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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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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09:52 조회5,6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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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2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2

2009년 11월 27일(금요철야)

본문 / 창세기 1:26~31

 

지난 번 설교에 이어서

넷째,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것을 위탁받은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인데 이것도 모르고 자기가 소유한 것을 모두 자기의 것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로 위탁받았다는 것을 모르므로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 십일조도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라기 3장 8절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봉헌물은 십일조와 함께 제사장에게 바치는 예물입니다.

 

신명기 12장에 보면, 제사장은 사람들이 가지고 온 이 예물을 노비나 레위인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기도 하고 성전 곳간에 보관하기도 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전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인 줄 모르고 사니까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면서 “주님의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살아야 합니다.

 

말라기 3장 9~12절에 보면,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매일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게 됩니다. 어떤 저주를 받는 줄 압니까?

첫째, 타락하게 되는 저주를 받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니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니까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하게 되는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사람이 타락하면 모든 저주가 줄지어 따라옵니다.

환난을 당해도 타락하지 않으면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타락하지 않으면 환난이 환난으로 끝나지 않고, 환난이 축복으로 바뀐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멸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저주를 받습니다. 마음에 지옥이 이루어지는 저주를 받습니다. 영원히 지옥의 멸망을 당하게 되는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지옥의 멸망은 당하지 않습니다만,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십일조 생활을 온전히 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있습니다. 이 징계가 없다면 사생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 딸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반드시 징계가 옵니다.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가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잘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보면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할 때 징계가 오는 자체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징계가 없는 사람은 참으로 사생자요,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영적으로 아주 곤핍해집니다. 그리고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세상 염려가 많아집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일조 생활도 안하고 날마다 선악과를 따먹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곤핍해지고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어지고 세상염려가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기도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열심히 기도하지도 않지만 말입니다.

특별히 기도하고 있는데도 응답이 안 되는 분들은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 십일조 생활을 온전히 하지 못한 적이 있지는 않은지, 감사생활을 온전히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세요. 회개하고 기도해보십시오. 그리고 얼마나 응답이 빠른가 보세요. 성경 말씀대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내가 굶어 죽고 망해도 하나님의 것은 드린다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기도해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십일조도 안하는 사람은 열심히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을 믿고 기도하지 않는데, 이 재물이 우상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높은 학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도 그들에게 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염려거리가 됩니다. 높은 학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죄를 많이 범하게 되고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와 말씀을 듣고 기도하다보면 반드시 깨닫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깨닫는 순간 믿음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천지만물을 다스리시고 주장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왕위도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사울 왕에게 하나님께서 왕위를 주시기도 하셨는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저버리니까 그 왕위를 빼앗아 다윗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땅도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솔로몬이 얼마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까? 그러나 나중에 우상숭배를 하고 타락하고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책망해도 정신을 못 차리고 회개하지 않으니까 그 아들 르호보암 때는 열두 지파 가운데 여로보암이 열 지파를 데리고 나가서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고, 르호보암은 그 나머지로 유다 왕국을 세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우리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재산이 있을 때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써야 합니다.

 

어느 장로님이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재산이 많다보니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정직하게 계산을 해서 드리지 않았습니다. 금액이 너무 커서 못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성전 짓는다고 하면 얼마나 인색한지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신 줄 아십니까? 그 여인에게는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수백억의 부자는 백만 원을 바쳐도 1%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는 백억을 모두 바친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그의 믿음이 크고 정성이 큰 것입니다.

장로님은 자기를 위해서는 풍성하게 쓰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너무 인색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한 번 부도나니 자기 집까지 다 날아가버렸습니다. 부도나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지 몰랐습니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재산을 하나님이 나한테 위임해주셨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이 장로님은 부도난 후에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릅니다. 눈물을 흘리며 후회합니다.

재물이라는 것은 쌓아놓았다고 해서 자기 것이 아닙니다. 지금 보관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쓴 것만 자기의 것이 됩니다. 내가 먹은 것만 내 것이 되지, 목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쓰고 나누고 베푼 것만 내 것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투자를 잘해서 몇 배의 이익을 얻습니다. 투자를 잘하면 축복을 더 받는데 성경에 보면 투자를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에게 주는 데 대해서 인색하게 굴지 말고 주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남에게 주기만 하면 주님은 “너희에게 주는데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자라지 않고 쓰고도 남도록 넘치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거짓말을 못 하시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가 아프도록 듣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믿지 않으면 이 말씀이 살아 역사하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역사합니다.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고, 이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야 이 말씀이 생명 있는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일으키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 진리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이고, 살아있는 말씀인지 체험하려면 아무리 없어도 믿고 순종해보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해야 믿음이 반석과 같은 믿음이 되고,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고, 예수 믿는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투자를 잘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내가 저 사람에게 좀 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내게 줄 것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주십시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투자방법인지 모릅니다.

 

둘째,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고 바치고 포기한 사람들은 백 배의 복을 받습니다. 당장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머지 않은 장래에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시는가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2학년 때, 개척교회에 가서 설교하는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열 번 이상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강대상이 없습니다. 그냥 책상 하나 놓고 서서 설교합니다. 조그만 방에서 이십 명쯤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출석교인이 180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예배당이 꽉 차서 교회를 세 번 정도 옮겼는데 교회에서 제일 가난한 사글셋방에서 사는 전도사인 제가 강대상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은 제가 하고 싶어서 제일 작은 것으로 재빨리 마련했습니다. 적은 투자를 했지만 평생 제가 받는 축복과 비교하면 천 배, 만 배입니다.

여러분,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하는 일은 여러분들의 투자 가운데 최고의 투자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사업하는 것이 지혜로운 투자입니다. 덮어놓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한 목표를 정하고 사업을 축복해달라고 하면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장로님 한분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친구한테 돈을 조금 빌려서 작은 사무실을 얻어서 작은 인쇄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시골 본 교회에서 예배당을 짓는데 크게 짓게 되었습니다. 시골에 돈이 없으니까 지붕도 덮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목사님을 향해 형편에 맞지 않게 큰 성전을 짓는다고 비난했습니다. 목사님이 금식기도하고 특별기도도 하다가 ‘서울에 간 장로님은 돈이 있겠지’라고 생각하여 ‘나머지 공사는 장로님이 맡아주세요.’라고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장로님은 그 편지를 받아 보고 ‘목사님이 제정신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로님의 형편도 가난한데 성전공사의 나머지를 다 맡아달라니까 말이 됩니까? 그 편지를 보신 부인 권사님이 “여보, 그것이 무슨 소리요? 하나님이 주시면 하지.”라고 말했습니다.

권사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장로님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조건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주시면 한다고 결정하고 시작했습니다. 이 장로님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인쇄업이 점점 잘되어 돈이 생기면 건축 자재를 사서 시골에 가는 사람들에게 딸려 보냈는데, 옛날에는 문고리도 국산은 너무 잘 망가졌는데, 서울 청계천에 가면 미국제품 중에 좋은 것들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금덩어리로 만들었지만, 나는 금덩어리는 못하지만 미제로라도 하자’라고 생각하면서 자재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작게 시작한 것입니다. 비록 많은 돈을 벌지 못했지만 작게라도 시작한 것이 축복의 물고를 열어놓았습니다.

장로님이 그냥 순종해버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급하시겠습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 큰 회사에서 그 회사에서 나오는 물건이 많아 물건을 포장하는 박스에 인쇄해야 하고, 설명서도 들어가야 하는데 모든 인쇄물을 이 장로님에게 맡기기로 계약했습니다. 큰 회사가 보증을 서고 밀어주니까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릴 수 있으니까 최신식 컬러인쇄기를 사서 그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을 다 찍어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고 있는 동안 이 회사가 커지니까 장로님 집도 크게 짓고, 방을 많이 만들어서 시골에서 올라오는 목회자들이 호텔에 갈 돈도 없으니 누구든지 오면 장로님 집에서 먹고 잤습니다. 그 장로님이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어떻게 살다가 왔는지 보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물질을 내가 평생 어떻게 사용하다가 왔는지 보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시간을 어떻게 쓰다가 왔는지 보고해야 합니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내가 그 시간들을 얼마나 바르게 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몸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내게 주신 재능을 가지고 내 영광을 위해 살았는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는지 보고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그저 자기만을 위해서 날마다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 음부에 가서 너무 뜨거우니까 아브라함에게 손가락에 물 한 방울이라도 적셔서 혀에 떨어뜨려 달라고 합니다. 거지 나사로는 비록 거지이지만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구원받아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는데, 자기만을 위해서 살다가 지옥에 간 부자는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나사로를 다시 세상에 보내달라고 합니다. 우리 형제가 다섯이나 되는데 이런 곳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보내서 그들이 죄를 회개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때 이 세상에 선지자도 있고 말씀도 있는데 말씀도 안 믿고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서 이야기해도 믿지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내 것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신앙생활을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에 보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3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듯이 잘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듯이 아주 성의 없이 합니다.

그런데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나는 증명할 날이 오는데, 무엇으로 증명하게 되느냐 하면, 불과 같은 시험이 닥쳐와서 그때에 불에 타서 없어지면 집을 지어놓은 것이 없어지니까 신앙생활을 헛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같은 시험이 와도 공적이 그대로 있는 사람은 상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 가는 날까지 우리의 공적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 쌓은 공적이 없어집니까? 불같은 시험을 이기지 못할 때입니다.

 

가장 무서운 시험은 교만해지는 시험입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큰 공적을 쌓는 것은 귀하고 복되지만, 교만해지면 그 공적이 다 불타 없어집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큰 소리를 치게 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해서는 안 될 악한 짓을 합니다.

웃시야 왕을 보십시오. 역대하 26장 16절에 보면,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가 강성해지니까 교만해져서 악을 행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제사장들이 향단에 분향하는데 자기가 해버립니다. 그것을 못한다고 야단치니까 제사장을 향해서 화를 냅니다. 그 순간 나병에 걸려서 평생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교만해지면 주인행세를 합니다. 교인들을 하인처럼 생각하고, 목회자를 자기 마음대로 부르기도 하고 내보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교만인지요.

 

저는 부교역자 한 명을 쓰느냐 안 쓰느냐에 대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조심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나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교육전도사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제 마음대로 하면 주님이 얼마나 책망하시는지 모릅니다.

 

다니엘 4장 30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라고 교만한 말을 하는데, 이 말이 아직 왕의 입에 있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짐승의 마음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겉은 사람인데, 정신은 짐승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짐승인 줄 알고, 들에 나가 풀을 뜯어 먹으며 일곱 해를 보내게 됩니다. 교만한 말을 하는 순간 그렇게 됩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사람이 교만해지면 자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교만해지는 순간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말씀에 은혜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은혜는 언제 받습니까?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잠 3:34).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미워하시며 교만한 자는 패망한다고 했습니다(벧전 5:5).

이렇게 교만한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예수님께 그렇게 한 것과 같으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악신이 들어가서 악한 짓을 하다가 망하게 됩니다. 사울 왕과 같이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망하는 것을 본 가족들과 자손들이 모두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영적인 저주를 받습니다. 이런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었다면 구원은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은 받지만 공적은 모두 불타버렸으므로 해를 받는데 불 가운데서 아슬아슬하게 목숨만 건진 것같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아주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교만한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 한마디 한 것들을 하나님이 모두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로 범죄한 것도 모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위탁받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한 일에 사용되면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불같은 시험을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불같은 시험을 이긴 사람만이 쌓은 공적이 그대로 있고 상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불같은 시험은 교만해지는 시험이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잠 16:18).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지 못하고 살 때 얼마나 불행하게 되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아는 사람은 영육간의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시니 무조건 순종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세에 얻은 아들을 빼앗아 갔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중심을 보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과 믿음을 아시고 칼을 멈추라고 하십니다.

욥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 많은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다 잃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가 거두어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욥 1:21). 그 결과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천지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므로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인 줄 알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욥처럼 더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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