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 이사야6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이사야6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4:40 조회6,223회 댓글0건

본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2010년 05월 28일(금요철야)

본문 / 이사야 6:1~8

 

본문 이사야 6장에 보면,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 왕 노릇을 했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26장에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축복을 받아 나라가 아주 부강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축복을 받아 모든 것이 잘 되고 부강해지면,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남보다 은혜를 많이 받으시는 분도 교만해지지 않도록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저절로 겸손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교만해지지 않도록 천국에 가는 날까지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도 가장 넘어지기 쉬운 부분도 교만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니 존경 받고 은혜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됩니다.

사탄은 신앙생활 잘하고 기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는 모범적인 성도들에게 교만을 주어서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교만은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교만은 우리에게 해가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축복을 받아 나라가 부강해지고 살기 좋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만한 마음이 들어와 대제사장이 해야 할 하나님 앞에 분향하는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분향하고 제사하는 일을 제사장이 하도록 맡기지 않고 자기가 열심이 있다고 나서니까 제사장들은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대하 26:18)”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면 그만두어야 할 텐데, 웃시야는 도리어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 화는 교만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웃시야가 노를 발하는 순간,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나병환자는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웃시야는 그 날부터 죽을 때까지 별궁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혼자 사는 것처럼 불행한 것이 있을까요.

 

교만해져서 넘어지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목사님들 중에서도 교만해지더니 이상한 일을 하고, 장로님들 중에도 교만해지더니 이상한 일을 하고 화를 내다가 그동안 공로도 다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만해지면 망합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이 나병에 걸렸으니까 백성들이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병은 낫지 않았고, 결국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낙심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섭섭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마음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뒤숭숭하고 왕은 죽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상태니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나라가 위태롭고 걱정되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그것 때문에 기도한다면 축복으로 바뀝니다. 아멘. 어떤 문제가 있든지 그것 때문에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면, 그 순간 축복은 시작됩니다. 모든 것이 축복으로 바뀝니다.

문제가 크든지 작든지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받는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큰지 두고두고 감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특별히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너스 축복을 받습니다. 바로 큰 은혜를 받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에 작정하고 기도하다보면 특별한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왜 은혜 가운데 살지 못하느냐 하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받을 수없습니다.

 

그리고 은혜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주십니다. 은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큰 일꾼이 됩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생길 때가 있는데, 특별히 기도하다보면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고 교회는 부흥됩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수영로교회가 처음부터 지금같이 순탄하고 은혜롭게 지내온 것이 아닙니다. 처음 개척했을 때 말썽꾸러기가 많고 무례한 사람이 많고 양심도 없고 싸움꾼들과 이간질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날마다 강단에서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너무 속상하면 하나님 앞에 “아무개 집사를 거두어가시든지 저를 거두어가시든지 둘 중에 하나 택하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해산의 수고를 하듯 기도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주실 때도 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고 간증거리가 생겼습니다.

그 순간 기쁨이 충만해지면서 능력을 받아 기도의 능력이 생기고 말씀의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으면 문제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그렇습니다.

문제를 통해 목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종에게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응답해주시고 부흥을 주셨습니다. 이 원칙이 항상 반복되었습니다. 이것이 쌓여 교회가 계속 성장했고 저도 성장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된 과정이 이렇습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안고 고민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급하면 금식하십시오. 너무 급하면 밤새도록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십시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은혜 주시고 능력 주실 것입니다. 간증거리가 생길 것입니다.

 

이사야는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받고 큰 사명을 받았습니다. 본문 이사야 6장 8절에 보면,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맡은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이사야가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으니까 영안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본문 이사야 6장 1~4절에 보면,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의 연기가 충만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았습니다.

본문 이사야 6장 5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가 여러 가지 죄를 지었지만, 가장 거리끼는 죄가 못할 말을 많이 하고 더러운 말을 많이 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범하는 죄 가운데 가장 많은 죄가 마음으로 범하는 죄요, 그 다음에는 입술로 범하는 죄입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말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이사야처럼 영안이 밝아져서 둘 중에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늘 보좌를 보는 것이 좋습니까? 자기 죄를 똑바로 깨닫는 것이 좋습니까?

자기 죄와 허물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늘 보좌를 아무리 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의 죄와 허물을 볼 줄 모르고 깨달을 줄 모르면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늘 보좌는 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받은 은혜 중에 더 큰 은혜는 바로 자신을 똑바로 깨달은니다. 이렇게 이사야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의 불이 임하는데 그 불의 혀 같은 것이 보이고 성령의 불이 각사람 위에 임하면서 모두 방언을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모든 사람이 알고 깨달을 수 있는, 겉으로 나타나는 체험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표적이 나타나기도 하고, 음성을 듣기도 하고,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전도사님은 몸에 불을 받았는데, 불 받은 자리에 자국이 생겼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성령이 강하게 임하실 때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속에서 “주여!”라고 외치는 순간 불이 임하셨습니다. 한밤중에 불이 임하니까 얼마나 확실합니까. 그 후에 기도하다 보니 몇 시간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이처럼 아주 확실하게 불이 임할 때도 있습니다. 불이 눈에 보이게 임하지 않아도, 우리 몸을 뜨겁게 하며 불이 임할 때가 있습니다. 몸이 뜨거워지니까 자신은 압니다.

그리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에는 교회에 나가면 예배당 입구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났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를 환영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데, 반복해서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똑똑하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만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도 마귀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악령도 그런 짓을 하며속입니다. 악령도 불이 임하게 합니다. 악령도 우리 몸을 뜨겁게 합니다. 악령도 얼마든지 표적을 행하기 때문에 표적을 좋아하면 안 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역사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성령의 영이 우리의 영을 밝게 비추어주셔서 깨달음이 있습니다. 이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첫째,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 허물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십니다. 성령의 역사의 시작은 회개부터 시작합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눈물 흘리며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은 확실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마음속에 일어나는 역사가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려주신 은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져주신 예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신 은혜, 모든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하고 기쁨이 충만해져서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은혜 받으면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셋째, 사명을 깨닫습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닫습니다. 나에게 이렇게 큰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깨닫습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일꾼이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찬양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생활을 할까,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일을 보낼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마음을 가지고 모든 일을 행하니 귀하고 보배로운 일꾼이 됩니다.

이런 일꾼 한 사람은 은혜 받지 못한 사람 백 명보다 낫습니다. 은혜 받은 다섯 명만 모여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일꾼이 중요합니다.

 

깨달은 만큼 변화됩니다. 아주 아름답게 변합니다. 성품이 아름다워지고, 행동이 아름다워지고, 말하는 것이 아름다워지고, 얼굴도 아름다워집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생명이 있고, 빛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이사야도 죄를 깨닫고 회개한 후에 변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이사야를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쓰시니까 이사야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화된 하나님의 종에게 능력을 주셔서 귀하게 쓰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능력이 나타날 때 주의해야 합니다. 그 능력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고,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내 능력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허세를 부리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능력은 떠나고, 마귀가 가짜 능력을 주어 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 보면,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대단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능력이 임하니까 병자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는 등 굉장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을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낫고 귀신이 나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사도 바울을 통해 큰 기적과 이사가 나타날 때도 있었는데,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 보면,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가 너무 소심하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는지, 속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전 같으면 사도 바울이 한번 기도해주면 나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낫지 않으니까 포도주를 약으로 조금씩 먹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0절에 보면,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병들어서 두고 왔다고 했습니다. 기도했는데도 낫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전에 능력을 행하고 손수건을 얹기만 해도 병이 낫고 귀신이 물러난 것은 사도 바울의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바 울을 도구로 쓰신 것뿐입니다. 사도 바울을 세워 하나님의 능력이 직접 역사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병자를 위해 기도하여 병이 나았다거나 귀신들린 자를 놓고 기도해서 귀신이 나갔다고 해도 교만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를 도구로 쓰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기도해도,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사도 바울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는 말씀의 영감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편지를 보내 오늘날 바울서신이 우리에게까지 남아있어서 성경을 통해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도록 쓰신 것입니다. 말씀을 기록해놓아야 2천 년 후에 우리가 말씀을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 쫓는 것도 중요하지만, 2천 년 후에 우리들을 위해서도 남는 일을 하려면, 말씀을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더 중요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은사가 나타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은사가 자주 나타나면, 사람들이 기도를 받으러 자꾸 올 테니 언제 편지를 쓸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귀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지 않으시면, 그 사람을 통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기에는 부족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도구로 써주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도구일 뿐입니다.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는 지팡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셔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것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지팡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가리키며 갈라지라고 해서 홍해가 갈라진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써주시면, 우리를 통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떤 인간이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하고, 나는 어떤 일을 열심히 하고, 내가 굉장한 것처럼 큰 소리 치기 쉬운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보다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가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보십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 4:4~5)”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보셨습니다. 먼저 인간을 보시고, 그가 드리는 제물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아벨이라는 인간과 그가 드린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셨지만, 가인이라는 인간과 그가 드린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먼저 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드려도, 악독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절대 아닙니다.

 

잠언 15장 8절에 보면,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 악한 인간이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괴로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12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어둠에 속해있었다 할지라도,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요 빛의 자녀입니다.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악한 성품을 다 버리고, 착한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불의한 성품을 버리고 의로운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거짓된 성품을 버리고 진실한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지만, 자기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자기는 복음을 많이 전했는데, 정작 자신이 버림을 받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런 일을 당할까봐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켰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자기 속에 육의 욕망이 있고, 자기 속에 육신의 잘못된 속성이 남아 있으니까 자기와의 싸움을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보다 내가 어떤 인간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강아지도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잘 압니다. 하물며 사람들이 모르겠습니까.

그 사람의 성질이 어떤지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사는지 다 압니다. 우리는 유리집속에서 삽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 같아도, 집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항상 돌이켜보며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 은혜 받은 사람인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성품이 좋은 사람인지 한번 반성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충성된 사람인지 반성해 보아야합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게을러지고 불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용두사미입니다.

집사나 장로가 될 때에는 처음에는 굉장하게 충성할 것처럼 의욕이 충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평신도만 못한 것을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충성한 것만 붙잡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충성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불충했고 부족했더라도, 지금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면, 그것이 가장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사랑의 사람인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 나는 얼마나 진실성이 있고 신뢰성이 있고 책임감이 있는가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둘째,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타락된 성품을 회개해야 합니다. 성품이 가장 큰 문제가 됩니다. 악독한 성품, 불의한 성품, 진실하지 못하고 교만한 성품, 너그럽지 못하고 남을 미워하는 성품, 경솔한 성품, 혈기와 분노를 잘 내는 성품, 게으른 성품, 음란한 성품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타락의 근성이 남아있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타락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사탄은 계속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여 언제나 승리하시고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사야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29장

30장

31장

32장

33장

34장

35장

36장

37장

38장

39장

40장

41장

42장

43장

44장

45장

46장

47장

48장

49장

50장

51장

52장

53장

54장

55장

56장

57장

58장

59장

60장

61장

62장

63장

64장

65장

66장

 

 

 

 


접속자집계

오늘
1,169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4,085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