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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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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5:51 조회5,4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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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며 살자

 

축복하며 살자

2010년 09월 10일(금요철야)

본문 / 잠언 18:20~21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낙원과 같았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날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0, 12, 18, 21, 25)”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점령한 자리에는 쓰레기가 생겨 더러워지고 훼손되었지만, 지금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낙원처럼 아름다웠던 이 세상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황무지로 변했습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만 황폐하게 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까지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북한 땅에 다녀온 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에는 옥수수가 키도 크고 무성하게 잘 자라는데, 북한에는 옥수수가 잘 자라지도 않고 열매도 별로 나지 않더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오직 유물주의사상에 사로잡혀 돈 밖에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아 무엇이든지 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옥수수 박사님이 북한의 옥수수를 살려보려고 좋은 옥수수 씨앗을 북한 땅에 심어 봐도 잘 되지 않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죄는 인간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이 짐승보다 더 악해지고 더러워집니다. 그런데 죄는 사람의 마음만 황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황폐하게 만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본래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얼마나 풍성하고 좋았는지,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드신 세상에는 병도 죽음도 가난도 없고 고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후 사람뿐 아니라 이 땅까지도 저주를 받아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얼굴에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노아시대 때에는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더 이상 두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여덟 식구만 제외하고 모든 인간과 땅의 짐승과 새들까지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마치 쓰레기를 빗자루로 쓸어버리듯이 모두 쓸어버리셨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만 남았는데, 그들도 세월이 가면서 점점 타락하여 이 세상에서 의인을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이 세상을 축복하시려는 새로운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고향 땅을 떠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호수아 24장 2절에 보면,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안은 다른 신을 섬기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라함을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죄악 가운데 살던 고리를 끊게 하시려고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죄 짓고 우상숭배하고 잘못되었던 삶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축복받는 길의 시작입니다.

 

우리 교회에 과거에 죄를 아주 많이 범하면서 못된 짓 많이 했던 사람들이 예수 믿고 변해서 새사람이 되신 분이 있습니다. 과거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지만 평생 따라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의 과거가 자꾸만 살아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버릇과 못된 성질이 나오려고 하고, 과거의 죄를 다시 범하려고 하는 타락한 속성이 있습니다. 과거에 좋은 일은 별로 하지 않고 나쁜 짓만 많이 했으니 당연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변화된 것이 큰 축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다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과거가 너무 좋지 않았던 사람은 과거가 자꾸 살아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변화된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기 쉬운 위기가 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죄를 범해도 회개하면 되니까 괜찮다고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과거에 못된 짓을 했지만, 지금은 변해서 새사람이 되었으니 ‘한번 성질부리고 나서 회개하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는 것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는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큰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6~17절에 보면,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서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기회를 찾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서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끝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다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문제였습니다. 그는 회계를 맡았는데, 성경에 보면 “그는 도둑이라(요 12:6)”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당시에 살림은 몇 푼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액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돈이 아닌데, 그것을 빼돌리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돈을 받고 자기 스승을 판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7~20절에 보면, “칠십 인이 기뻐하며 전도하고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 중에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때는 분명히 은혜를 받고 굉장했으나, 갑자기 타락해서 교회를 비난하고 주의 종들을 비난하고 교회를 해롭게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도 하나님의 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9장 23~24절에 보면,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때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사울이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타락하고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사울은 놉 땅에 있는 제사장 마을의 제사장들을 제사장 옷을 입은 채로 모두 죽였습니다. 아이들까지 모두 죽였습니다. 마을 전체를 전멸시켰습니다. 결국 사울은 회개하지 못하고 비참한 종말을 고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타락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지 못할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똑바로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왔다고,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진짜 거듭난 사람인지 아닌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사람의 중심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고 큰 나라가 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는 계획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만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자기 때문에 예수 잘 믿는 자손이 되고, 친척들도 예수 믿게 되고 지역사람들이 예수 믿게 되고, 자기 때문에 그 나라가 예수 믿는 나라가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나라가 되도록 만드는 사람이 진짜 복 받은 사람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과 기업을 이어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민족이 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래서 한국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죄가 많은 백성들도 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힘차게 들릴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 세상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로 가득 찬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에베소서 1장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12절에 보면,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14절에 보면,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께서는 찬양하는 백성들을 보시며 기뻐하십니다.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게 됩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언제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찬양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 누가 그 복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사화복은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려주실 것이고 그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그 저주가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인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시편 7편 15절에 보면,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57편 6절에 보면,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6장 27절에 보면,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서 10장 8절에 보면,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면 자기가 축복받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면 저주가 자기에게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칙을 꼭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옳고 그름을 비판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비판하면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둡니다. 남을 비판하면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축복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잘 보이지만, 자기의 허물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눈의 티를 빼려고 하지 말고 네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허물이 있기 때문에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분수를 알고 함부로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정보 홍수 시대입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통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까? 안 좋은 것입니까? 사실 모르고 지낼 때가 좋습니다. 그것을 안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을 일체 보지 않고 하루를 편하게 지내시는 분들은 마음이 평안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보를 다 보고 듣고 알면, 잠도 잘 오지 않고 밥맛도 없습니다. 정신이 이상해지는 듯합니다.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은혜받기 힘들고 고생을 많이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교회에 나와서 은혜 받고 말씀가지고 세상에 나가 말씀대로 살고 축복받으면서 단순하게 사는 분들이 제일 복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생활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마세요. 그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실천하시고 열매 맺으시고 축복 받으시고 항상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감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해도, 우리가 말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복 받을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대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주 받을 말을 하면, 말한대로 저주받게 하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면, 남의 말만 듣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하는 말만 듣고 무조건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남의 말을 전하는 사람을 그대로 믿었다가는 큰일 납니다. 누가 그 말을 하더라고 하면 그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지 않는 한 그대로 사실인 것처럼 옮기다 보면 말의 실수를 많이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가 나옵니다만, 인터넷에 나온 것 중에 거짓말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많이 보게 되고 듣게 되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고민거리가 많아지고 문제가 많아집니다. 이것은 뒤처리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의무는 오직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의무는 오직 축복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별별 말을 다 들어도 뒤처리만 잘하면 됩니다. 오직 사랑하고 축복하고 긍휼히 여기며 잘못된 사람을 보면 그를 위해 중보기도 해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것이 축복을 심는 것입니다.

 

본문 잠언 18장 20~21절에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말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들었든지 어떤 경우에라도 항상 축복만 하고 사랑만 하고 긍휼히 여기고 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고 선한 말만 한다면 심은 대로 거둘 줄 믿습니다.

우리는 좋은 말만 했으니 그 열매를 거둘 것이 아닙니까. 좋은 말만 했으니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저주를 내가 다 받을 것인데 정말 두렵습니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저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축복하면 수지맞습니다. 그 축복이 다 내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축복할 때 그 축복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원수에게도 축복하면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그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내가 빈 축복은 다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항상 축복의 말만 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할 것이 많지만, 가장 크게 회개해야 할 것이 바로 입으로 범한 죄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웃시야 왕이 죽고 나라가 뒤숭숭하니까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이 입술로 범한 죄를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이사야가 간음했겠습니까, 도둑질했겠습니까. 이사야의 마음에 가장 꺼리기는 것이 자기 입술로 범한 죄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혜 가운데 살고 거룩하게 살며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그러나 가장 쉽게 자주 범하는 죄가 입술로 범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야처럼 입으로 범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혹시 함부로 남을 저주하고 악담하고 미워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헐뜯고 좋지 않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와 제대로 되는 일이 없고 축복을 받지 못하고 모든 것이 안 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입술로 범한 죄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남에게 축복을 빌지 못하고 남에게 저주나 악담하지 않았는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회개한다면 축복의 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은혜의 문이 열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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