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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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8 21:10 조회3,174회 댓글0건본문
상처 받지 않는 믿음
상처받지 않는 믿음
2007년 06월 01일(금요철야)
본문 / 창세기 45:4~8
전도서 3장 1~8절에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족, 친구, 스승, 이웃, 자녀로부터 사랑 받을 때에는 정말 행복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미움을 받을 때에는 괴롭고 슬픕니다.
전도서 4장 1~3절에 보면,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이 세상에서 학대받으며 고생하는 사람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낫다고 했습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요셉은 다른 형제들이 시기할 정도로 부모님으로부터 특별히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든 일평생 사랑만 받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낮과 밤이 있듯이 사랑을 받을 때가 있으면 학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 분이시므로 요셉에게도 낮과 밤이 있게 하셨습니다. 요셉에게 낮만 있게 하신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도 밤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학대받고 애굽에 팔렸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소나 말과 같은 재산목록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소나 말처럼 일만 하고 매매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낮과 밤을 주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북극이나 남극에 가면, 어떤 때에는 낮만 있고, 어떤 때에는 밤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적으로 낮만 계속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낮과 밤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게 우리에게 얼마나 조화로운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밤이 인생에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고난을 받고 근심걱정에 사로잡히는 근심 걱정의 밤도 유익합니다.
병 때문에 밤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사업실패로 인해 물질의 고통을 당하며 밤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의 밤은 신앙과 인격에 유익합니다. 인생에 밤이 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난 성격이 다듬어집니다.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밤에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밤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사랑받는 것을 잊어버리고 학대받는 것만 마음에 새겨놓는다는 것입니다. 사랑받는 것은 당연히 여기고, 보답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학대받은 것은 평생 마음에 새기고 잊지 않습니다.
사랑받았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 고통 받은 것, 학대받은 것만 생각하고 마음에 앙심을 품으면, 슬픔이 가득하고 불평이 가득합니다. 학대받을 때 생긴 마음의 상처로 인해 인격이 삐뚤어지고 성품이 악해집니다.
최근 미국에서 조승희 학생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이 8세였을 때에 친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두 달 만에 새어머니가 집에 왔습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를 잃고 많이 절망하여 그 후 말이 없어졌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것이 친구들에게는 바보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놀림을 받고 왕따를 당했습니다.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먹고 사느라 바빠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분노가 가득 쌓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32명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습니다.
그 학생도 부모에게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서 공부했으니 좋은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생각하지 않고 나쁜 일만 생각하니 악한 마음이 독버섯처럼 자랐습니다.
평소의 생각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마음 밭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행동이 되고, 어떤 결과로 나타납니다.
평소에 좋은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좋아지고,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그러나 악하게 생각하면 마음 밭이 악해지고 삐뚤어집니다. 그리고 행동 역시 삐뚤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유는 마음이 악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4장 14절에 보면,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 4장 17~18절에 보면,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생각을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악한 생각을 마음에 오래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레미야 4장 4절에 보면,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레미야 6장 19절에 보면,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재앙이 임하는 이유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이사야 17장 9~10절에 보면,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완전히 잊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서 망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생각을 해야 하며,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성도님은 인물도 잘 생겼고 실력도 있고 모든 면에서 아주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가까이해보니까 마음이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잘난 인물과 실력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좋은 머리를 나쁜 데 썼습니다. 마음에는 욕심이 가득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썩은 냄새만 풍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상했습니다.
외모는 뛰어나고 마치 복 받은 사람처럼 훌륭한데, 마음이 삐뚤어지니까 아무 곳에도 쓸모없었습니다.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나쁜 생각만 떠오릅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으로 나쁜 행동을 하니 차라리 이 세상에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모는 못나고 실력이 없어도, 주님을 사랑하고 마음 밭이 아름답다면,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인줄 믿습니다.
요셉과 같은 경우를 당하면, 악한 마음, 즉 보복심 등을 가지기 쉽습니다. 또 더 악한 사람은 몇 배로 고통을 주고 싶은 마음도 가집니다.
그러나 요셉은 고통을 많이 당했지만, 그의 마음에 상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서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한 마디로 믿음으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고난과 억울한 일들을 당했지만, 그의 믿음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많은 사람이 상처를 주었다고 해도 요셉과 같은 믿음으로 마음에 상처가 없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요셉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었습니다.
본문 창세기 45장 4~8절에 보면, 요셉은 형님들에게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팔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먼저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었기 때문에 형들에 대해 원망, 보복, 미움이 없었습니다. 자기를 애굽으로 팔려가게 한 것은 하나님이시고, 형들은 그저 심부름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없이 인간들의 마음대로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을 원망하고 피의 보복이 계속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험한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로마서 12장 17절에 보면,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보면,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셉에게서는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감옥에 들어온 이유는 이야기했지만 자신을 감옥에 들어오게 한 보디발의 아내에게는 잘못이 전혀 없던 것처럼 지나가게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모든 사건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주장하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고, 우리가 고난을 당해도 그것으로 인해 많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요셉은 철저하게 용서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지 못하면 구원 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하므로 우리의 죗값을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죗값은 사망이요(롬 6:23),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습니다(히 9:22). 히브리서 9장 13~14절에 보면,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양의 피를 가지고 죄를 속죄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속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할 때,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5~11절에 보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을 반성하거나 용서를 구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우리가 마귀의 편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못된 짓을 할 때,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셉 역시, 형들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형들을 용서를 했습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4장 31~32절에 보면,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용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박해하고 원수 노릇을 하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지옥이 되지만, 용서하는 마음은 천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의 행복을 위해 용서해야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게 잘못했을 때에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내 잘못을 용서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 보면,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식적으로 용서하면 안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가장 좋은 것은 과거에 우리에게 고통을 준 사람과 그 일을 모두 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과 그 일만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마음에 상처받은 일이 있어도 상처가 남지 않습니다. 사랑받은 것만 기억하므로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에 우리에게 고통을 준 사람과 그 일이 자꾸 생각나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생각납니다.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화가 나고 슬퍼집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큰 상처요 불행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해결했습니다. 저도 저를 괴롭힌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제게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용서 받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축복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셔서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로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게 생겼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제 앞에 나타났으면 그 사람을 끌어안고 울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미국에 가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그 교회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던 중 용서에 대해 설교했을 때, 그 교회의 목사님께서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많이 받아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용서에 대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고 난 후, 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와서 아버지와 화해하고 아버지를 용서하고, 자신이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에 대해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며 아버지와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하와이에서 2주간 진행된 교역자 DTS에 참석하신 미국인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목사님의 어머니는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를 때리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자신은 결혼한 후 남편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며, 남편은 자신의 원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들인 목사님은 그 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없었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생겼다고 고백했습니다. 2주간 교역자 DTS가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를 용서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복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 때문에 야곱과 그의 가족이 복을 받았고, 애굽과 애굽 사람들이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때문에 이 민족과 가정, 그리고 모든 이방 민족이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절대 누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미워하지 마세요. 누구와도 원수 맺지 마세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무조건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히려 사랑을 베풀며 불쌍히 여기고 축복기도 해주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요셉처럼 마음에 상처가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용서할 뿐 아니라 그를 위해 축복기도까지 해주면, 우리에게 있는 모든 상처가 없어질 것입니다.
아직도 용서를 못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오늘 밤이 용서하는 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밤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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