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 > 욥기23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욥기23장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8 10:30 조회7,811회 댓글0건

본문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

2011년 08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욥기 23:10

 

욥은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소원하는 복을 다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내와 아들 일곱에 딸 셋, 10남매가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잔치하며 즐기고 난 후에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자녀들 하나하나를 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은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양이 7천 마리, 약대가 3천 마리, 소가 천 마리, 나귀가 5백 마리였다고 했으니 아주 큰 부자였습니다.

대개 이렇게 재산이 많으면 신앙생활에는 게으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재산이 많고 축복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욥기 1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에 대해서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은 욥 외에는 없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욥은 땅의 축복뿐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 믿음의 복,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사는 신앙의 복까지 모두 다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이 이렇게 축복받은 상태로 있다가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욥에게도 고난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일 먼저 재산을 거둬가셨습니다. 강도가 와서 가축을 빼앗아가고, 천둥 번개가 와서 재산을 다 태웠습니다. 그 뿐 아니라 10남매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는데, 강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10남매를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대개 이런 일을 당하면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슬퍼할 텐데,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욥 1:20~21). 이 세상에 나올 때 알몸으로 왔으니 그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이고, 그것을 누리며 살았는데 다시 거둬 가신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주셔서 받아 누리다가 거두어 가셨으니, 그는 오직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릴 뿐이라며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그의 신앙이 얼마나 위대한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욥은 고난이 왔을 때, 이 고난의 때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모든 것이 잘될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올려 드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욥과 같이 모든 것을 잃고 충격적인 일을 당한 때에도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감사하고 영광을 올려 드린다면, 이것은 열배 백배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욥을 본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에만 감사하지 마시고, 어려움과 고난이 왔을 때에도 욥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욥이 이렇게 했으면 이 정도에서 고난이 끝났으면 좋은데, 더 큰 고난이 옵니다. 그는 아내에게서 버림을 받습니다.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위로해주어야 할 아내가 오히려 욥을 욕하고 저주합니다.

그 뿐 아니라 종기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나서 가렵고 괴로워서 잿더미 위에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온몸을 긁었습니다.

욥기 7장 5절에 보면, 욥은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온몸에 구더기가 우글거리고, 피부가 터졌다가 굳어져 만신창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라고 말했습니다(욥 19:13~15, 18~20).

욥은 얼마나 말랐는지 잇몸밖에 남은 살이 없고 해골 같은 모습이어서 그 끔찍한 모습을 사람들이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욥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고난을 다 받았습니다. 명예, 권세, 이름, 건강, 가족, 친구,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보다도 그에게 더 큰 고통이 된 것은, 왜 이런 고난이 왔는지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난의 원인을 알기 위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욥기 13장 22~23절에 보면, 욥은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매우 괴로웠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1절에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종류의 고난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당하게 받는 고난입니다. 두 번째는 죄가 있어서 받는 고난입니다. 세 번째는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입니다.

자신이 바르게 살지 못해 죄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면 회개하면 됩니다. 빨리 회개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전도하다가 맞거나 감옥에 가는 고난입니다. 이렇게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상급과 면류관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이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을 필요가 없는데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도 잃지 않고 모두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고난을 아주 달게, 기쁨으로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 애매한 고난입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고, 억울한 고난입니다. 바로 욥이 받은 고난입니다.

 

욥에게는 큰 시험이 되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그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고백했습니다.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고난 당하는 이유를 모르지만,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모두 아신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어디에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신나고 괜좋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를 믿기 때문에 어디로 데려가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욥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그동안 축복해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자신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시므로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라고 고백합니다(욥 23:13~14).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뜻이 있고, 작정하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이루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욥은 긍정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지금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시는 것인데, 단련된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서 나오리라는 아주 긍정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괴롭지만, 이것이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믿음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지금은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셔서 더 잘되게 하시고, 더 큰 복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욥은 믿은 대로 되었습니다. 욥기 42장 5~6절에 보면,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의 수준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설교말씀을 듣고 아멘하고 따라가는 신앙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주를 내 눈으로 뵈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 체험적인 신앙의 고백입니다.

욥은 영적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되었고, 그 후에 갑절의 재산과 10남매의 자녀를 주셔서 크게 축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가장 좋은 길을 아시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고난을 주셨다면, 그 고난도 분명히 축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엄청난 유익을 위해서, 우리를 더 잘되게 하기 위해서 분명히 축복으로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큰 고난을 당해서 예수 믿게 되신 분이 계십니까. 그 사람이 당한 고난은 축복입니다. 예수 믿기가 쉽습니까. 아무나 믿을 수 없습니다. 그 고난이 없었더라면 예수 믿을 수 없는 사람인데, 고난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 고난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여러분 중에 고난 때문에 죄를 깨닫고 회개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 고난은 축복입니다. 그 고난이 없었더라면, 이 시간에도 죄 가운데에 살았을 것인데,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죄를 끊어버리고 거룩하게 산다면, 그 사람이 당한 고난은 축복입니다.

고난 때문에 겸손해진 분이 계십니까. 그 고난은 축복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미움도 많이 받고, 고생도 많이 하고, 적이 많아집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모릅니다. 자신도 모르게 고난 때문에 될 일이 안 되고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당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기도를 많이 해도 고난이 끝나지 않고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제가 굉장히 교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교만의 뿌리를 뽑으려면 그렇게 연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제게 고난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만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고난 당함으로 기도를 많이 하게 된 분이 있습니까. 그 고난은 분명히 축복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다 보면 은혜 받고, 경건한 삶이 이루어지고, 좋은 믿음을 갖게 되니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고난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은 분이 있습니까. 그 고난은 분명히 축복입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자기 힘으로 잘 살고 성공한 줄 알지만,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면, 이 사람은 고난이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감사할 줄 압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자기만 위해서 살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만 생각했지만, 고난을 통해서 세상의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되었다면, 그 고난은 큰 축복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아진 후에 깨달은 것을 전도서에 기록했습니다.

전도서 1장 2절에 보면,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쾌락을 추구하고,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다 누려보았더니, 그게 좋고 복된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도서 2장 11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서 2장 17절에 보면,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에게 괴로움이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전도서 3장 12절에 보면,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바람을 잡는 일이고, 가장 좋은 것은 기뻐하며 선을 행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축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어가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욥기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29장

30장

31장

32장

33장

34장

35장

36장

37장

38장

39장

40장

41장

42장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