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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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0:29 조회3,279회 댓글0건본문
다윗의 선택
다윗의 선택
2003년 07월 13일(주일예배)
본문 / 사무엘하 24:10~15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기간이 대체로 칠팔십 년 됩니다만, 일평생 환난이나 질고 없이 평안하게만 살다가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살다가 갑니다.
특별히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은 다를 것 같지만, 성경을 보면, 다윗도 일평생 얼마나 많은 환난과 풍파를 겪으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는 장인인 사울 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피해 다니느라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후에는 계속해서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쫓김을 당하고, 죽음을 간신히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3년 동안 기근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고, 온 나라가 전염병으로 사흘 동안 7만 명이 죽는 큰 재앙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엄청난 재난이 오게 된 이유를 다윗이 인구조사를 지시한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는 군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그 수를 조사했습니다. 사무엘하 24장 9절에 보면,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이 130만의 큰 군대를 가진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기록한 역대상 21장에 보면,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행한 이 일을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기신 것을 보여줍니다.
인구를 조사한 것이 왜 죄가 됩니까?
사실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한 나라 안에 백성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세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행위가 죄가 된 이유는 근본적인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늘 함께하심으로 전쟁 때마다 승리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진 나라의 모든 것이 다 이긴 자의 것이 되고, 산 사람 또한 모두 승전국의 노예가 됩니다.
따라서 다윗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나라가 부강해졌고,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으로 된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탄에게 속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마치 자신의 군대가 강력해서 승리한 것처럼 은근히 과시하려는, 우쭐한 마음에서 인구조사를 한 것입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큰 교회에 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잘못 생각하면, 우리 교회에 교인이 얼마나 많이 모인다는, 자기 과시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인 수가 많다고 해서 다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교인 수가 적어도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바른 신앙생활을 하며,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친다면, 좋은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우리가 대신 받으려고 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가 대단히 급히 성장하는 것을 보고, 제가 설교를 잘해서, 목회를 잘해서 교인들의 수가 느는 것으로 착각하고 잘못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얼마나 정확하신지, 제가 교만한 생각을 가지게 된 그 주간 수요일 저녁예배 때, 마치 교인들이 약속한 듯이 나오지 않았고, 아이들 몇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개척교회에서 갑자기 교인들이 나오지 않으면 목회자는 앞이 깜깜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배당이 꽉 차도록 교인들이 나왔는데, 왜 갑자기 나오지 않습니까? 제가 무슨 죄를 범했습니까? 내 죄를 알게 해 주세요.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집에 가기도 싫고, 저의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계속 강단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새벽녘에 주님께서 “네가 해? 내가 하지.”하는 분명한 음성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수영로교회를 세운 것도 제가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세우시고, 매주 성도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것도 제가 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막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 용서해 주세요. 몰랐습니다. 제가 잘해서 부흥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이 우리 교회의 당회장이십니다. 저는 교육전도사와 같은 마음으로 충성하겠사오니 주님이 이 교회를 맡으시옵소서.”라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남들보다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잘 나갈 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보고 부러워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이생의 자랑은 “내가 잘났다. 너보다 낫다. 내가 성공했다.”라고 하는 자신이 높아지고,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는 교만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생의 자랑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며,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높일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9장 23~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내게 명철함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과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분임을 깨닫게 된 것을 자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47절에 보면, 다윗이 적군의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하나님께 멋지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우렁차게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골리앗과의 대결에 앞서 하나님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기고 지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선포함으로써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 슬픈 일이 있다할지라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만 돌릴 수 있다면, 축복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어떤 일을 당하든지, 항상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며 살 때, 누리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을 맛보며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1~23절에 보면,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헤롯은 마치 자신이 신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고, 그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고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즉시 벌레로 인해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49:3).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들을 창조하시고 선택한 목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2장 8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절대로 남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사람에게 돌리거나 다른 것에 돌리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창세 전에 택하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어 예수 믿어 거듭나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이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영광’이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 저와 여러분을 구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고전 10:31).
본문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시킨 죄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큰 재앙을 내리시면서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년 기근과 3달 동안 대적에게 쫓기는 재앙과 사흘간의 전염병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세 가지 중에 사흘간의 전염병을 택했습니다.
다윗이 사흘간의 전염병을 택한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사무엘하 24장 14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사울에게 시달리고 도망 다니며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잔인한 사람의 손에 빠지기보다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징계를 택했습니다.
시편 103편 8~11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저와 여러분은 과거에는 이 세상 풍속을 따르고, 마귀를 따라 육체의 욕심대로 제멋대로 살았기 때문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시고, 은혜로 구원 얻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엡 2:1~7). 이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둘째, 절대주권이 오직 하나님 손에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생사화복과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고자 하시면, 기근을 당해도 죽고, 대적에게 쫓기며, 설령건강해도 불의의 사고로 죽을 것이고, 심지어 잠자리에서 자다가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시면,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죽을병이 들고,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굳건히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평안하고, 만사가 잘 되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라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낙심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환난이나 재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섭섭해 하며 교회를 떠나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어떤 환난이나 재앙이 와도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이기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징계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길로 가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으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그 당시에는 슬퍼 보이고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룩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디 목사에게 한 여자 교인이 찾아와 “제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이 분명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 부인은 지금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왜요? 내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라고 반문했습니다. 무디는 다시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해도 아무 일이 없다고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살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살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똑바로 믿고, 신앙생활도 바로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큰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에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심지어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환난과 고통과 죽음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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