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고난과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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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8 16:34 조회5,686회 댓글0건본문
인생의 고난과 축복
인생의 고난과 축복
2003년 02월 14일(금요철야)
본문 / 열왕기하 5:1~14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큰 용사로서 높은 권세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나아만은 분명히 재산도 많았을 것이고, 왕 다음의 2인자로서 굉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적으로 잘된 사람들, 즉 부요하고 출세하고 명예와 인기와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은 정말 위대한 사람입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더 큰 축복을 받게 되고, 더 큰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사람은 정말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만합니다.
이 교만은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이 정신병은 육신의 병보다 고치기 힘들고,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바르게 알지 못하므로 자신에게 속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에게 속으면서 살고, 자신의 연약함을 모릅니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면서도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착각 속에 삽니다.
또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모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고, 오히려 남을 비난하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교만한 사람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다 자기가 잘나서 잘된 줄 압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듭니다. 그래서 무서운 죄를 범하면서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죗값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도 모르고 죄를 범합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압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을 심판하시면 얼마나 무서운지, 지옥 불에서 고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죗값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반역행위를 하다가 망하게 됩니다.
웃시야 왕은 나라가 강성해지니까 교만해져서 대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분노하는 순간,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고, 그 시간부터 별궁으로 쫓겨나서 평생 고생하면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대하 26:16~21).
하나님이 교만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죄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나아만은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지만, 두 가지 병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는 본래 가지고 있던 교만병이고, 또 하나는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는 나병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나병이 큰 문제인 것 같지만, 교만병은 나병보다 더 무서운 병입니다. 나병은 육신만 병들게 하고 죽이지만, 교만병은 육신과 영혼을 아울러 멸망하게 해서 지옥에 들어가게 하는 정신병입니다.
육신의 병보다 정신병이 더 무서운 병입니다. 정신병은 육신의 병보다 고치기 힘들고, 더 많은 고통을 가져오고, 피해가 더 크고, 더 불행하게 만듭니다.
나아만은 나병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때, 자신의 썩어가는 몸을 생각하면서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밤을 보낼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장군복을 입고 있지만, 그의 몸은 썩어가고 있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고난 중에 태어나서 크고 작은 고난 속에 살아갑니다. 그리고 평생 많은 고난을 받으며 살다가 고난 속에서 죽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욥기 5장 7절에 보면,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나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고난이든 있고, 그 고난을 통해 당하는 고통은 다 같습니다. 물질로 고난을 당하든,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든, 정신적인 고난을 당하든 그 고난을 통해 느끼는 고통은 다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당할 때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 어떤 자세를 갖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모를 세상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얼굴 생김새도 험악해지고, 잔인해집니다.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억울하고, 불공평한 것 같아서 그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되고, 더 괴로워하게 되고, 더 큰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매우 잔인하고 악독한 성품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당할 때 고난을 참고 견디며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를 내고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나에게 고난이 있을까? 고난이 있을 때 위대한 인물들은 어떻게 고난을 이겼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고난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그 고난이 많은 축복을 가져오고, 많은 유익을 가져옵니다.
고난 때문에 죄를 깨닫는 사람은 회개하게 되고,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교만을 깨닫는 사람은 회개하게 되고, 겸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영안이 밝아지는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영안이 밝아지면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연약한 죄인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 공로가 아니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겸손하게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있어야 참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매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알고 입으로 고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안이 밝아지는데, 이런 사람은 이미 받은 은혜가 크고 많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지금 형편은 어렵고 고난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자신이 받은 은혜가 크고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가를 깨닫게 되어서 지금 현재 당하는 고난보다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며 주님 앞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오히려 고난 때문에 겸손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어서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시편 119편 67, 71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고난을 통해 축복 받은 자의 간증입니다.
고난에는 물질적인 고난, 육체적인 고난, 정신적인 고난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고난보다 육체적인 고난이 크고, 육체적인 고난보다 더 큰 것이 정신적인 고난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물질로 고난당하신 분이 계실 줄 압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은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고난 가운데 가장 작은 고난임을 깨달으시고, 잘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가난의 고통보다 큰 것이 육체적인 고통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물질의 걱정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육체적인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의 아내에게 수종들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포로로 잡아온 유대인 소녀였는데, 아마도 나아만이 한숨을 쉬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나아만의 아내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나병을 고쳤을 것입니다.”라고 엘리사 선지자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 이 말은 그들에게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병을 고칠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으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이 유대 소녀를 만난 것은 이 가정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축복이었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복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게 되어있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삶이 복되지만, 나쁜 사람을 만나면, 정신적, 물질적, 육체적인 손해가 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 인복(人福)을 주십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복을 주십니다. 저도 평생 사람 잘 만나는 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고, 아내도 잘 만났습니다. 우리 수영로교회를 보면, 우리 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얼마나 아름답게 은혜 받고 변화가 되는지, 모두 겸손하고 양순(良順)하고,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십니다.
이런 것이 사람을 잘 만나는 복인데, 목사는 성도를 잘 만나야 되고, 성도는 목사를 잘 만나야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환자는 의사를 잘 만나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나아만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소녀를 만났으니, 얼마나 축복입니까. 나아만은 이 소녀의 말을 믿고, 왕에게 허락받고, 많은 보물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에게 찾아갔습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 왕에게 찾아가니까 이스라엘 왕은 놀라서 자기 옷을 찢으며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일부러 트집을 잡아 전쟁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가 그 소식을 듣고 왕에게 청하여 나아만을 자기에게 오게 합니다. 나아만이 군사들과 함께 엘리사의 집에 도착해보니, 집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엘리사 선지자는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게하시라는 사자를 통해 말을 전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생각할 때, 자신은 굉장한 인물인데 나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사자를 시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라고 하니까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이 이렇게 상상했는데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니까 ‘우리나라에는 더 좋은 강들이 있는데, 강물로 씻어서 낫는다면, 우리나라 강물에 씻는 것이 낫지, 이런 형편없는 강에서 씻겠느냐’라고 생각하고 분한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엘리사는 무례하게 나와보지도 않고 이렇게 했을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나아만의 교만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아만의 나병은 교만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만 때문에 생긴 나병이라면, 교만만 버리면 축복을 받습니다. 교만만 버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바로 구원의 복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가는 복입니다. 교만을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고난이 다 해결될 뿐만 아니라, 구원의 복까지 받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아만의 교만부터 해결하기 위해 엘리사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나병보다 나아만을 망하게 하는 교만병부터 회개하고 고쳐야만 육신의 병을 고칠 가치가 있는 것이지, 교만한 인간에게 나병을 고쳐주면 더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병부터 고치고, 그 후에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먼저 교만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도 모르고, 나아만은 화를 냅니다. 화를 낸 것부터 그가 교만하다는 증거입니다.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멘’으로 받아야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교만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강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부터 냅니다.
웃시야 왕이 교만해져서 분향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못하게 하니까 화부터 냈다가 결국 나병에 걸렸습니다. 이처럼 교만으로 인해 화를 내면, 더 큰 화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무서운 진노가 옵니다.
다행히 나아만에게는 올바른 충고를 해준 신하가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지혜로운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아만이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이 깨달음은 축복입니다. 깨달은 자에게는 살 길이 열립니다. 깨닫는 순간 모든 고난이 축복으로 바뀝니다. 나아만은 신하의 말을 듣고 깨닫는 순간, 묵묵히 순종합니다. 화를 내고 돌아가려던 나아만이 다시 돌아와서 옷을 벗기 시작하고, 요단 강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두 번 … 일곱 번 목욕했습니다. 일곱 번 목욕하라고 했으면,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신명기 28장 1~14절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성공하게 되어있고, 그 말씀대로 살면, 축복 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축복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살면, 축복이 오지만, 그 말씀대로 사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 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중요한데, 많은 사람들은 끝까지 순종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 씻으라 하면 일곱 번 씻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믿고, 믿음으로 끝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다가 중단하면 지금까지 순종한 것은 다 취소됩니다. 여섯 번 씻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순종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된다.”고 하면, 될 때까지 기도해야지, 왜 기도하다가 중단합니까. 하나님이 왜 여러분에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정말 성령의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을 때까지 물러서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해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했을 때, 하나님이 져주신 것이지, 정말 진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생명 걸고 환도뼈가 부러질 때까지 매달리니까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을 각오하고 매달리면, 주님이 말씀하시든지, 기적이 일어나든지, 불이 임하든지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문제는 우리가 순종하되 끝까지 순종해야 되는데, 끝까지 순종하지 않아서 이것이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이 임할 때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 하나님께 열납되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볼 때까지 끝까지 순종해야 됩니다. 끝까지 순종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축복을 받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축복이 임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아만은 무조건 일곱 번 씻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피부가 어린 아기의 살결같이 그렇게 회복되었습니다.
나아만은 병만 고친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이 모든 신하들과 하나님 사람 앞에 서서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하고 대가를 받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철저히 회개하고,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청하면서 자기가 왕을 모시고 있으니까 왕이 우상 앞에 절을 하면 자기도 할 수 없이 굽히지만, 내가 굽히는 것은 우상 숭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니까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절대로 우상숭배 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병만 고쳐서 나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 돌아가서 죄 지으면 지옥의 인간이 되는데, 나아만은 병보다 더 큰 고침을 받았습니다. 교만병을 고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병을 고치고,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나아만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평안히 가라고 축복해주십니다.
열왕기하 5장 15~19절에 보면,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십니까? 물질의 문제입니까, 건강의 문제입니까, 아직도 버리지 못한 죄가 문제입니까, 교만이 문제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될 것은 죄악입니다. 특히 교만죄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교만을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기도응답이 얼마나 빨라지는지, 물질문제, 건강문제는 축복으로 바뀐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교만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기도응답을 빨리 해주시고,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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