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탄생 사랑의 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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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4 10:57 조회5,948회 댓글0건본문
예수 탄생 사랑의 대행진
예수 탄생 사랑의 대행진
2002년 12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여호수아 6:1~7
여호수아 1장에 보면, 모세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종 노릇을 하던 여호수아에게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수 1:2~6).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한 번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다 주었으므로 네가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네 땅이 될 것이니 담대히 들어가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매우 작은 땅입니다. 이 땅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었는데, 너무 타락하여 음란하고 더러운 백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 이상 내버려두실 수 없으셨습니다.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쓸어버리시듯이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을 쓸어내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땅에 살게 하시므로 그 땅에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나라를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3~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으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말씀하셨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의 군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발바닥으로 밟기만 하면 됩니다. 가나안 족속이 키가 크든 작든, 가나안 군대가 강하든 말든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리고 성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여리고 성은 직접적인 군사작전으로는 공격하기 불가능한 요새지역입니다.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위치해 있는 여리고 성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서 성 밖으로 3~4m 높이에 석조 장애물을 설치했을 뿐 아니라, 본성의 중앙벽과 35도 기울어진 경사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군대도 점령할 수 없는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의 군대는 가나안 땅을 향해 들어가면서 가장 점령하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처음으로 맞부딪쳐야 했습니다.
본문 6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은 접근하기도 힘들고, 문은 완전히 닫혀있으니 이스라엘 군대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수 6:2~5).
날마다 성 주위를 돌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들에게 주었으니 매일 한 바퀴씩 엿새 동안 돌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불 때, 온 백성이 크게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똑같이 말씀하셨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말씀이 아닙니까? 이것은 믿음이 없이는 순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방법으로 여리고 성을 공격하게 하셨을까요?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가나안 땅에 거룩한 믿음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가나안 종족을 몰아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단순한 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나라, 구별된 나라를 세우시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명령하셨을 때,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으로 가라”라고 하시면 동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라”라고 하시면 서쪽으로 갔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창 12:4).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2:2).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 행함으로, 순종함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보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말씀대로 살 때, 그 사람의 믿음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훈련시키실 때, 순종으로 훈련시키십니다. 때로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을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가를 보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믿음을 훈련시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든지 이해되지 않든지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믿음으로 행했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여리고 성 주위를 돌았습니다. 마지막 날, 나팔을 길게 불 때에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셔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전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여리고 성은 마치 흙담이 무너지듯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본문 20~21절에 보면,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믿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축복을 받게 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축복 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복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신 28:1~9).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면,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며 믿음으로 행하면, 우리에게 모든 복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가운데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나라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더러워진 가나안 땅에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나라를 세우시려고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죄악이 많은 이 세상에도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 보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세상의 나라는 다 끝납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다 멸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의 나라는 끝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서 예수님께서 영원토록 왕 노릇 하실 것입니다.
다니엘 2장에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되어있습니다. 어느 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꾼 꿈을 잊었습니다.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몽했습니다.
꿈에 큰 신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머리는 순금으로 되어있고, 가슴과 두 팔은 은으로 되어있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으로 되어있고, 종아리는 쇠로 되어있고, 두 발과 발가락은 쇠와 흙이 섞여있는, 희한한 모양의 신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 어디선가 날아와서 신상을 치는 순간, 신상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 태산을 이루었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꿈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상이 박살나듯이 이 세상의 나라는 멸망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영원히 왕 노릇 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히브리서 11장 30절에 보면,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믿음으로 돌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쓰임받기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기적처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고, 100여 평 밖에 되지 않는 땅에 예배당을 지었을 때, 새벽예배가 끝난 후, 마치 여리고 성 주위를 돌듯이 수영로터리를 돌면서 “아버지, 이 수영로터리를 다 우리 교회에게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수 년 동안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데, 아주 높이 올라가서 아주 작게 보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저 새를 봐라. 새를 위해 내가 예비해놓은 공간을 봐라. 얼마나 넓고, 얼마나 크냐? 다만 저 새가 날개 치는 것만큼 올라가고, 날개 치는 것만큼 쓰지 않냐? 내가 너를 위해 예비해놓은 땅이 넓고 크다. 네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없어서 그렇지, 제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들은 후에는 수영로터리를 돌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준비해놓으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세요. 더 충성할 수 있는 목사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3천 5백 평의 땅을 주셨고, 백산에 1만 5천 평의 땅을 주셨고, 기도원을 지을 수 있는 5만 평의 땅을 주셨습니다.
저는 수영로터리를 돌며 그 땅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준비해놓으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옆에 유스호스텔이 있습니다. 저 건물을 짓다가 부도나서 수영로교회에서 그 건물을 인수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새벽예배가 끝나면,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유스호스텔 자리에서 기도하지 않고, 우리 성전의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이 땅이 얼마나 넓고 좋은지, 판다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아내와 손잡고 기도하던 이 땅을 우리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밟고 기도한 땅을 우리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서 50만 명을 모으는 부산복음화대집회를 이곳에서 사흘 동안 열었습니다. 그 집회를 위해 우리 성도들이 이곳에 몰려와서 줄을 맞춰 무릎 꿇고 앉아 기도했습니다. 부산이 복음화되게 해달라고, 50만 명을 모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땅을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이 땅을 밟은 사람들, 이 땅이 복음화되고, 거룩한 땅이 되게 하기 위해 기도하던 수영로교회에게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성전을 짓고 예배드리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을 밟았고, 이 땅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여리고의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1년에 두 번씩 부산 땅을 믿음으로 밟으려고 합니다. 부활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는 모습, 채찍을 들고 가는 로마 병정의 모습을 재연하며 부산 땅을 밟으려고 합니다.
저는 부산에 와서 초파일에 불교도들이 등을 들고 부산 땅을 누비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입니다. 부산이 어떠하기에 불교가 판을 칩니까. 그것을 보며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불교에서는 초파일에 한 번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두 번 이상 할 것입니다. 부산에 있는 교회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나아와서 행진하면, 십만 명이 나아오면, 백만 명처럼 보일 것이고, 만 명이 나와도 십만 명처럼 보일 것입니다.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외치며 행진할 것입니다. 찬양하며 행진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여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그동안 성탄절 행사가 위축되어있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세상 사람들이 더 좋아합니다. 술 마시는 날이고, 파티하는 날이기 때문에 성탄절만 되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문제가 많이 생겨서 국가적으로도 자제하면 좋겠다는 여론이 퍼지다 보니 교회마저 얼어붙어서 교회도 덩달아 조용하게 보내는 일이 있어왔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궤계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됩니다. 성탄절에 예배만 드리고 집에 가서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있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모여 파티하며 보내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날 우리는 길거리에 나아가서 구주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얼마나 복된 날인가를 외쳐야 합니다. 전도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을 믿음으로 밟아야 합니다. 부산이 복음화되고, 성시화되도록 기도하면서 이 땅을 밟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산 땅이 불교 도시가 아니라, 기독교 도시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산의 교회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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