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안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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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7 12:18 조회5,652회 댓글0건본문
우리를 안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안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2004년 10월 24일(주일예배)
본문 / 신명기 1:29~33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신실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입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예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의롭다 하신 분도, 영화롭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8:28).
저와 여러분이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 살다 보면,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앞이 보이지 않고, 절망적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이 혹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저와 여러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히 13:5).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3~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가려면, 광야를 거치지 않고서는 갈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광야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들어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저와 여러분이 주님이 약속하신 천국에 들어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모세의 인도를 따라갔습니다. 더군다나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나타나 나아갈 길을 지시해주니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루 이틀 아무리 가고 가도 보이는 것은 광야뿐이었습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웠으며, 곳곳에 불뱀과 전갈이 숨어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이 없어 사람들의 갈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메마른 광야 길을 걸어간 지 사흘 만에 마라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 물을 발견했습니다. 갈증으로 지쳐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달려들어 물을 먹으려고 입을 댔으나, 물이 너무 써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시며 그것을 물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따랐더니 쓴 물이 단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는 문제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출 16:3).
사실 인간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시급한 문제는 없습니다. 당장 먹을거리가 없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사는 동안 먹고사는 문제로 염려를 많이 합니다. 염려가 점점 많아지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은 어느새 원망과 불평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주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주셔서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또 물 문제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치자 반석에서 생수가 흘러나와 많은 사람이 흡족히 목을 축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광야와 같이 목이 마른 곳입니다.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애를 써도 결단코 만족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취하는 그때 일시적으로 얻는 만족이 있을 뿐, 항상 목마릅니다.
요한복음 4장 13~14절에 보면, 한낮에 물을 길으러 나온 사마리아의 수가 성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것으로는 만족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 만족을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출애굽기 19장 4~6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연단과 시련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제 새끼들을 훈련하게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독수리는 새들의 왕입니다. 대개 독수리는 깊은 산 높은 절벽 위에 둥지를 틀고 삽니다.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갈 때에는 시속 180km의 속도를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날아다닐 때에는 멀리 90km 떨어진 곳까지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새끼들을 훈련하는 방법 또한 매우 독특합니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둥지에서 일부러 밑으로 밀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살아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해댑니다. 그러나 곧 힘이 없어 밑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새끼가 땅바닥에 떨어져 죽기 직전에 어미 독수리가 잽싸게 내려와 넓은 날개로 새끼를 받아서 다시 올라갑니다. 그리고 또 떨어뜨립니다. 이런 혹독한 훈련의 반복을 거쳐 독수리 새끼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 독수리가 제 새끼를 훈련하듯 훈련하십니다. 이들이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시련과 연단을 주십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성인이 되면 군대에 입대하여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는 군인다운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운동선수들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된 훈련을 반복합니다. 훈련을 거쳐야 훌륭한 선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그저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반드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시련과 연단을 통해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본문 29~31절에 보면,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안고 가는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안고 가시는 것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천국 문 앞에 예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이 사람도 자신이 지나온 길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길에는 나란히 두 명의 발자국이 찍혀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발자국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누구의 발자국인지 알 수 없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은 너와 항상 함께 다닌 내 발자국이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지나간 세월동안 혼자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주님이 항상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간간이 한 사람의 발자국만 찍혀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왜 저때는 나와 함께해 주시지 않으셨나요? 주님이 함께하셨더라면 그때 그토록 힘들지 않았을 텐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자세히 보아라. 그게 누구의 발자국인 것 같으냐? 그건 내 발자국이란다. 그때 내가 너를 안고 걸었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어려움을 당하고 답답하고 절망적이고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할 때에 주님이 우리를 안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간증거리가 많이 생깁니다.
중국의 감옥에서 29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목사님께서 얼마나 건강하신지,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물었으나, 이 목사님은 의외로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간증하기를 “감옥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것이 계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계란이 먹고 싶은데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기도를 시작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바닥에 하얀 것이 놓여있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양은 계란 같은데 크기가 계란보다 크고 빛깔이 파르스름했습니다. 바로 오리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오리알의 양끝을 톡톡 쳐 구멍을 내고 쭉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계속해서 오리알이 놓여 있었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과연 누가 오리알을 이곳에 갖다놓는지 알아보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밤이 깊었을 때, 구멍으로 오리알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쥐가 훔쳐다가 이곳에 갖다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29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도 쥐가 물어다주는 오리알을 먹고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사과가 먹고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사과를 먹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다른 쥐를 통해 가장 맛이 좋은 사과를 굴려오도록 하셔서 실컷 먹도록 하셨다며, 감옥에 있는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먹고 싶은 것은 다 주셔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기가 어렵고,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안고 계십니다. 홀로 어려움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원망불평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 접경에 이르렀습니다.
신명기 1장 21~22절에 보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모세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쳐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리석게도 그들의 말을 듣고 12명의 정탐꾼을 뽑았습니다.
그들이 들어가 본 가나안 땅은 포도 한 송이를 두 장정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가야 할 정도로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컸습니다. 그 사람들과 비교하니 자신들은 마치 메뚜기 같이 매우 작아 보였습니다. 이들과 싸워 이기기는커녕 잘못하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다 이들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온 백성들이 이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밤새도록 통곡하며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이곳까지 데려와 죽게 하느냐며 이제라도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믿음의 눈으로 보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비관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잊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결국 믿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축복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세상만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아무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가 힘들 때 우리를 안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사야 46장 3~4절에 보면,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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