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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장

깨닫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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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2:29 조회2,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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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복

 

깨닫는 복

2003년 12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시편 119:67~75

 

시편 49편 20절에 보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깨달음의 차이에 있습니다. 사람은 깨닫는 만큼 지혜로워지고, 깨닫지 못하는 만큼 어리석어집니다. 따라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마치 멸망하는 짐승처럼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첫째,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시편 14장 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어디 있어? 없고 말고.’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도 없고 내세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사는 데까지 살다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식이 많은 석·박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1928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종군작가인 엘리위젤이 쓴 〈밤〉이라는 책에 보면,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들은 나치 정권 아래서 600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이때 이 일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같은 유대인인 아히만이었습니다.

어느 날 큰 거리에 아치를 세워두고 남녀 각각 한 쌍과 어린 소년의 목을 아치에 매달아두고 많은 사람들을 그 밑으로 지나가도록 위협했습니다. 기막힌 광경 앞에서 엘리위젤은 한 독일군 사병을 향해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독일군은 능청스럽게도 “지금 막 죽어가는 저 소년과 함께 죽어가고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종전 후 아히만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몹시 두려워 어디론가 잠적했습니다. 그러나 끈질긴 유대 비밀경찰에 의해 여러 해 만에 아르헨티나의 시골의 한 공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수염도 기르고 머리모양새도 바꾸고 이름까지 고치고 살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방탄유리 상자에 감금된 채로 재판 받게 되었습니다.

엘리위젤은 이 책을 통해 다시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라고 두 번째 질문을 던지면서 “하나님은 아히만을 심판하고 계신다.”라고 답했습니다. 만일 이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면, 짐승만도 못한 비열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어떤 부자가 자신이 소유한 밭에 소출이 풍성하다보니 대만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곡식을 쌓아둘 장소가 부족하여 기존에 있던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 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라고 하며 흐뭇해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라고 말씀하시며 부자를 나무라셨습니다.

 

여러분! 건강하다고 오래 삽니까? 재산이 많다고 장수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가시고자 하시면 잠을 자다가도 죽고, 길을 가다가도 죽습니다.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오늘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연수를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을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나누어서 “15세 된 소년은 9시 38분, 20세 청년은 10시 51분, 30세는 오후 1시 17분, 50세는 저녁 6시 8분, 60세는 저녁 8시 34분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70세는 밤 11시로 인생의 종착역이 바로 코앞에 와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얼마만큼 남았는지 자신의 남은 시간을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스위스의 철학자인 칼 힐티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고,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불행의 연속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멀어지면 점점 더 불행해집니다.

 

시편 73편 27~28절에 보면,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복을 받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살아있을 때 깨닫지 못했습니다.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먹고 마시고 호화로이 즐기며 세상 향락에 깊이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죽어 장사되어 지옥으로 내려갔습니다. 지옥이 얼마나 뜨겁고 고통스러운지, 심히 괴로워하며 “내가 살아있을 때 하나님 잘 섬길 걸, 살아있을 때 바르게 살 걸, 좋은 일 많이 할 걸.”하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의 집 대문 앞에서 거지로 살던 나사로가 낙원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 16:24)”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예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 16:25~26)”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7~28)”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눅 16:29)”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31)”고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자가 다시 깨어나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말한다 할지라도 결코 믿지 못합니다. 살아있을 때에 깨닫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부자처럼 죽은 후에 후회할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 16:9)”라고 안타깝게 책망하셨습니다. 이 시간, 이 말씀을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119편에서 계속해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8절을 보면,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눈’은 영안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영적으로 보게 해달라, 깨닫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27절, 34절, 73절, 144절에 보면,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깨달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가지고 집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다 죽게 되었습니다. 탕자는 이제라도 살 길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염치불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와 새 삶을 살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오면 살 길이 열립니다.

 

미국의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전, 실패를 거듭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부인이 정신병에 걸리기도 했고, 참모총장이었던 스크린톤이 반기를 들기도 했습니다.

링컨은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생겨나는가 고민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이 어떤 부인에게 음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시 자신의 마음 속에 역사하는 음란의 영을 물리쳐주십사 간구했습니다. 그 후 그를 괴롭혔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생각은 자유가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나쁜 생각, 악한 생각, 음란한 생각이 계속해서 들어온다면, 그것은 사탄이 여러분을 망하게 하기 위해 역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생각과 함께 사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호히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깨달으면 성공의 문이 열립니다. 깨달으면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톨스토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많이 발표한 천재적인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아주 못생겼습니다. 코는 넓적하고, 입술은 두껍고, 눈은 매우 작고 회색 빛이었으며, 몸에 비해 팔 다리가 길었습니다.

그는 “나는 너무 못생겨서 도저히 행복할 수 없을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인생의 행복은 외모에 있지 않고 내면의 풍요로움에 있다”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랑에 있다.”라는 중요한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더구나 어른이 된 후에는 신앙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부활〉이라는 세계적인 명작을 남겼습니다.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도 역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고귀한 신앙에서 나온 사랑이 우리 마음에 채워질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최상의 복은 깨닫는 복이며, 최상의 은혜는 깨닫는 은혜입니다. 더구나 빨리 깨달을수록 축복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만 해도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안이 밝은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듣기만 해도 금방 깨닫습니다. 듣는 순간, 열 가지 스무 가지를 깨닫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들을 귀가 있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매를 맞고서야 뒤늦게 깨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은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쓰디쓴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된다면, 그 고난은 큰 유익이 됩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시편 119편 67, 71, 75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깨달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새사람이 되었다면, 그 고난이야말로 큰 유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난이 변하여 축복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잃고서야 비로소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할 때에는 깨닫지 못하고 세상에서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건강을 잃은 다음에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겸손하지 못하고 큰소리치다가 좋은 일 한번 해보지 못하고 비참하게 추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재물을 하나님의 일에 부요하게 쓰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많은 재산을 다 잃고 나서야,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축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더구나 그동안 받은 복이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항상 내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손에서 떠날 날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재물이 내게 있을 때 하나님을 위해 바르게 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아낌없이 쓸 줄 압니다. 없어진 다음에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이든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은 하늘나라 창고에 보관되는 것이므로 가장 복되게 사용한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낙(樂)이 있어야 합니다. 낙은 ‘세상 낙’과 ‘신령한 낙’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낙은 육체적인 쾌락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낙에 많은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세상의 낙은 추구할수록 만족이 없습니다. 문제가 많고 고통이 따라옵니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낙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그저 적당히 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낙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낙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낙’입니다. 말씀을 통해 얻게 되는 낙입니다. 말씀의 은혜 속에서 사는 낙입니다. 또 말씀대로 행함으로 얻게 되는 낙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칭함을 받은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시편 1편 2절에 보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9편 10~11절에 보면,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9편 50, 72, 92, 97, 103, 127절에 보면,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기자처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살며, 말씀을 통해 축복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요, 신령한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를 깨닫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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