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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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7:55 조회3,503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의 사역
2012년 03월 18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4:23~25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한 것이 아니고, 갈릴리에서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삼으시고, 이어서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몇몇 제자들을 택하시고,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실 줄 이사야 선지자는 미리 알았던 모양입니다. 이사야 9장 1절에 보면,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지방은 일찍이 앗수르 사람들 때문에 가장 천대받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지방은 어떻게 보면, 어두움이 극심한 곳이었고, 백성들이 사망의 그늘 아래 앉아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예언할 때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알려질 만큼, 가장 조롱받는 지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먼저 갈릴리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갈릴리에는 200여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걸어서 마을마다 일일이 찾아다니시며 그곳에 있는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지 않으시고, 갈릴리에서 시작하신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5장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르게 사는 사람, 의롭게 사는 사람을 찾으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비교적 거룩하게 살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보면 죄인이 가장 많은 갈릴리에서 주님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은 건강하고 부요한 사람들보다도 가난하고 병들어있고 너무나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갈릴리에서부터 복음을 전하시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이 소개되어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셨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예루살렘에만 헤롯성전이 있었고, 그 외 유대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에는 회당이 지어져있었습니다. 회당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바벨론 포로 이후부터 있었다고 추측합니다.
성전이 다 불타버리고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는 곳마다 성전을 지을 능력이 없어서 그 대신 회당을 지었습니다. 회당을 짓고 거기에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강연하기도 하고, 교육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재판도 회당에서 했다고 합니다. 결혼식도 회당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회당에는 항상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느 동네에 가시든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회당을 찾아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어느 지방에 가든지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회당에 가면 유대인들이 많이 있으니까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디를 중심으로 살아야 할까요? 저와 여러분은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래 전의 얘기입니다만, 우리 교회가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사 오신 분이 소문을 듣고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다. ‘부산에 가면 꼭 수영로교회에 가야지’라고 생각하시고, 집을 구하러 다니시는데, 원칙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날마다 새벽예배에 나가야 하니까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집을 구해야겠다.’하는 원칙을 갖고 수영로터리 근처에 있는 부동산중개사무실에 찾아가서 알아보니까 좋은 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집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사시면서 온 가족이 새벽마다 항상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디에 가야 환경이 좋고 살기 좋은지도 생각해야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 특별히 은혜 받은 성도들은 첫째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교회에 가서 예배당에 엎드려 기도하고 봉사하고 은혜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마음껏 하면서 살아가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이 따라올 줄 믿습니다.
교회는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나와서 예배드리는 곳이 아닙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이 돌아가고 나면 문을 잠그는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예배 시간 외에는 교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가운데 한 분은 사무실에서 일하시다가 기도하려고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의 문은 언제나 잠겨있더랍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교회를 지키는 경비 집사에게 부탁해서 사찰 집사가 문을 열어줘야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 당시의 회당은 언제나 문이 열려져있어서 많은 유대인들이 항상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 회당에 가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강의하시면서 천국의 비밀과 메시아의 오심과 진리에 대해 말씀해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여느 사람과 달랐기 때문에, 마태복음 7장 28~29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성령이 충만하시고, 예수님 안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너무나 은혜롭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그 말씀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똑바로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1년에 적어도 1독 이상 해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을 뿐만 아니라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것처럼 말씀을 가르치시는 분을 통해서 열심히 배워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똑바로 알고, 신앙생활도 바르게 하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설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설교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 중에 많은 순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설교를 듣는 시간입니다.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설교 듣다가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도 하고, 설교 듣다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설교 시간에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살아나요. 은혜를 받을수록 믿음이 살아나서 믿음이 강해지고, 믿음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설교 시간에 은혜가 충만할 때, 교회가 살아납니다. 교회가 부흥됩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가 나옵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니까 성경 말씀에 박식하고, 능력 있는 설교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 사도행전 7장 2절 이하에 보면, 스데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스데반이 성경 말씀을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D.L.무디에게 은혜를 주셔서 D.L.무디는 대부흥사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얼마나 은혜롭고 능력 있는지,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 믿기로 결신한 사람이 1백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설교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설교 시간에 좋지 않은 태도로 듣는 분이 있습니다. 설교 시간에 자꾸 엉뚱한 것을 생각하고, 신문만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고, 설교 시작하기 전에는 괜찮다가도 설교가 시작되면 졸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교를 듣는 태도가 좋지 않으면 은혜 받기가 힘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항상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은혜 받지 못하면 믿음이 점점 약해지고, 신앙이 병들기 시작합니다.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지 못하니까 무엇을 해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꼭 명심하세요. 예배 시간, 특별히 설교 듣는 시간을 잘못 보내면 영적으로만 병드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고갈되고,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설교 시간에 은혜 받기 위해서, 설교가 시작되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오늘 은혜 받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세요. 기도하면서 말씀을 들으세요.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이 설교자를 통해 내게 필요한 교훈을 주실 텐데, 내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안타까운 문제를 가지고 교회에 오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아버지, 목사님의 설교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세요. 해답을 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우리 교회 장로님 중 한 분은 사업이 어려워져서 고민하면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주일에 교회 와서 예배드리면서 “아버지, 이 사업에 대해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지 설교 중에 답을 주세요.”라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교 중에 답이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예배 후에 장로님이 제게 오셔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목사님, 제가 설교를 듣다가 해답을 얻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설교 중에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는 만큼 깨달아지는 것이 많습니다. 깨닫지 못해서 손해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깨닫기만 하면 쉽게 해결되고, 깨닫기만 하면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은혜를 받으면 은혜 받은 만큼 깨달음이 오기 때문에 언제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치유사역을 하셨습니다. 어디에 가시든지 병든 사람이 있으면 다 고쳐주셨습니다.
병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생겼습니다. 병은 죽음의 시작입니다. 자주 병들거나 심하게 병들면 빨리 늙습니다.
제가 집회 인도하러 미국에 갔다가 고등학교 동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늙었는지, 90세 쯤 되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쉽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은혜 받으면 마음에 기쁨이 있고, 행복하고, 세상 걱정이 다 사라지고, 늙을 새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예수를 잘 믿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이 어둡고, 얼굴에 고민이 가득하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얼굴만 봐도 “아,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해야 합니다.
병들면 다 죽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병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죗값으로 받게 된 저주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을 가지고 삽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보면,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기 위해서입니다.
죗값으로 죽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죗값을 대신해주시고,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저와 여러분도 부활하여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만 대속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저주까지 다 속량하기 위해서 오셨어요. 병은 죽음의 시작이니까 저주입니다. 죽음 자체도 저주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 문제만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질고까지 다 짊어지셨음을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할 뿐 아니라 영원히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저주를 속량해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시는 치유사역을 열심히 하셨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 메시야이심을 증거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병 고침을 받아도 결국에는 다 죽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병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4절에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25장 8절에 보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고생하고 힘들어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눈 감는 날이 천국에서 눈 뜨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죽음도 없습니다. 질병도 없어요.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다 씻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가면,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만날 것입니다. 아픈 데도 없고, 늙지도 않은 모습으로 만날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장애가 없는 모습, 온전한 몸으로 만나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지 못하셔서 그냥 보내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온 사람은 다 고침 받았습니다. 그래서 온 수리아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소문이 퍼지니까 제 발로 걸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가족이나 친척 중에 아픈 사람을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다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요한복음 14장 12~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세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할 것이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게 하게 되는가 하면, 우리 주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에 예수님 대신 믿음의 사람들, 성도들이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계속 하도록 하나님이 예정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세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주님이 하시던 일을 나도 할까, 어떻게 하면 나는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까’하는 소원을 가지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이 하시는 일을 하면서 살다보면, 환난도 당하고, 핍박도 당합니다. 이 일에 전념하다 보면,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힘드니까 그만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시던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장차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이 평신도라도 여러분 모두 다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사명이 뭔지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순교를 각오하고 충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사명에 충성하는 교회가 되어서 한국과 전 세계에 소문이 퍼져나갈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는, 살아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 충만할 때에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면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더 큰 일도 할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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