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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32장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않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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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3:05 조회3,2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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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는 죄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죄

2015년 11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역대하 32:24~26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는 유다 왕 아하스입니다. 아하스 왕은 사신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아하스 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죽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아버지와 전혀 달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아버지 밑에서 믿음 좋은 아들이 태어날 수 있었는지,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아마도 히스기야의 어머니가 믿음이 좋은 분이셔서 아들을 잘 키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열왕기하 18장 3~7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히스기야가 참으로 훌륭한 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어떤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가에 따라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이 즉위하는가, 우상을 섬기는 왕이 즉위하는가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달라졌습니다. 백성들이 축복을 받기도 하고,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어떤 사람인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히스기야 왕과 같은 왕이 나라를 다스리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31장 1~2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이 끝나매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애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자기들의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정하고 그들의 반열에 따라 각각 그들의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휘장 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역대하 31장 4~5절에 보면, “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을 명령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몫의 음식을 주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어서 먹고사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면서 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 앞에 풍성하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습니다.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셔서 농사도 잘 되게 하시고, 모든 것이 잘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백성들은 먹고 쓰고도 남을 만큼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앗수르가 침략했을 때, 히스기야 왕은 기도로 난관을 해결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사업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한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에 머리에 무엇이 떠오릅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려고 하십니까?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앗수르가 침략했을 때, 히스기야 왕이 군대를 모으고, 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열왕기하 19장 1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앗수르가 침략하여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히스기야 왕은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9장 14~19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에게 빨리 항복하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편지를 펼쳐놓고 “하나님, 보십시오. 하나님을 비방하고, 우리에게 항복하라고 한 편지를 보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뿐이심을 온 천하가 알게 해주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이렇게 기도한 결과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열왕기하 19장 35~37절에 보면,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병이 퍼졌는지 알 수 없지만, 한밤중에 18만 5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왕은 신하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왕이 자신이 섬기던 우상의 신전에 들어가서 제사하고 있는데, 신하가 와서 왕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지만, 남유다는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전멸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남유다는 136년간 더 유지되었습니다.

 

역대하 32장 22~23절에 보면,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앗수르 군사로부터 보호해주셨을 뿐 아니라, 아무도 남유다를 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평안해졌습니다.

백성들은 자원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도 보물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얼마나 부요해졌겠습니까. 성전도 부요해지고, 히스기야 왕도 부요해졌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백성들과 왕들이 히스기야 왕을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게 되어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죽었다면, 그들이 가지고 온 양식과 보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들이 가졌던 무기와 갑옷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게다가 백성들이 많은 보물을 왕에게 갖다 주니 히스기야 왕이 얼마나 부요해졌겠습니까.

 

나라가 평안하고 부요해지면,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부요하고 강해지면, 자기가 잘 났기 때문에 강해졌다고 생각하여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방종하게 되고, 방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방탕하게 됩니다. 잘 살게 되고, 전쟁도 없고, 걱정할 것이 없다 보니, 먹고 마시고 즐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믿음이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부요해지고, 나라가 강해지고 평안하니 밤낮 먹고 마시고 즐기고, 육신의 쾌락만 추구하다가 나중에는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부자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세요. 늘 평안하기만 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세요. 부요하고 늘 평안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자기의 신앙이 좋다고 착각하고, 자기가 축복 받을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방종하기 쉽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매우 나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사랑하셔서 죽을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정신 차리라, 그렇게 살면 되겠느냐’라는 의미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38장 1~8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일 것 같습니까? 히스기야의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욕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바리새인처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병에 걸리게 하셨다면, 자기에게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는 줄 알고, “아버지, 제 죄가 무엇입니까? 저의 죄를 깨닫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저는 여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 소원입니다. 제가 소원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다면, 저를 살려주세요. 만일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살게 된다면, 저를 걷어가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믿음 없는 기도를 했습니다. 살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전심으로 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교만한 기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히스기야의 기도는 아주 잘못된 기도입니다.

 

히스기야는 부족한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간절히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것을 보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사야 38장 5~8절에 보면,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부족한 기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15년을 더 살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증거로 해의 그림자가 10도 물러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의 그림자가 10도 물러가게 하겠다는 것은 우주적인 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병 고침을 받은 후, 히스기야의 행동을 보면,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게 된 것, 15년을 더 살게 된 것이 보통 은혜입니까.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교만이 살아있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았는데도 교만이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전멸하고, 왕이 죽어서 히스기야가 존귀해진 것은 좋은데, 교만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별히 귀하게 여기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마음이 교만해지니 자신이 받아야 할 복을 당연히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은혜에 보답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음을 의미합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에게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뻐하고 찬양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후 마라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적,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은 생각하지 않고,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사흘 만에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기적 속에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히스기야와 내가 닮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잊어버립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둘째,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면, 이제는 그냥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는데, 어떻게 그냥 살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결단을 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히스기야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하셔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때서야 히스기야는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그랬더니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진노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났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지 않고, 땅에 재물을 쌓았습니다.

역대하 32장 27~29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평생 잘 먹고 잘 살 것이라 생각하고 창고를 늘린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연장해주신 15년 동안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생각하여 재물과 보화, 먹을 것을 쌓아두는 창고만 늘렸습니다. 세상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32장 31절에 보면,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셨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이보다 무서운 일이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신 후, 히스기야는 계속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합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에서 나은 것을 축하하는 편지와 예물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것을 받고 흥분하여 보물창고를 보여주고, 무기고에 데려가서 무기가 많다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여기서 히스기야의 신앙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늘 깨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기보다 더 강한 것이고, 더 귀한 보배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세상의 왕들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무기를 쌓아놓고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도둑 앞에서 자랑한 것입니다. 도둑 앞에서 자랑한다면, 그것을 본 도둑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것을 빼앗으려고 반드시 쳐들어올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사람들에게 자랑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그만큼 어두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39장 8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쌓아둔 것을 다 빼앗기게 되고, 자손들이 바벨론의 환관으로 잡혀가고, 망할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을 때, 히스기야는 무릎 꿇고 회개하지 않고, 자기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혀 슬퍼하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그의 심령 상태가 얼마나 병들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 연장해주신 15년의 시간은 히스기야의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시간은 자신을 위해 쓰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생각했어야 합니다. 날마다 깨어 기도하며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았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했어야 합니다.

만일 히스기야가 이렇게 했더라면,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깨달음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행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열심히 했던 것처럼, 열심히 기도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역사를 연구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을 때에 복을 받는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모아 하나로 회복시키는 일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히스기야가 날마다 기도했더라면, 성령께서 분명히 지혜를 주셨을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더라면, 잘못 살았다가도 회개하고 돌이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기도했다는 기록은 이후에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과 같습니다. 신앙이 좋은 것 같아도,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고, 기도생활을 멈추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죽어갑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는 것과 같습니다.

 

히스기야는 자녀교육에 실패했습니다. 자녀들을 기도로 무장시키고, 말씀으로 무장시켜서 “절대 우상숭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라고 교육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기 자신이 깨어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다 보니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15년 후에 히스기야가 죽으면, 왕을 세워야 합니다. 믿음 좋은 아들을 택해서 “너는 이렇게 살아라. 평생 이렇게 기도생활해라. 어려움을 당하면 기도해라.”라고 교육해서 훌륭한 왕을 세울 수 있도록 준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는 우상숭배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낳은 아들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혀 교육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므낫세는 하나님도 모르고, 기도생활을 전혀 몰랐습니다. 말씀도 몰랐습니다. 이런 므낫세가 왕이 되니 나라가 바뀌어버렸습니다.

왜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깨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평안하고 부유할 때, 기도생활이 게을러지기 쉽습니다. 나라가 평안하니까 기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되니까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영적으로 어두워집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지니 깨달음이 없습니다.

세상에만 관심이 있고, 날마다 잘 먹고 잘 입고 썩어질 육신만 생각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셨습니다.

 

평안한 때에라도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죄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에는 기도하지만, 평안하고 잘 살 때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놀러 다닐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타락하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은 후에 므낫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므낫세는 모든 곳에 우상을 만들고, 의로운 신하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므낫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남유다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했습니다(살전 5:16~18).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이 생겼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기도 응답이 되었을 때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기도 응답이 되지 않았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달라고 하는 대로 주시기도 하시지만,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으므로 감사하고,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축복인 줄 믿으며 감사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어려움으로 인해 기도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겸손해진 것을 감사하고, 믿음이 좋아진 것을 감사하고,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게 되고, 우리의 마음에도 기쁨이 충만해질 줄 믿습니다. 근심되는 일이 있어도, 감사하다 보면,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감사하면서 살면, 모든 일이 잘 됩니다. 기도 응답이 잘 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에게는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집니다. 이런 일을 체험하게 되니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러나 감사생활을 하지 않거나 감사생활을 게을리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기쁨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거나 잊어버립니다.

감사생활을 하지 않으면, 감사할 일이 머리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인간들에게는 이런 약점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맥추절, 오순절 등의 감사절기를 정해서 1년에 세 번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물질을 드리며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감사생활을 하지 않거나 감사생활을 게을리 하면, 믿음이 병듭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에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믿음이 점점 나빠집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게 됩니다.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평안할 때에도 평소에도 규칙적으로 계속해서 기도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평생 마음에 새기고, 잊지 말게 해주셔서 정신 바짝 차리고, 항상 깨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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