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신자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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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8 15:58 조회3,195회 댓글0건본문
나는 어떤 신자인가
나는 어떤 신자인가
2008년 04월11일(금요철야)
본문 / 창세기 13:1~13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받아야 할 부분이 있고, 본받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은 끝까지 지켜야 하지만, 단점은 단호하게 끊어버려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도 있고, 본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점은 본받아야 하고, 나쁜 점은 ‘절대로 저렇게 살지 않겠다.’라고 결단하며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며 교훈을 얻고 재무장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소개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1장 27~32절에 보면,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게는 아들이 세 명 있었습니다. 그 중에 막내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하란이 결혼을 일찍 했는지, 하란에게 자녀가 있었습니다. 지명 중 하란이 있는 것을 보면, 하란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롯은 하란의 자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형인 나홀의 아내 밀가 역시 하란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니 밀가는 나홀의 조카였습니다.
나홀의 아내가 된 밀가는 브두엘을 낳았습니다. 브두엘은 라반과 리브가의 아버지였습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하여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두 딸 라헬과 레아와 결혼하여 열두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당시에는 근친결혼을 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이방 사람과 결혼하면 불안하니 가까운 친척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유일하게 아브라함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기회가 생깁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을 기회를 한 번도 얻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미전도 종족들은 언어도 없어서 복음을 듣지 못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해도,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면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무장합니다.
순종하는 만큼 믿음이 커집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성경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까? 아브라함은 순종하기 힘든 것까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아내와 의논하지도 않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아침 일찍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고민하지도 않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100% 순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순종합니다. 순종하는 만큼 믿음이 자랍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의 고향을 떠났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시면 떠났습니다. 동으로 가라 하시면 동으로 갔고, 서로 가라 하시면 서로 갔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12장 7~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나안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세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 감사예물을 드리면서 영광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 중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 삶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복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된 비결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기 위해 장막을 쳤습니다.
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막을 가지고 다니며, 잘 때에는 천막을 치고 잤습니다. 가나안 땅에 왔으니 그곳에 집을 짓거나 성을 쌓아야 할 텐데, 아브라함은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성을 쌓지 않았습니다. 장막을 쳤습니다.
장막을 치면 걷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기저기 자꾸 옮겨 다니며 사는 나그네 인생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바라보며, 우리의 본향 천국에서 주님과 살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큰 성을 쌓고 궁전을 짓고 살려고 한다면, 아브라함의 신앙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땅에 대한 미련이 없었습니다. 한밤중에라도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시면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예’하고 순종했습니다. 장막을 쳤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땅과 집과 고향에 애착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그네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면 떠나고, 언제나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순종하겠나이다.”라고 순종하는 믿음이 대단한 믿음입니다.
셋째,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경건한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머릿속에 하나님이 늘 떠오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대화 가운데 오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나를 도우십니다. 나를 인도하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하나님과 한 가족으로 살다보니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의 대화 가운데서 자꾸 나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며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 경건생활입니다. 운전하다가도 사고가 날 뻔 했는데 잘 모면했을 때, “주님의 은혜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이 세 가지 모습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배웁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이 살던 곳을 떠났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자녀가 없으니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롯을 마치 아들처럼 데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롯은 행운아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는 믿음이 좋지 않았지만,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살았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과 동거하고 함께 길을 가고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행운입니까.
가족 중에 제가 먼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가족 중에는 믿음 좋은 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잘 믿는 친구의 형님을 제게 붙여 주셨습니다.
형님이 은혜 받으러 가면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은혜를 빨리 받았고, 평생 복을 받았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동행했으니 얼마나 행운아입니까? 그러므로 롯은 아브라함과 살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가를 봤을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아브라함과 같이 제단을 쌓고, 어떤 때에는 아브라함이 장막을 치는 일을 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일생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른 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직접 체험했지만, 롯은 그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지만, 주님을 만난 사람과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매우 다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매우 다릅니다.
성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불덩어리가 됩니다.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나는지,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다녔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첫째, 롯은 소극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적극적인 신앙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했지만, 롯은 소극적이었습니다. 소극적인 신자는 끌려 다니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겨우 따라가는, 그저 흉내 내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을 때, 롯도 함께 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때에는 아브라함을 도우며 똑같이 한 것 같지만, 아브라함과 헤어진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제단 쌓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롯의 신앙이 형식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소극적이고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영적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소극적으로 하는 사람은 모두 영적 전쟁에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어떤 직분을 가졌든지 상관없습니다.
둘째, 롯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헤어지면서 때 동쪽으로 갈지, 서쪽으로 갈지 결정할 때에도 롯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생각대로만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었습니다.
동쪽과 서쪽을 비교해보니 동쪽이 좋았습니다. 물도 좋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성이 있었습니다. 살기 좋은 도시, 문명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것만 보고 선택했습니다. 그것을 보니 여호와의 동산 같았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자녀 결혼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기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을 사위로 맞이했습니다.
셋째, 롯은 신앙보다 물질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사람은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도 세속적인 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애굽에서 돌아온 후. 양과 소가 너무 많아서 아브라함의 가축 목자와 롯에 가축 목자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재산이 너무 많아져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고 친척인데, 서로 싸우지 말고 앞에 넓은 땅이 있으니 떨어져 살면서 좋은 관계를 갖자고 했습니다.
이때 롯은 자신의 지역을 택했습니다. 창세기 13장 10~12절에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소돔은 우상 숭배할 뿐만 아니라, 음란하고 더럽게 살며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었습니다.
창세기 13장 13절에 보면,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서 살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물 좋고 문명이 발달한 도시로 가서 살게 되니 육신적으로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에는 아브라함과 살 때와는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이사 갈 때든지, 이민 갈 때든지 육신이 살기 좋은 것만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잘 섬기며 영적 축복을 받을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롯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믿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과 보물보다 더 소중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것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으로 천국 시민이 됩니다. 믿음으로 구하면 다 받고, 믿음으로 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믿음으로 살면 복의 근원이 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돈 벌고, 출세하는 것, 육신의 향락을 누리며 잘사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이런 사람은 육신에 속한 자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요, 젖이나 먹고 밥은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넷째, 롯은 세속적인 것을 끊어버리지 못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 고모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또 믿음이 없는 소돔 고모라의 청년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두 딸은 자신들의 아버지 롯과 성관계를 맺음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아주 세속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의 가정은 경건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음란했습니다. 두 딸도 보통 수준의 딸이 아니었습니다.
큰 딸은 모압이라는 아들을 낳아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고, 작은 딸은 벤암미라는 아들을 낳아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떠난 족속이 되었고 항상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다가 밤낮 싸우다 멸망했습니다.
롯이 이렇게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려면, 소돔과 고모라에서 떠났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처럼 믿음으로 잘 살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겠다고 결단하고 소돔을 떠났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에게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시날 왕, 엘라살 왕, 엘람 왕, 고임 왕과 소돔 왕, 고모라 왕, 아드마 왕, 스보임 왕, 벨라 왕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돔 왕이 12년 동안을 조공을 바치고 13년째 되는데 배반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14년째 되던 해에 그돌라오멜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강했는지, 소돔과 고모라 등 다섯 왕은 패하여 죽고 도망가서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다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재산도 모두 빼앗겼습니다.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났겠습니까. 다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롯에게 이곳에서 살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13~16절에 보면,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 롯이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이때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롯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318명을 데리고 들어가서 어마어마한 군대를 어떻게 담대하게 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조카 롯과 가족을 살리는 것도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많은 재물을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4장 22~23절에 보면,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소돔 왕은 자기를 살려준 것만으로도 족하니 아브라함에게 모두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 재산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하나님 덕분에 잘 산다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소돔 왕이 가지라고 했던 그 재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인간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물질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을 위해서라면 못 사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단호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롯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지만, 롯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과 롯의 믿음의 차이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먼저입니까? 우선순위를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 세상을 위한 것 중에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생각하시고, 하나님을 위한 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첫째로 생각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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