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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9장

요셉의 성공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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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01 22:30 조회3,2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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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성공적인 삶

 

요셉의 성공적인 삶

2004년 12월 17일(금요철야)

본문 / 창세기 39:1~6

 

요셉의 이야기는 은혜롭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듣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심령이 병든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좋습니다. 구약의 인물 중에서 요셉을 생각하면, 요셉처럼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사람은 두 가지 복을 받습니다. 만사가 형통하는 복과 전화위복의 복을 받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먹고살기 힘들어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전화위복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어려움으로 인해 오히려 더 잘 됩니다. 이전보다 더 좋은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성공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은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의 어려움이 더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요셉처럼 살아야 합니다. 요셉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요셉처럼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어떤 믿음을 가졌습니까?

첫째, 요셉은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았습니다.

본문 창세기 39장 7~10절에 보면,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을 내버려두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셔서 만사형통하고 전화위복의 복을 우리가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사람을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과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죄악의 유혹을 받아도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뜻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고 채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단 3:5~6)”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넣기로 왕이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은 죽을 것을 각오하고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이런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에베소서 5장 8~10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착하게 의롭게 진실하게 살아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빛의 자녀로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시험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어려운 일이 축복으로 바뀝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18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에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착하게 선하게 살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죽어가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 받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선을 행하는 것, 사랑을 베푸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해 사람을 구원 받게 하는 것,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은 사랑을 베푸는 것보다 더 귀합니다.

 

로마서 14장 6~8절에 보면,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든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거치는 자’는 귀찮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디에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됩니다. 보배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승리했습니다. 요셉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1. 하나님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9장 9절에 보면, 요셉은 보디발에게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항상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생각하면 어떠한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악을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9장 10절에 보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편 1~2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악한 사람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죄 짓는 사람과 함께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사밧과 함께하셔서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남 유다가 번창했습니다. 부요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망하는 길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자손들이 완전히 망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합과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함께해서는 안 될 사람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18장 1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사밧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은 만나면 안 됩니다. 의리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면,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음란한 사람을 만나면 안 됩니다. 음란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안 됩니다. 어울려서는 안 됩니다. 떠나야 합니다.

 

역대하 18장 2절에 보면,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18장 31절에 보면,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하여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역대하 19장 2~3절에 보면,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을 사랑하고 아합을 돕고 아합을 가까이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여호사밧에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의 집이 다 망했습니다.

 

죄짓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안 됩니다. 죄짓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죄를 짓는 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친구, 스승이라도 죄짓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안 됩니다. 단호하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죄짓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안 됩니다.

 

역대하 20장 35~37절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전에는 여호사밧이 복을 받아 모든 것이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사람을 가까이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하 21장 1~4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우들 아사랴와 여히엘과 스가랴와 아사랴와 미가엘과 스바댜는 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사밧이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가까이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온 집안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사밧이 부자요 나라를 강성하게 했어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가까이한 결과, 집안 전체가 엉망이 되었습니다.

 

역대하 21장 5~6절에 보면, “여호람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람은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아합의 딸은 악독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역대하 21장 16~1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올라와서 유다를 침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람은 동생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자식도 다 죽었습니다.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만 하나님께서 살려두셨습니다.

 

역대하 21장 18~20절에 보면,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그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람은 자기 동생을 다 죽인 후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의 자식도 다 죽었습니다. 집안이 완전히 망했습니다.

 

역대하 22장 7~12절에 보면,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가 갔다가 요람과 함께 나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이더라 예후로 하여금 아합의 집을 심판하게 하실 때에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 곧 아하시야를 섬기는 자들을 만나서 죽였고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그를 예후에게로 잡아가서 죽이고 이르기를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고 장사하였더라 이에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힘으로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의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을 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함께 있었다면, 넘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요,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라도, 음란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안 됩니다.

 

둘째, 요셉은 현재의 고난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어 고생할 때에도 노예가 겪는 고통과 비참한 형편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요셉이 하는 일마다 형통했습니다.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요셉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해주셨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형통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고난이 있든지 고난에 매이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세요.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형통할 것입니다.

환난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환난만 생각하고 걱정하면, 환난이 매여버립니다. 환난에 매인 사람은 낙심합니다. 절망합니다. 자포자기합니다. 믿음이 약해집니다.

 

환난의 때에는 환난만 생각하고 걱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환난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하므로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전화위복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오라(마 14:28)”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을 본 베드로는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았을 때에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이키는 순간, 베드로는 물속에 빠졌습니다.

 

어려운 세상, 환난이 많은 세상, 고통스러운 세상, 살아가기 힘든 세상만 보며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다 잘 됩니다.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으시면, 열 자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환경을 보지 마세요. 환난을 보지 마세요.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요셉은 과거에 매이지 않고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과거를 되씹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요셉은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기억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증오심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 용서 받으려면, 우리가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에 보면,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회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용납해야 합니다. 피차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도, 배척하지 말고 용납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형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창세기 50장 15~21절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전화위복 됩니다. 오늘의 고난이 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믿음이 부족하고 인격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면 안 됩니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점만 있는 사람, 단점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져서는 안 됩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서로를 용납하지 않으면, 서로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믿음이 부족하고 인격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면,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온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갑시다. 현재의 고난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축복하며 살아갑시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형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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