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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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8 15:45 조회5,548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
2002년 11월 08일(금요철야)
본문 / 역대상 29:10~17
옛날 어른들은 사람의 일생을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라고 했습니다. 작은 배는 항구에 도착하기까지 계속 풍랑과 싸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사히 항구에 도착하지만, 어떤 사람은 중간에 파손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풍랑을 만나 풍랑을 이기지 못해 배가 전복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배가 항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의 일생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의 일생을 보면,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환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요셉과 같이 깨끗하게 살았던 사람도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13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났을 때에 나라가 망해 살아남은 사람은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도 환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환난이 모두 저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난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때때로 환난을 주셔서서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환난이 온다고 해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신앙을 지켜나가려고 할 때에는 크든 작든 고난이 반드시 따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얼마나 많이 수고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잠자는 것도 손해보고, TV도 보지 않고, 돈 버는 것도 포기하고, 피곤을 무릅쓰고 추위에 떨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믿지 않는 부모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매를 맞아가며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는 데에는 이렇게 고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데에도 반드시 고난이 있고 수고가 있고 희생이 따릅니다. 그러니까 고생하기 싫은 사람, 수고하는 것이 싫은 사람, 희생하기 싫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신앙과 사랑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합니까. 신앙이나 사랑에는 그만한 희생과 고난이 반드시 따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 성도들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다윗에게 죄가 많고 다윗이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환난을 많이 겪게 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다’는 말은 다윗의 마음가짐이 하나님의 마음과 가깝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표준은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제일 좋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제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같이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평소에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판단하는 것 등 모든 심성이 주님과 같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마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착하고 바르고 진실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마음이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사람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언제나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일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울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아주 정직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말에 정직해야 합니다. 물질에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이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물질에 정직할 수 없습니다. 탐심은 곧 우상 숭배입니다(골 3:5).
성경에 보면,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 15:5)”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아 장군의 일은 예외지만, 그 외에는 다윗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일이 없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 16:7).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헌금을 하는 자세가 다르고, 말씀을 듣는 자세가 다르고, 삶이 다르고 행동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수고가 있고, 희생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기쁨으로 수고하고 기쁨으로 바치고 기쁨으로 희생합니다. 드릴 때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면서 기뻐하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보고 기뻐서 기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넘치는 기쁨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역대상 29장 5~6절에 보면, “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상 29장 9절에 보면,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백성들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고 다윗은 심히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수 있었을까요?
첫째, 천지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9장 11절에 보면,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천지 만물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것들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절대주권을 가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재가 되셔서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권세와 능력이 있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을 강하게 하는 것도 주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부하게 하시고 귀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셨다는 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수영로교회가 부요해지고 커진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제 생명도 주님의 것입니다. 제 집도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다윗처럼 기쁨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록펠러는 평생 지어 바친 성전이 4천여 개나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매년 한 개의 성전을 바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우리 교회 출신의 목사님이 개척하신 교회를 지어 바치려고 합니다.
아직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수십 명의 신자들이 기적적으로 땅을 사서 지금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됐다! 나머지 돈은 우리 교회에서 댈 테니 그저 열심히 밀어붙여라!”고 했습니다. 건축이 진행 중인데, 하나님께서 제 소원을 귀히 보시고 교회 짓는 데 우리 교회가 밀어줄 수 있도록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요즘은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조립식으로 만들어서 아주 예쁘게 잘 지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에게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록펠러가 지어 바친 성전은 미국 뉴욕에 있는 ‘리버사이드교회’라는 너무너무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이 성전을 지어 봉헌한 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성전에서 예배드리면서 “너무 훌륭하다.” “어떻게 이런 성전을 지어 바치느냐.”고 록펠러와 그 가족들을 칭찬했습니다.
그때 록펠러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주께 받은 것을 주께 드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의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것을 주님께 드렸을 뿐이라고 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평소에 십일조를 바치든지 감사예물을 바치든지 건축헌금을 드리든지 선교헌금을 드리든지 농어촌교회를 돕는 헌금을 하든지 언제나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주님께서 주신 것,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라는 믿음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둘째, 지금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시간에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전쟁을 많이 했습니다. 환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니까, 다윗은 언제나 백전백승했습니다.
이기니까 살아남은 포로는 노예로 만들고, 금은보화를 다 가져와 재산을 늘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역대상 22장 14절에 보면,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평안한 때가 아니라, 전쟁이 계속 일어나는 중에 죽음의 위기가 왔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죽을 고비를 얼마나 많이 넘겼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전쟁할 때마다 ‘아하, 사람의 목숨이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살아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오늘밤에라도 죽어 화장터에 가면 한줌의 흙이 됩니다.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목숨이라는 것은 오늘 살아있다 해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9ㆍ11사태 때도 여러분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습니까. 뉴욕의 쌍둥이 빌딩은 박사들, 천재들,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 빌딩이 삽시간에 무너져 그곳에 있던 수천 명의 두뇌들의 뼈도 하나 찾지 못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건물도 하나님께서 한 번 치시면 짧은 시간 동안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의 목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잠시도 살 수 없습니다.
지난 주간 저는 서울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가 아프고 부어오르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나중에는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아픈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구 장로님이 “우리의 몸속에는 바이러스 병균이 돌아다닙니다. 건강할 때에는 우리가 잘 견뎌서 괜찮지만, 약한 부분이 있으면 거기에 균들이 집중 번식해서 염증을 일으킵니다.”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장로님의 설명을 들으며 ‘폐나 머리, 심장, 간, 위 등의 소중한 부분이 약해져 거기에 균들이 삽시간에 염증을 일으켰다면, 나는 벌써 관 속에 들어갔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있습니다. 젊었다고 방심하지 말고, 평소에 건강한 것도 방심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환난 많은 세상에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신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다윗의 경우, 계속되는 환난 가운데서 죽지 않고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승리하게 해주셔서 점점 부자가 되어 성전을 지을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역대상 22장 14절에 보면,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금은보화가 얼마나 많이 쌓였는지, 상상이 안 될 정도입니다.
환난은 괴로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면, 환난도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환난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환난이 와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지키시면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더 부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IMF금융위기 때에 오히려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환난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셉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감옥살이를 했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여호사밧 왕도 암몬과 모압 연합군이 쳐들어와 위기를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그들을 다 물리치고, 그들이 가져왔던 금은보화를 나르는 데만 나흘이 걸렸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축복으로 바뀝니다. 환난 중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더욱 자주 체험하게 될 것이고, 더욱 큰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더욱 큰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가야 합니다. 빈부귀천과 상관없습니다. 순서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내일로 미루면 안 됩니다. 오늘 할 수 있을 때에 오늘 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바칠 수 있으면, 오늘 바쳐야 합니다.
다윗은 사람의 목숨이 하루아침의 안개와 같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절대로 미룰 수 없고 기쁨으로 바쳤습니다.
제일 불행한 사람은 쌓아 놓고 죽는 사람입니다. 재산은 수백억 원을 쌓아놓고, 주를 위해서 성전 하나도 짓지 않습니다. 가진 것은 많은데, 주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주님 앞에 가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책망 받았던 것처럼 될까 걱정합니다. 주를 위해 바치려고 작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의 목숨은 내일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수 있을 때에 기도하세요. 바치는 것도 바칠 수 있을 때에 바치십시오. 오늘이 기회입니다.
셋째, 평소에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은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얼마나 크게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믿음으로 지어 바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허락받지 못해 성전을 지을 수 없었지만, 아들이 성전을 짓게 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때부터 일평생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모두 성전건축을 위해 모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지을 때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믿음으로 바치셨습니까? 성전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처소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평생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소중한 줄 모르고, 예배에 빠지고 예배 시간에 딴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중에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고사는 집만 편안히 잘 해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는 움막같이 해놓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집은 백향목 궁전인데, 하나님의 성전은 천막이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지어 바칠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대에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 형제 중, 아벨은 하나님께 받으시는 제사 드렸지만, 가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것은 받으셨으나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하고,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배에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강해져야 세상에 나아가 승리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축복 받으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축복을 받으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는데, 그것을 받을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성전을 지어 바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주님과 복음을 위해 바침으로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런 일은 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이런 일은 마음속에 꿈만 가져도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좋은 소원, 좋은 꿈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모두 이 귀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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