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경배한 동방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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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1 16:51 조회3,592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박사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박사
2006년 12월 24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1~12
유대인들은 오래 전부터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메시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했을 때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을 때야 헤롯 왕을 비롯한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마 2:1~3).
동방박사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학바들은 이방 나라인 바벨론 북동쪽에 있는 파르티아라는 곳에서 온 고관들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별의 출현으로 계시된 것은 이미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의 나타나심이 별과 별빛으로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4장 17절에 보면,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9장 1~2절에 보면,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결국 베들레헴의 광명한 새벽별은 메시아의 탄생을 고하는 소망의 별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16).
그 당시 유대 땅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 왕은 다윗의 계보에 따른 정통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야곱의 후손도 아니요, 에돔 사람이었습니다(눅 1:5). 따라서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느 누구보다도 그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2장 4~8절에 보면,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헤롯이 겉으로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또 경배할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헤롯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인 것을 보면, 이미 예수님을 죽일 악독한 마음을 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장 9~10절에 보면,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별을 통해 동방박사들을 구체적으로 인도해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별이 아기 예수님이 계신 집 위에 머무르자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가지고 온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박사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은
첫째, 동방박사들은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나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을 좌우하는 기본이 됩니다.
이 일을 소중히 알고 정성을 다할 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늘 사모하고 기쁨으로 예배한다면, 분명히 신앙이 돈독해질 것이며, 큰 은혜를 받아 건강한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배를 등한히 하면, 신앙이 쇠퇴하고, 가지고 있던 신앙까지도 다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시 122:1).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면서 종교 말살 정책을 썼습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성경책을 불태우고,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 결과 공산국가는 예외 없이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미국은 그들의 조상 청교도들이 학교와 자신들의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예배당을 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화폐인 달러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IN GOD WE TRUST)”라고 적혀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돈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까? 이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교회가 많이 세워진 나라들은 복을 받은 반면, 우상숭배를 하는 나라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가까운 시일 안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것도 수만 개의 교회와 천만 기독교인의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사님은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까지 받았으나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행복해하지 않았습니다. 주일 아침만 되면 여러 핑계를 대며 예배를 드리지 않을 궁리만 했습니다.
하루는 “여보, 오늘 우리 두 사람 중에 당신이 대표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구려. 나는 대표로 남아서 집을 보리다.”라고 하면서 아내만 혼자 교회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배시간에 집에 혼자 남아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천국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가 “두 사람은 부부가 맞습니까? 그럼 대표로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오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예배를 지루하게 여기며 자원해서 드리기를 거부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다시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성도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전쟁에서 참패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당신의 평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한참 눈을 감고 회상하더니 “전투가 치열하던 어떤 주일이었죠. 그때 나는 졸병이었지만, 아침에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예배에 빠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쟁에서 패배하여 이처럼 유배생활을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소.”라고 말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일찍이 하나님을 잘 경외하여 복을 받은 나라로 교회나 건물이 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운 나라이며, 수도 프라하는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였습니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도 많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가 유럽을 덮으면서 하나님을 저버린 이 나라는 음악도 죽고, 경제도 죽고, 문화와 문학도 죽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없애고, 기도를 없애고, 하나님을 저버린 프라하는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각양 은혜와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사모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둘째,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을 뿐만 아니라 귀한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기쁨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믿음으로 구원해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면, 주님 앞에 무엇을 바친다 한들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려도 결코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늘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번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은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성경을 뒤적이다가 어렸을 때 가졌던 믿음에 대한 추억이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라 그 즉시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지난 날을 회개하고, 남은 생애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며칠 후 집에 돌아온 그에게 방송국으로부터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며 전속 계약을 맺자는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너무 늦게 전화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제 목소리와 모든 재능을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복음성가 가수이자 작곡가인 쉐아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곡이 바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입니다.
미국의 인기 여배우가 사람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함성을 지르면서 “그 행복한 사나이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배우는 “나는 얼마 전 예수님과 사랑에 빠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이 배우는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을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당시 할리우드의 최고 스타로 같이 활동했던 마릴린 먼로는 세상 향락을 누리다가 의문의 죽음으로 요절했으나, 콜린 다올렌스 에바스는 선교사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직도 생존해 있습니다.
어느 날, 빌리 그래함 목사가 그녀에게 “스타를 포기하고 선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저는 스타나 영국 여왕이나 미국 대통령과도 지금 나의 행복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가장 귀하신 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꿈속에 나타나, “내일 너희 집을 방문하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어찌나 기뻤든지, 온갖 정성을 들여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은 그 날 저녁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오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거지와 청소부 할아버지, 과일 장수 아주머니가 왔다갔을 뿐입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정성들여 준비한 음식을 거지와 청소부 할아버지와 과일 장수 아주머니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이분들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고, 실제로 추위 때문에 배고픔에 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밤, 예수님께서 할아버지의 꿈속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왜 오시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뜻밖에도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 들러 세 번 다 대접을 잘 받았다. 참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것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5장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과 염소의 비유’를 기초로 하여 쓴 톨스토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글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노부인이 암에 걸려 집에서 가족들의 간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부인에게는 점차 심한 냄새가 났고, 가족들도 그 방에 들어가기를 꺼려했습니다.
그 노부인에게는 며느리가 있었는데, 암에 걸리기 전에 노부인은 며느리를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며느리가 다른 가족들보다 더 열심히 노부인을 간호했습니다.
어느 날 노부인은 며느리의 정성을 고맙게 생각하여 물었습니다. “내 친딸도 냄새난다고 가까이 오지 않는데, 너는 어찌 이렇게 간호를 잘해주느냐? 그동안 섭섭한 마음이 많았을 텐데….” 그러자 며느리가 대답했습니다. “제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잘 섬기라고 하셨어요.” 얼마 후, 시어머니가 감동을 받고 며느리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를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일에 정성 다해서 기쁨으로 하기로 결심하고, 주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을 위해 바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구제하며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것임을 알 때, 성도의 아름다운 헌신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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