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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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1 11:08 조회3,387회 댓글0건본문
오직 살 길
오직 살 길
2006년 09월 17일(주일예배)
본문 / 창세기 32:22~30
여러분 중에도 ‘배고픔의 고통’을 겪어본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배고픔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마음이 슬퍼지고 고독을 느끼는 것입니다.
육신이 병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병 자체가 주는 아픔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은 마음이 우울해지고 서글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고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슬픔과 고독을 느낄 때야말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믿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꿈이 큰 사람이으로, 꾀가 많고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입니다. 욕망 또한 컸기 때문에, 기회가 오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취하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렀던 20년 동안 네 명의 부인을 통해 열두 명의 자녀를 얻었고, 재산도 많이 모아 거부가 되었습니다(창 31:1).
그러나 금의환향하는 야곱의 마음은 기쁘고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20년 전,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듯 집을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나, 막상 형 에서를 만날 것을 생각하니 두렵고 떨렸습니다.
옛날 에서가 사냥하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야곱은 집에서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무척 배가 고픈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을 달라고 했을 때, 야곱은 에서에게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창 25:31)”고 제안했습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창 25:32)”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을 알지 못한 아버지 이삭은 죽기 전에 장자 에서를 불러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 27:2~4)”고 말했습니다.
에서가 사냥하러 나갔을 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염소새끼를 잡아 아버지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어 이삭에게로 가져갔습니다. 야곱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 앞에 자신이 형인 것처럼 속이고 형이 받아야 할 모든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에서는 극도로 분노했습니다.
창세기 27장 41~45절에 보면,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년 전에 집을 떠났던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는 것이 두렵고 떨렸습니다.
창세기 32장 13~20절에 보면,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감정을 풀기 위해 엄청난 예물을 먼저 보냈습니다. 이는 예물이 아니라 뇌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그 뒤에 두었습니다. 4백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는 형 에서의 공격에 대비하여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그의 자식 요셉은 가장 뒤에 두었습니다. 이처럼 치밀한 계획 하에 가족들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얍복 강을 건너려고 할 때, 자신의 생각과 수단방법도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형 에서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모든 것이 비참하게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얍복 강을 건너가지 못하고 강 이편에 홀로 남아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때야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야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이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밤새도록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매달렸던 것을 보면, 그가 목숨을 걸고 간절히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야곱처럼 목숨 걸고 기도하기만 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환난과 시험이 많은 이 세상에서 참으로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붙잡으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아무리 많은 것 같아도,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1시간 후에 될 일도 알지 못하며, 부족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야곱은 오직 살 길이 하나님을 붙잡는 데 있음을 깨닫고 얍복 강 가에 엎드려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야곱을 축복하시고 그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바꾸어 주셨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은 사람’, ‘찬탈자’, ‘사기꾼’이라는 뜻으로, 야곱의 옛 본성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승리자’,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뜻으로, 매우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 부르짖으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길만이 살 길입니다.
살다보면 우리 앞에 담이 놓여있을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하나, 막힌 담에 부딪혀 꼼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시편 18편 29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하여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처럼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아무리 높고 험한 담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담이 가로막고 있습니까? 환난입니까? 시험입니까? 병입니까? 사업의 실패입니까? 깊은 고민입니까? 여러분 앞에 놓인 담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와 목숨을 걸고 기도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미국 LA에 있는 바이올라대학의 교수이자 목사인 어느 분의 간증입니다. 그는 10대였을 때에 친구의 인도로 바이블캠프에 참석하여 예수께서 자기 구세주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때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결심을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그의 부모는 신학교에 가려면 모든 인연을 끊고 집에서 나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결국 그는 집애서 나와 부모의 도움 없이 대학에 입학하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많은 갈등 속에서 6개월이 지났을 때, 그의 생활비는 바닥 났고 친구의 도움마저 끊어져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제가 비록 집을 나왔지만, 저를 향한 어머니의 애정 또한 변함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제발 도와주세요. 저는 지금 등록금도 떨어지고 기숙사비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를 사랑하시는 어머니,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어머니는 냉정하게도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네가 집을 나갈 때 무어라고 했니? 너는 나에게 ‘내 하나님이 나를 돌볼 것이다.’라고 큰 소리쳤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너를 돌보지 아니하느냐?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받고 하나님께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부모님도 저를 돌보지 않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는데, 왜 저를 돌보아 주시지 않습니까?”
수 일 후에 어머니로부터 또 편지가 왔습니다. 그 내용은 앞으로 1주일 후에 어머니가 LA에 갈 테니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고, 그때까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음이 분명하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1주일이라는 정해진 시간을 두고 그는 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그렇게 엿새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어머니가 오시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까지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은 것으로 결론내리고 짐을 쌌습니다. 그리고 실망하여 축 늘어진 모습으로 학교 문을 나서다가 학교 교무과장을 만났습니다.
그의 표정을 보고 그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며 잠시 함께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그의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아침에 너에게 편지가 온 것 같은데 못 보았느냐?”고 했습니다.
알아보니,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100불 수표가 와 있었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 속에 그 수표를 들고 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를 보자 어머니는 대뜸 “네 하나님이 너를 돌보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가만히 있자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은 줄 알고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의기양양하여 “어머니, 이것을 보십시오. 저는 어머니께 60불을 구했는데, 하나님께서는 40불을 더 보태서 100불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몹시 화가 나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에 어머니로부터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믿는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는지 가르쳐다오.”라는 편지가 왔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온 가족이 구원 받았고,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거창고등학교를 설립한 전영창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는 기도의 능력을 생생하게 증거해줍니다. 그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부채가 많아 쓰러져가는 학교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창고등학교입니다.
그런데 빚이 너무 많아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1958년 4월 학교가 넘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성경과 찬송, 담요를 가지고 거창읍에서 40리 떨어진 산 중턱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펴고 1주일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미국에 갔다 와서 이 나라에 좋은 고등학교 교육을 해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학교가 부채로 넘어가게 됐으니 어떡하면 좋습니까? 하나님, 해결해주세요.”
사흘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이 없고 가슴만 답답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으시면, 1주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일간 신문에 하나님은 안 계십니다’하고 광고를 내겠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내려와 보니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 보낸 수표 한 장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2,050달러였습니다. 이 돈으로 부채를 다 갚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이토록 정확하게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자를 절대로 실망시키시지 않으십니다.
저는 주님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순간, 모든 근심과 고민과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 무오한 신실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신뢰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직원 중에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인쇄된 하나의 책에 불과하므로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직원이 사장에게 돈을 빌리려고 했습니다. 사장은 그에게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종이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밤 12시에 우리 집으로 오게.”
그 직원은 비록 늦은 시간이었지만 돈을 빌릴 생각으로 사장의 집으로 찾아가 벨을 눌렸습니다. “누구시오? 이 늦은 시간에” “사장님, 접니다.” 사장은 문을 열면서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밤 12시에 다른 사람의 집을 찾는다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직원은 머뭇거리며 종이쪽지를 사장에게 보여주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낮에 사장님이 주신 종이에 밤 12시에 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다만 사장님이 주신 이 종이쪽지를 믿고 왔을 뿐입니다.”
사장은 짜증난다는 듯이 종이를 흘겨보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달랑 그 종이쪽지 하나 믿고 왔단 말이지?” 그러자 직원은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예, 그 종이가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장님께 왔겠습니까? 저는 그 메모를 쓰신 사장님을 믿고 온 것입니다.”
그러자 사장은 “들어와 보게, 자네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네. 자네는 그 작은 종이를 의지하고 왔지만, 그것보다 더 신뢰하고 믿을 만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성경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을 쓰신 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서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가 살 길은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매달리면 반드시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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