수 없지만, 마음속에 음란한 생각을 품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음란한 생각을 품으면 안 되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행동은 마음속에 품은 생각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향해 음욕을 품고, 요셉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오니 요셉을 붙잡고 죄를 짓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행동은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이미 준비되어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마음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지키라’라는 것은 마음에 파수꾼을 세우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잘못되지 않도록 마음에 파수꾼을 세워서, 우리가 마음을 똑바로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비뚤어지면 비뚤어진 말을 하게 되고, 말이 비뚤어지면 습관이 비뚤어지게 되고, 습관이 비뚤어지면 비뚤어진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평소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로 나오게 됩니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은 생각한 대로 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생각한 대로의 인간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착한 마음을 가지면 착한 사람이 되고, 악한 마음을 가지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마음을 항상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면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더러운 마음을 품으면 더러운 사람이 됩니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품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외모를 먼저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 16:7).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가장 거룩하게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큰 길 가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거룩해 보입니까.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습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얼마나 무섭게 책망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한데, 그들의 마음은 아주 더러웠기 때문에,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5~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의 눈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어떤 것을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마음에 더러운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들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릅니다.
욥기 31장 1절에 보면, 욥은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거룩하게 살기 위해 자신의 눈과 언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눈을 잘못 관리하여 범죄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삼손은 들릴라의 외모에 반해 결국 머리를 잘리고, 두 눈을 뽑히고 멸망하게 됩니다. 다윗은 궁전 지붕을 거닐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음욕이 생겨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본문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가난해야 좋을 사람이 있고, 부자가 되어서 좋을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하게 사니 성품이 겸손하고,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영적으로 부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니 교만해지기 시작하여 교회를 멀리하고, 방탕하게 살고, 건방진 말을 하고, 못된 짓을 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해야 좋을 사람이 있고, 부자가 되어서 좋을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건강해야 좋을 사람도 있지만, 병든 것이 더 좋을 사람도 있습니다. 병들었을 때에는 예수님을 잘 믿었고, 겸손했습니다. 착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건강해지니 못된 짓을 하기 시작합니다.
가난하여 천국에 가는 것이 부요해져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나은 줄 믿습니다. 건강해서 죄 짓게 되는 것보다 병들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바르게 사는 것이 더 나은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9~30).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마음관리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두어야 합니다.
어디에 관심을 두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목회자는 목회에 관심이 있어야 목회를 잘 합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정치에 관심을 두거나, 놀러 다니는 것에 관심을 두거나, 다른 데에 관심을 두면, 점점 곁길로 빠지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충성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충성하고 헌신하면, 딴 데 관심을 가질 틈이 없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하고, 충성하다 보면, 죄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거룩하게 살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가 쉽습니다.
셋째,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마음을 거룩하게 지킬 수 없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몸을 거룩하게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20절에 보면,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4~17절에 보면,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항상 마음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본문 31~32절에서 예수님은 이혼 문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쉽게 이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남자들은 자기 아내와 살기 싫으면, 일방적으로 이혼증서를 주고 이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주 악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들에게 이혼을 허락한 것이지, 원칙은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자기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고 학대하며 여자를 못 살게 굴어서 내쫓았습니다. 그러니 남편에게서 그렇게 고생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모세는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이혼증서는 부부가 합의하여 도장을 찍는 증명서가 아니고, 남자가 ‘지금부터는 이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니다.’라고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하는, 통보서였습니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연고 없이는 이혼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7~10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말했다면, 이스라엘 남자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 시대가 타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 2장 16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인을 학대하는 행위를 하나님은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마음관리를 잘해야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