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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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7 22:59 조회3,374회 댓글0건본문
행복한 가정
행복한 가정
2011년 05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잠언 15:13~17
본문의 말씀은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이 기록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의 조건을 갖추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장 2절에 보면, 솔로몬이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살아보려 했지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전도서 2장 17절에 보면,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괴롭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무익하여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괴로워하며 살다가 6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도서 2장에 보면, 솔로몬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아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3절에 보면, 술로 인생을 즐겁게 살아보려고도 했고, 4절에 보면, 사업을 크게 벌여보기도 하고, 집을 짓고 포도원을 가꾸고, 과수원을 만들고, 연못을 만들고, 노비들을 많이 데리고 살아보기도 하고, 소와 양 등의 소유를 많이 가져보기도 하고, 과거 어느 왕보다 금은보화를 많이 가지고 살아보기도 하고, 노래하는 남녀와 처와 첩을 많이 데리고 살아보기도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눈으로 보고 좋으면 가져보고, 맛보고, 자기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것은 다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본 결과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며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즐거운 대로 해보아도 전부 쓸데없고 헛된 짓이었다고 말합니다(전 2:11).
솔로몬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준 것은 가정의 실패를 통해서 주는 아픔이었습니다. 가정은 항상 편안하고, 기쁘고, 즐거워야 행복한데, 솔로몬의 가정은 그렇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삶을 불행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처럼 살라고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며 살라고 가정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이루어진 가정을 생각해보십시오. 천국과 비슷합니다. 아픔도, 걱정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환경에서도 모든 것이 깨어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그것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부부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책망하시자, 아담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그 여자가 주어서 먹었다고 말합니다. 책임을 하나님과 여자에게 돌리고 자기 책임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하와가 들었다면 ‘자기만 살고 나는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라고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가정의 사랑과 신뢰가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사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또한 부부는 일부일처일 때 가장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솔로몬은 1대 1,000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가정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여인들과 살았으니, 그 가정이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전도서 9장 9절에 보면, 솔로몬은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혼자 즐기지 말고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 자신은 행복할지 몰라도, 천 명의 아내들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신랑을 한번 만나려면 3년이 걸리니, 신랑을 만나는 날에는 이를 갈고, 서로 물고 뜯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이 가정은 행복할 수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날마다 후회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고, 자식은 수백 명이고, 날마다 문제는 터지니,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요. 솔로몬은 뼈를 깎는 고통을 당했을 것이고, 많은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니, 참으로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얻은 교훈입니다.
본문에서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지위나 재산이나 많은 여자가 있느냐가 아니라 마음에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행복하기 원하십니까? 서로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며 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기 원하십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기 바랍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합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이 있으면 얼굴에 빛이 납니다. 얼굴만 봐도 압니다. 그러나 마음에 근심과 고민이 있으면 심령이 상할 뿐 아니라 얼굴에 수심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속일 수 없습니다.
잠언 15장 15절에 보면,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잔칫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즐거우면 그 집은 항상 잔칫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라면을 끓여 먹어도 마음이 즐거워 웃음소리가 납니다.
성경에는 천국을 잔칫집, 특히 혼인잔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며 천국을 혼인 잔칫집에 비유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9절에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린 양 예수님의 혼인 잔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부 된 우리가 가서 만납니다. 그때 청함을 받은 사람은 복이 있고, 그 자리에 못 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천국 생활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즐거운 가정이 행복합니다.
솔로몬의 가정은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마음의 즐거움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이 세상 향락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향락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은 그 순간뿐입니다. 술로 낙을 누리는 사람은 술을 먹을 때는 좋지만, 간이 붓기 시작하고, 재산이 없어지고, 가정이 파괴됩니다. 세상 향락은 즐거움을 주되 잠시 뿐이고, 엄청난 고통을 가져옵니다. 세상 향락은 절대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은 영원합니다. 하박국 3장 17~18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괜찮은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쁘고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로
첫째,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불신결혼을 하면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신앙이 점점 약해지고, 신앙문제로 싸우다 보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이 실패한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여자들을 데려다가 처를 삼았으니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언 15장 16절에 보면, 솔로몬은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고 뜨거울수록 자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워하는 악을 자기도 미워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악에서 떠납니다.
잠언 8장 13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6장 6절에 보면,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자기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악함 가운데 살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
욥기 1장 1절에 보면, 욥에 대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에서 떠나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시편 145편 19절에 보면,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모두 이루어주십니다.
시편 147편 11절에 보면,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지, 그의 소원을 이루시고, 그가 부르짖을 때 응답해주시고, 그를 구원해주십니다.
시편 33편 18~19절에 보면,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34편 7절에 보면,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고, 9절에 보면,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03편 8~14절에 보면,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도 죄 지을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고 죄악을 따라 진노하지 않으시고 돌봐주십니다.
시편 128편 1~4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수지맞습니다.
잠언 9장 10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생명줄을 붙잡은 사람이고, 축복의 줄을 붙잡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도, 경외하지도 않으니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많고, 낙심과 절망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번뇌가 많아서 아무리 부요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두 번째 비결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잠언 15장 17절에 보면,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채소를 먹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살진 소를 먹는 것은 부유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살진 소’는 일을 시키는 소가 아니고, 일도 시키지 않고 살을 찌우게 해서 잔치를 위해 준비한 소입니다.
부잣집에서 살진 소를 먹으면서도 서로 미워하면 지옥이 됩니다. 그러나 채소를 먹으면서 사는 가난한 가족이라도 서로 사랑한다면, 그 가정은 천국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줄 믿습니다.
행복은 사랑을 주고받을 때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사랑을 주고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34).
사랑은 행복의 묘약이고, 사랑하는 만큼 행복이 옵니다. 사랑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은 일방적이어서 사랑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섬기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으면 그 어린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완전히 종노릇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가까운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면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있습니다. 어머니의 은혜를 잊으면 사람도 아닙니다. 어머니의 은혜를 보답하고 싶어서 효도하는 방은 간단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시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 보면,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존귀하게 여기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아무리 훌륭한 아내라도 남편이 천하게 여기고, 말을 함부로 하면, 천한 여자가 되고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자기 아내를 보배로 여기고 소중히 하면, 존귀한 여자가 되고,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여기에서 행복이 생깁니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희생해서 우리를 살리신 것처럼 위대한 사랑은 희생하는 만큼 이루어집니다.
본문 말씀대로 살면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행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기쁨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첫째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생기면 화평하게 되고, 희락이 생기고, 오래 참고 견디게 되어서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원하지만,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니 성령께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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